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기는 약 77%의 질소와 21%의 산소로 구성되어 있다. 지상에 사는 거의 모든 생명체는 이러한 공기를 매체로 생명을 유지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지상 약 10km 상공부터는 산소가 급속히 감소되어 일부 미생물 외에는 살기 힘들다. 이같이 산소가 있는 공기층을 대류권이라 부르는데 이는 약 28억년 전 쯤 형성되어 수많은 생명체들에게 보금자리역할을 해왔으나 생각보다 취약하다. 즉 지구의 직경이 1만3천km인데 지구 크기를 농구공에 비유하면 대류권은 농구공에 니스칠 정도의 두께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 하늘은 쉽게 변질될 수 있으며 대류권이 변질될 적마다 생명체는 대재앙을 겪어야만 했다. 대류권의 변질은 대부분 기온의 변화인데 이산화탄소가 주범이다. 놀라운 사실은 이산화탄소가 대기에 차지하는 분량은 고작 0.0314%로 소량에 지나지 않으며 근본적으로 오히려 친환경적인 성격을 지녔다는 사실이다.
그러면 왜 이렇게 소량인데도 문제가 되고 위험한 물질이라 하면서 친환경의 성격을 띠었다고 하는지 알아보자. 햇빛파장이 지표면에 부딪치면 일부는 지표면에 흡수되고 일부는 반사되는데 반사파는 열파장(Infrared)으로 변하며 힘이 약해진다. 그리고 대기에 떠다니는 이산화탄소를 뚫지 못하고 대기에 갇히고 만다. 따라서 소량의 이산화탄소라 해도 지속적으로 열을 가두기 때문에 온난화가 가중된다.
그러면 이산화탄소가 계속 증가하면 어떤 현상이 나타날까? 화성처럼 되고 만다. 40억년 전 화성은 지구처럼 많은 물을 갖고 있었으나 이산화탄소의 증가로 대기온도가 100도 이상 치솟아 물이 다 증발되고 말았다. 그후 지금까지 수십억년 동안 화성 평균기온은 영하 87도로 삭막하기 짝이 없는 땅이 되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이산화탄소는 원래 기온을 따뜻하게 하여 생명체가 살 수 있게 하는 친환경적인 존재다.
그러면 이산화탄소는 어떻게 만들어지고 왜 마음대로 통제하지 못할까? 이산화탄소는 탄소원자 하나에 산소 두개가 붙은 분자로 동식물 같은 생명체(유기물)가 생명을 잃고 박테리아에 의해 썩을 때 생성된다. 신기한 사실은 이렇게 생성된 이산화탄소는 식물들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주식이란 점이다. 즉 식물이 성장하기 위한 녹말은 물, 햇빛 그리고 이산화탄소에 의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이를 광합성(光合成)작용이라 부르며 광합성작용 후 찌꺼기가 나와 버려지는 원자가 있는데 이것이 바로 산소다. 이렇게 대기에 버려진 산소는 동물세포가 에너지를 만드는데 절대적인 연료다. 이같이 식물과 동물은 이산화탄소와 산소를 서로 주고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순환이 우리가 일찍이 알고 있는 탄소동화작용이다.

그러면 서로가 주고받는 양이 비슷해야 하는데 왜 하늘에는 산소가 20%가 넘으며 반대로 이산화탄소는 0.03% 밖에 안 될까? 이는 이산화탄소는 분자이기 때문에 질소나 산소보다 무거워 대부분이 땅 속으로 스며들어가기 때문이다. 실제로 동물의 사체가 썩는 과정을 보면 대부분의 이산화탄소는 땅속으로 스며들거나 석탄처럼 화석 속에 잠긴다. 땅속으로 스며든 이산화탄소는 강줄기처럼 땅속에서 바다로 흘러가다가 바닷물과 육지 접경지대에서 뭉쳐져 고체로 변한다. 이를 일명 ‘불타는 얼음(Methane Hydrate)’이라 부르기도 한다.
한편 땅속에 스며든 이산화탄소는 용암이 고이는 공간에 스며들어 뜨거운 용암과 함께 폭발성으로 변해 화산 분출을 유도한다. 이때 분출된 이산화탄소는 광범위하게 대류권에 흩어져 기온을 상승시키지만 곧 비와 함께 다시 바다나 땅속으로 씻겨 내려간다.
이러한 순환은 극히 자연적이다. 하지만 인간은 산업혁명 이후 지금까지 이산화탄소가 다량 함유된 화석연료를 무분별하게 소비했으며, 이산화탄소를 산소로 전환시키는 식물마저 무차별 벌목해 균형을 깨트리고 말았다. 한마디로 온난화로 병들기 시작한 지구는 인재(人災)에 의한 병이다.
이산화탄소를 인슐린에 비유하기도 한다. 즉 당을 관리하는 인슐린은 혈관 속에 아주 소량에 지나지 않지만 단 0.1g이라도 차질이 나면 생명에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대기에 이산화탄소량이 0.01%만 증가해도 생명체에 치명적일 수 있다. 지금 인류는 기후 이변을 피부로 느끼기 시작했는데도 경제성장만 외치고 있다. 인류는 집단이기주의라는 덫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