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의 재정위기(상)
지난 7일 그리스의회는 재정지출을 과감하게 줄이고 세금을 큰 폭으로 올리는 초긴축 재정법안을 통과시켰다. 이것은 국가부도 직전의 위기에 처한 그리스에 앞으로 3년에 걸쳐 1,100억 유로(미화 약 1,430억 달러) 상당의 자금을 제공하는 대가로 IMF와 유로존 27개 회원국 중에서 유로화를 공식통화로 채택한 16개국이 요구하는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한 조처중의 하나다. IMF와 유로존이 요구하는 조건의 골자는 현재 13%가 넘는 그리스의 총국민소득 대비 재정적자비율을 앞으로 3년 안에 10% 수준으로 내려야한다는 것이다. 이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그리스의회가 통과시킨 법안은 공무원 수의 삭감, 공무원봉급 동결 및 보너스폐지, 공무원연금혜택 연령 인상과 연금 삭감 등을 포함한 재정지출의 축소와 부가가치세를 비롯한 각종 세금의 인상을 통한 세수입의 증가를 포함하고 있다.
그리스 공무원노조는 이에 강력히 반발, 유혈폭동을 불사하고 있다. 그동안 주저하던 IMF와 유로존은 상황이 급하게 되자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리스의 국가부도를 막는 것이 급선무라고 결론을 내린 것 같다. 그리스의 국가부도가 국가재정이 취약한 포르투갈이나 스페인 같은 다른 유로존 국가들의 국가부도로 이어져 유로존 전체의 금융위기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사태의 심각성을 뒤늦게나마 인식한 IMF, 유로존을 포함한 유럽연합, 그리고 이제는G7 국가들까지 사태수습에 발 벗고 나선 것 같다.
유로존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나라들 특히 독일 같은 나라가 그동안 선뜻 발 벗고 나서지 않은 이유 중의 하나는 그들의 혈세를 남의 나라 공무원들의 후한 봉급과 연금을 보장하는데 써야한다는 것을 자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정치적인 부담 없이 설명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의 재정상태가 이 지경이 되도록 방관했던 유로존 집행부의 책임도 물어 마땅하다. 그리스는 다른 나라와는 달리 유로존 가입조건의 충족에 가장 미비한 나라였기 때문이다.
사실 유럽연합은 그 원조인 구주공동시장의 탄생 때부터 표면적인 경제논리 뒤에 정치적인 야심이 도사리고 있었다. 2차대전 직후 프랑스대통령 드골은 전후 세계경제가 미국과 영국이 주도하는 앵글로색슨 경제권에 흡수되고 있다는 사실을 눈뜨고는 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프랑스는 패전국인 독일에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을 발휘해 앵글로색슨 경제권에 맞설 수 있는 유럽경제권을 키워볼 생각으로 구주공동시장의 성장과 발전에 온힘을 쏟았다. 이것은 근대세계사의 큰 맥을 형성하는 영국과 프랑스 간의 경쟁의식 연장이라고 볼 수 있다. 유럽연합의 형성과 발전과정을 이해하는데 있어 경제논리 못지않게 정치논리를 빼놓을 수 없는 이유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것이 후세에 유럽연합 발전에 큰 장애물로 작용할 줄이야.
경제실리를 추구하기에 앞서 정치논리에 눈이 어두워 외형적인 세 불리기에 급급했던 유럽연합은 경제?정치?사회?문화 및 지리적인 이질성은 물론 기준치의 충족여부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크고 작은 나라들을 모두 유로존에 가입시켜주는 결과를 자초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처럼 동질성이 결여된 회원국들을 한데 묶어 유럽중앙은행을 통한 일률적인 통화정책과 회원국 간의 환율변동을 불허하는 단일통화제의 족쇄를 끼워버렸다.
그 좋은 예로 단일통화제도와 일률적 통화정책은 유로존 회원국들로 하여금 2008년 금융위기가 불러온 불황을 타개하는데 있어 각자의 경제환경에 맞는 통화정책을 쓸 수 없도록 만들어 버렸다. 독일이나 프랑스에 맞는 통화정책이 그리스나 포르투갈에 항상 맞는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각 나라들은 비교적 선택의 여지가 있는 재정정책으로 불황을 타개하려 하였다. 통화팽창의 길이 막힌 이들 국가들은 재정적자의 길을 택한 것이다. 이것이 이들 국가의 재정상태를 더 악화시킨 커다란 이유 중 하나다.
그리스?스페인?포르투갈을 비롯한 유로존 국가들의 재정위기를 이번에 가까스로 넘길 수 있다하더라도 유로존의 근본적인 모순이 해결된 것은 물론 아니다. 유럽연합이 단일통화의 목표를 포기하지 않는 한 또는 경제적 비경제적 동질성이 결여된 나라들을 자기들이 설정한 경제지표기준치의 달성여부를 엄격히 따지지도 않고 유로존에 편입시키기를 계속하는 한 유로존이 갖고있는 근본적인 모순은 상존한다고 보아야한다. 경제적인 실력이 뒷받침하지 않는 정치적인 야심만으로는 할 수 있는 것이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을 유럽연합지도자들은 깨달아야할 것이다.
(다음 주 하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