고고학자들은 인간이 약 400만 년 전에 침팬지로부터 분리된 것으로 추정한다. 물론 초기 원시인의 외형은 침팬지에 가까워
보였겠지만 생물학적으로 침팬지와는 염색체 결합이 안 된다. 하지만 현대인과는 염색체가 같아 결합이 가능해 그 사이에 자식을 가질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유전학상 이의가 있을 수 없다.
그보다 고고학자들의 관심은 원시인 두뇌와 현대인 두뇌 간의 차이점에 있다. 왜냐하면 다른 동물은 비록 신체적인 진화는 있어도 두뇌진화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간단한 소재가 아니다. 만약 인간두뇌가 원시인 때부터 진화되어 왔다면 현재도 진화중일 것이고 앞으로도 계속 진화, 고도의
지능을 갖게 돼 인간이 ‘불사의 신’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반론은 인간두뇌는 계속 진화하는 것이 아니라 창의적인 두뇌를 처음부터
갖고 태어났으나 이를 개발할 기회가 원시인에게는 없었다는 견해다.
이같이 상반된 주장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우선 두뇌진화론자의 주장에 의하면 인간이 처음 침팬지로부터 분리돼 같이 살 때의
인간두뇌는 침팬지두뇌보다 우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신체에 털을 잃어 더 이상 침팬지와 나무에서 살 수 없게 돼 땅으로 내려왔을 때는
특별한 재능이 없어 거의 멸종위기를 맞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래도 지능은 있어 나무열매나 맹수가 먹다 남은 뼈에 붙어있는 고기를 돌로
긁어먹었는데 이런 행위가 두뇌 진화에 따라 연장을 쓰게 된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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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고학자들이 네안데르탈(Neanderthal)인간들이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나무창을 발굴하고 있다. |
실제로 약 300만년 전 동물뼈 화석에서 돌에 긁힌 자국이 발견되는데 이는 인간만이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손도끼는 약
250만년 전 것으로 이때 이미 두뇌가 많이 진화되었다고 볼 수도 있으나 수긍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왜냐하면 그리 먼 옛날이 아닌 약
1만5천년 전까지도 손도끼가 주요 생존수단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인간 탄생 400만년 중 거의 95%의 세월을 손도끼에 의존해 살았다는 얘기로
두뇌의 진화로 보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또한 약 30만년 전부터 불을 사용했는데 이것 역시 추위를 피해 따뜻한 곳을 찾다보니 불을 알게 된 것으로 이는 진화가 아닌 자연의
선택으로 보기도 한다. 두뇌진화에 가장 민감한 사항이 바로 언어인데 원시인이 다른 동물보다 얼마나 진보된 언어를 구사했는지는 알 수 없다.
이같이 원시인의 두뇌진화는 매우 늦은 속도로 진행되어 무엇인가 잘못 진단했다는 주장이다.
이에 반해 두뇌 자체가 창의성을 지니고 있었다는 근거들이 많이 제시되고 있다. 좋은 예가 1980년대 40만년 된 독일의 토탄층에서 발견된
말뼈와 사람이 만든 예리한 나무창이다. 40만년 전 유럽에는 현생인류보다 무려 50만년이나 앞서 정착해 살았던
네안데르탈(Neanderthal)인간들이 있었다. 이들은 멸종됐지만 예리한 나무창으로 말을 사냥했으며 지능이 오히려 높았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유선형 나무창의 제작기술과 말을 사냥한 행동을 컴퓨터로 지능시뮬레이션을 해본 결과 아이큐가 120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두뇌진화가 선행돼 인류가 발전했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실제로 현대문명 태동시기를 길게 잡아야 지금부터 약 1만년
전의 신석기시대로 인류의 기원 400만년 중 단 0.25%에 지나지 않는다. 그 짧은 기간에 두뇌가 급속히 진화될 수는 없는 것이다.
20세기 초만 해도 지구상에는 석기시대생활을 하는 인종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개화해 문화인으로 진입하는데 두뇌진화가 필요 없었다.
두뇌진화에 의해 문명이 발달한 것이 아니라 두뇌 자체가 지니고 있는 창의성을 필요에 따라 응용했다는 이야기다. 즉 창의성이 인류를 발전시켰다는
주장이다. 왜냐하면 동물이나 인간의 뇌세포 기능은 똑같지만 창의력은 인간두뇌에서만 나타난다. 근년 들어 선진국 교육계가 초등학교에서 영재학생을
선발하는 기준이 수능(修能)보다 창의성을 더 중시하고 있음을 학부모들은 예의주시해야 한다. 아이들이 글을 터득하면 곧 글 읽는 습성을 갖도록
지도해야 한다. 글 속에서 창의력이 샘솟기 때문이다. 400만년 인류역사에서 3천 년 전에 글이 나오면서 창의력이 가속화되어 오늘과 같은 문명의
꽃을 피울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