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진화한다고 했는가? 독일음악의 정통성을 이야기할 때, 음악의 기초를 세운 바흐부터 시작하여 고전파 형식을 확립한 베토벤을 거쳐 멘델스존과 슈만에 이른다. 이 두 사람은 체계와 이론을 정비하고 새로운 낭만파 시대를 열었기 때문이다. 이후 브람스는 이들의 정통성을 계승하고, 순수한 예술미와 아름다운 낭만적 요소를 융합, 독일 낭만파 음악을 완성하였다.

브람스는 1833년 독일의 음악가 가문에서 태어났다. 더블베이스 연주자였던 아버지로부터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음악을 배웠고 젊은 시절에는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평가받을 만큼 연주자로 더 유명하였다. 수많은 연주회와 연주여행으로 헝가리 바이올리니스트 레메니를 알게 되었고 그를 통해 리스트를 소개받았으나 음악적인 견해 차이로 가까워질 수 없었다. 레메니를 통해 알게 된 또 다른 바이올린 연주자 요하임은 슈만을 소개했고, 훗날 바이올린 협주곡을 초연하는 등 브람스에게 음악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다.

슈만은 젊은 브람스의 연주를 듣고 자기가 발행하는 잡지를 통해 ‘위대한 음악의 예언자, 브람스 나타나다’라는 제목의 평론으로 20세의 천재 피아니스트를 극찬했다. 그러나 브람스는 대범했던 연주활동과는 달리 초기의 작곡활동에서는 자기비판이 심한 완벽주의자가 되어 매우 소극적 자세를 유지했다. 베토벤을 존경했던 브람스는 초기의 자기작품들이 베토벤에 비교할 수 없다는 이유로 모두 파기할 만큼 베토벤 컴플렉스에 시달렸다. 그가 43세에 완성한 교향곡 1번도 22세에 쓰기 시작하여 21년이 걸릴 정도로 신중에 신중을 기한 것이다. 이 교향곡은 베토벤 교향곡 제10번으로 불릴 만큼 베토벤 이후 최고의 교향곡으로 평가받는 작품이다(실제로 브람스는 20대 중반부터 작곡을 시작했으나 대부분의 작품들이 40대부터 완성되고 발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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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람스는 동시대의 유행보다는 옛날 음악 스타일을 추구했던 신고전주자로 불린다. 독일음악의 정통성을 계승하는 순수주의자였으며, 음악의 진화를 신봉하는 완벽주의자였고, 철학적인 절제로 미를 추구하는 로맨티스트였다. 그렇기 때문에 멘델스존과 슈만의 편에 서서 리스트, 바그너와 대립했다. 브람스가 추구했던 음악의 진화란 전통의 테두리에서 발전을 의미했으나, 리스트와 바그너는 베토벤의 개혁과 혁명정신 위의 실질적인 변화를 추구했기 때문에 이들은 크게 충돌하였다. 이렇게 베토벤 이후 태동한 낭만파는 브람스와 바그너를 중심으로 양립하며 발전하게 된다.

브람스 작품의 특징을 말하자면 엄격히 절제된 낭만주의라고 말할 수 있다. 그의 작품에는 항상 남성적인 힘과 장중한 분위기가 있다. 이것은 존경의 대상이었던 바흐의 엄숙함과 베토벤의 완벽함, 그리고 슈만의 서정성을 계승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평생을 독신으로 살아온 그의 삶에서 독특한 고독의 정서가 작품 전반에 스며있다. 실제로 브람스는 자신의 음악관에 대해 “자유롭게, 그러나 고독하게”라고 표현하곤 했는데, 당시의 젊은이와 예술가들의 표어가 되기도 하였다.

브람스는 오페라를 제외한 전 장르에서 최고 수준의 작품들을 만들었다. 4개의 교향곡과 베토벤, 멘델스존과 함께 3대 바이올린 협주곡이라 불리는 바이올린 협주곡과 2개의 피아노협주곡, 첼로와 바이올린을 위한 2중 협주곡 등의 협주곡, 현악 6중주곡, 피아노 5중주곡, 3개의 현악 4중주곡, 아름다운 멜로디가 돋보이는 3개의 바이올린 소나타와 2개의 첼로 소나타, 그리고 다수의 피피아노 소나타 등이 있으며 모두두가 명곡으로 손꼽힌다.

또한 스승이었던 슈만의 영향이 느껴지는 브람스의 가곡은 베토벤과 슈베르트를 이어가는 독일의 정통가곡으로 맥을 함께 한다. 하이든의 주제에 의한 변주곡은 관현악곡으로,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변주곡은 피아노곡으로 각각 만들었는데, 모두 뛰어난 변주곡으로 우수한 작품의 완성도를 들려준다. 젊은 시절 헝가리를 여행하면서 얻을 수 있었던 경험과 지식으로 ‘헝가리 무곡’을 완성했고, 이태리 방문에서는 차이콥스키를 만나고 ‘피아노협주곡 2번’을 작곡하였다.

왕성하게 활동하던 브람스는 평생 연모한 슈만의 부인 클라라가 세상을 떠나자 이듬해 갑자기 쇠약해져서 1897년 6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고전형식에 신선한 예술미와 새로운 기교를 융합하여 절대음악에 성실하게 정진해 온 브람스는 바흐와 베토벤과 함께 독일의 3B(best)로 불리는 위대한 음악가였다. 그는 온화하고 조용한 성품의 소유자였으며, 음악의 순수주의를 지켰다. 바그너, 리스트, 베를리오즈 같은 작곡가들이 갖가지 방법을 다 동원하여 자기들이 원하는 분위기를 조성했지만, 브람스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형식을 고수했다. 그의 음악에 깊이가 있고 논리적이고 치밀한 질서가 느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것이 베토벤 이후 최고의 음악가로 손꼽는 엄격히 절제된 낭만주의자 브람스의 매력이다.

송정호 음악칼럼니스트 mikesong0713@yah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