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li51.JPG한인 등산클럽 ‘산울림’의 멤버인 나가토는 선험자인 토론토의 문우일 박사에게서 세밀한 정보를 얻었고 우리보다 1주일 전 현지에 도착해서 시차에 적응했다. 또한 킬리 옆의 높이 4,500미터 메루(Meru)산에 오르면서 고산증을 달랬다. 고산증은 약보다 실제 체험이 묘약이 아닌가. 그는 젊었을 때 일본의 높은 산 100개를 섭렵했을 정도로 체력 좋은 등산가. 이뿐 아니라 킬리 등산 중 가이드나 포터를 잡고 쉴 새 없이 묻고 자기가 가져온 손목시계 겸 고도측정기, 온도계 등을 늘 챙겼다. 그는 처음부터 성공을 예약해 둔 사람이었다.

나장환 대장에게 물었다. “한국인의 긍지를 위해 일본인 나가토에게 지지 않으려고 끝까지 걸었던 것은 아닌가요?” “아니요, 전혀 그런 민족감정은 없었습니다. 다행히 체력이 받쳐주니까 끝까지 갔던 것이지요.”

kili52.JPG등산 경력 20여년의 나 대장은 전자공학도답게 계획이 치밀하고 과묵하다. 사람들을 차별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그의 등산팀에는 일본계가 5명이고 중국계도 있다. 모두가 잘 어울려 지내는 것도 특징이다. “뭘 하든지 늘 1등을 하는 사람”이라는 평도 듣는다.

킬리 등정 후(또는 등정실패 후) 내려오는 길은 일사천리였다. 그러나 호롬보캠프까지 15km나 되는 긴 거리를 걷다보니 내리막이지만 넓적다리가 아팠다. 올라갈 때는 무려 6시간이 걸렸던 길. 무겁지 않은 배낭이었으나 어깨가 자꾸 한쪽으로 기울었다. 보다 못한 가이드가 배낭을 내놓으라고 했다. “다른 사람들은 잘도 걷는데 난 이것조차 내주어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들자 자존심이 상했다. 그러나 어쩌랴. 네 사람의 성공에 환호했던 우리의 스케줄은 이날 호롬보캠프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만다라캠프(Mandara Camp)까지 다시 15km를 간 뒤 거기서 12km를 더 걸어 내려가 공원입구에 도착하는 것이었다. 하루에 무려 27km를 걸어야 했다. 강행군 여정은 산을 내려와 빨리 시내 호텔에 도착해서 6일 만에 처음으로 샤워를 한 후 저녁에 비행기를 타야 하는 까닭이었다. 우리끼리라면 모르지만 몸에 축적된 6일간의 땀 냄새 등 악취를 지닌 채 경유지 암스테르담행 비행기를 탈 수는 없었다.

kili52211.JPG호텔이라 하지만 물이 귀한 곳. 노인 오줌줄기 같은 물이었지만 샤워의 상쾌함. 더운 물과 전깃불의 고마움. 무엇보다 수세식 변기는 몹시 반가웠다. 역시 우리는 서구문화에 젖은 문화인인가 보다. 또 이래서 어려서부터 여행은 필요한가. 백문이 불여일견(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제 눈으로 보는 게 낫다). 그런데 왜 탄자니아는 ‘킬리’ 국립공원이나 사자, 얼룩말 등 귀중한 관광자원을 가졌는데도 가난한가. 부지기수로 많은 얼룩말을 잡아서 소시지나 햄·순대로 만들고 가죽은 가죽 대로 팔 수는 없을까. 중국의 판다가 중국의 국보요, 외교의 수단으로 활용되듯 탄자니아도 희귀동물들을 잡아 해외에 팔거나 외교에 이용하면 어떨까. 정답은 고사하고 이 질문 하나만 가져와도 이번 여행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되돌아보면 정상등정에는 실패했으나 모든 게 고마웠다. 백두산 높이(2,744미터)의 두 배나 되는 5,300미터는 올라갔지 않은가. 나이로 말하면 장연탁 조각가, 문우일 교수, 필자 모두 고만고만하다. 그러나 장 조각은 2003년에 길만스 포인트까지 올라갔다. 나보다 고도 400미터를 더 올라갔지만 당시 그의 나이는 정력 좋은 63세였다(늘 돌을 다루는 그는 지금도 그렇다고). 문 교수는 생일을 맞은 2005년 9월14일 65세 기념으로 부인과 함께 최고봉 우후루까지 오른 보기 드문 부부팀이이다. 부부가 모두 건강체질에 긍정적 사고방식을 가졌고 과학자답게 인공위성 사진 등 첨단을 이용한 철저한 준비가 있었다. 이렇게 보면 토론토 한인으로 킬리에 최초로 도전해서 성공한 교민은 장 조각가, 최고봉 우후루 등정성공은 문 교수 내외다. 문 교수 부부는 우후루에서 찍은 사진이 없다. 팻말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어야 했으나 그보다는 지구물리학자로서 처음부터 관심 많던 분화구 주변 빙벽 등을 관찰하고 사진 찍는 데 정신이 팔렸기 때문이다.

kili53.jpg탄자니아 정부가 발행한 책자는 이렇게 말한다. “킬리 등정을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된다. 암벽등반 등 특별 기술이 요구되지는 않지만 신체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원래 캐나다인으로 아프리카를 방문하려면 건강상 체크할 게 여럿 있다. 가정의사가 아니라 스포츠전문 의사들이 진찰하고 처방하는 데 진찰비는 현찰을 요구한다. 나는 노스욕제너럴병원 소속 클리닉을 찾았다. 모기매개질환에 대비한 약, 설사약, 고산증약 등 세 가지를 받았고 총 비용은 200달러 정도였다. 탄자니아 입국비자는 현지에서 받았다. 수수료는 50달러. 온라인으로 요청하면 더 비싸서 80달러. 이밖에 항공료와 등산장비 구입비 및 국립공원 입산비 60달러, 엉성한 캐빈 숙박비로 하루 50달러씩을 냈다. 이밖에 사파리비용까지 합치면 거의 5천 달러를 썼다. 적지 않은 금액이지만 캐리비언 크루즈가 전혀 부럽지 않다. 편하게 먹고 마시고 쉬자고 나선 길은 아니다.

암스테르담을 거쳐 킬리만자로까지 왕복하는 데 무려 36시간을 비행기에서 보내는 것도 인내훈련이다. 아프리카를 처음 방문한 점, 킬리만자로라는 낭만적 산을 도전적으로 체험한 점, 얼룩말이나 사자들을 지척에서 볼 수 있었던 사파리 등은 평생 한 번 있을까 말까한 도전이요 경험이다. 이것은 후세대들에게도 어떤 도전적 정신을 줄지 모른다. 그것만으로도 성공이라고 해서 지나친 자위는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