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작곡가들의 삶과 음악을 시대별, 연대순으로 정리했다. 
 
지금까지 소개했던 바흐, 헨델,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은 한 시대를 풍미했고, 그 시대를 대표했던 작곡가들이었다. 또한 종교개혁 이후 일어난 문예 부흥기와 바로크시대, 고전파시대를 거치면서 음악의 형식이 완성되었고, 베토벤은 고전파의 정통성을 더욱 발전시키면서, 자유와 혁신을 추구했던 개혁가였다. 이러한 베토벤의 영향으로 이후 100년간 낭만파 시대의 수많은 작곡가들은 사상과 감정에 충실하면서, 어떠한 형식에 구애됨 없이 자유롭게 음악을 표현해 냈다. 따라서 낭만파시대의 음악가들은 한 삶의 영웅이 아닌 여러 작곡가가 서로 동조하거나 대립하면서 발전을 이어갔다.

 ppmendel.jpg먼저 낭만파의 창시자로 불리는 멘델스존((Felix Bartholdy Mendelssohn, 1809년 2월3일~1847년 11월4일)은 베토벤의 정통성을 중시하며, 슈만과 함께 독일 낭만파를 개척한 음악가다. 1809년 부유한 유태계 은행가의 아들로 독일에서 태어난 멘델스존은 전형적인 엘리트 교육을 받으며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러한 삶의 여유와 기쁨이 그의 작품에는 항상 품위 있는 명쾌함으로 나타난다. 그의 음악엔 심오한 철학세계보다는 밝고 아름다운 멜로디가 있다. 그러면서도 얄팍하거나 공허하지 않고, 오히려 훌륭하고 세련된 예술의 경지에 올라 있다. 

 어릴 적 엘리트교육을 받으며, 음악과 미술, 문학에서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던 그는 당대 최고의 음악가였던 케루비니와 대문호 괴테의 사랑과 지도를 받으며 성장하였으며, 17세에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을 위한 서곡을 작곡하여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17세의 나이에 작곡하였다고 믿기 어려운 뛰어난 완성도를 지니고 있는데, 동화의 세계를 느끼게 하는 풍부한 상상력과 풍요로운 기쁨과 즐거움이 가득 차 있다. 이 작품에 그 유명한 결혼행진곡이 들어 있다. 

 멘델스존은 음악의 다방면에서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였다. 먼저 그의 가장 위대한 업적으로 평가 받는 것은 바흐음악의 재발견이다. 바흐에게 심취했던 멘델스존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바흐의 음악은 상당 부분 역사 속에 소멸되어 버렸을 것이다. 멘델스존이 열심히 바흐음악을 연구한 덕분에 그간 잊혀졌던 바흐 음악은 일반에게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 낭만주의가 자칫 자유로운 사조로만 치닫고 있을 때, 바흐의 완벽한 형식미를 재조명하여 독일 음악의 정통성을 회복하고, 베토벤과 브람스의 가교 역할을 하면서 독일 낭만파의 부흥을 주도했다. 멘델스존은 지휘자로도 명성을 떨쳤다. 바흐의 ‘마태수난곡’을 발견하여, 1829년 초연 100주년 기념연주회를 직접 지휘하였으며, 1838년 슈만이 발견한 슈베르트 교향곡 9번 ‘그레이트’도 직접 초연하였다.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 왕성한 활동을 하였으며, 동 음악원의 원장으로서 교육에도 큰 공적을 남긴 음악가였다. 이 오케스트라와 음악원은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며 현재도 교육과 음악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mendelsjohn.JPG멘델스존은 여행을 즐겼던 세계적인 음악가였다. 파리와 런던에서 스코틀랜드로, 다시 이탈리아와 독일을 오가며, 자신의 음악세계를 넓혀갔다. 슈만, 쇼팽, 로시니, 리스트 등 수많은 음악가들과 친분을 쌓으며 음악적 교류를 이어갔으며, 이때 교향곡 제3번 ‘스코틀랜드’와 제4번 ‘이탈리아’ ‘핑갈의 동굴’ 서곡 등을 남겼다. ‘스코틀랜드’ 교향곡은 실제로 즐거웠던 여행의 느낌으로 아름다운 호수와 산, 숲과 벌판, 바다 등이 잘 그려져 있으며, ‘이탈리아’ 교향곡에서는 음악과 노래로 가득 찬 이탈리아의 햇살이 음악으로 잘 느껴지는 특별함이 있다. ‘핑갈의 동굴’ 서곡은 바다의 다양한 소리를 담은 신비로운 음악이다. 

베토벤, 브람스와 함께 3대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불리는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가장 많이 연주되고, 최초의 LP로 발매될 만큼 가장 사랑받는 협주곡이다. 또한 ‘메시아’ ‘천지창조’와 함께 3대 오라토리오 중 하나로 꼽히는 ‘엘리아’는 유태교에서 개신교로 개종했던 멘델스존 필생의 역작이기도 하다. 3년여에 걸친 고된 작곡과정에서 작곡가, 음악가, 교육자, 지휘자로서 모두 역량이 결집되어 3시간이 넘는 대작이 완성되었다. 멘델스존은 1846년 37세에 9번째 영국을 방문하여 초연하여 대성공을 거두었으나, 피로가 겹쳐 이후 모든 공직에서 사퇴한다. 이듬해 1847년 10번째 찾은 영국에서 사랑하는 누이 파니의 죽음을 전해 듣고, 크게 낙담하여 신경장애를 겪게 되며 그해 11월4일 라이프치히에서 생애를 마쳤다. 

 38세의 삶 자체가 짧기 때문에 불행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멘델스존은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완벽한 교육을 받을 수 있었으며 작곡가, 지휘자, 교육가로서 명성을 얻었고, 생전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또한 바흐의 음악을 가장 먼저 접할 수 있었던 흥분과 기쁨을 누렸으며, 즐거운 여행을 통해 슈만과 리스트, 쇼팽, 베를리오즈, 로시니 등의 거장들과 함께 음악을 논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의 이름인 펠릭스(행운아)처럼 행복했던 음악가로 기억되고 있다.

송정호 음악칼럼니스트 mikesong0713@yah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