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ngmyunghoon.gif
북한의 은하수 관현악단이 프랑스 파리의 살르 플레옐 공연장에서 라디오프랑스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합동으로 공연했다. 한국서 활동하는 마에스트로(Maestro) 정명훈씨가 지휘봉을 잡았다. 지난 3월14일 이들이 들려준 브람스 교향곡 제1번과 민요 ‘아리랑’은 큰 감격을 자아냈다. 비록 남과 북이 하나 된 오케스트라는 아니었지만, 두 나라 음악인들이 일체가 되어 재현한 ‘어둠에서 광명을 비치고, 고난을 딛고 승리로 향하는’ 브람스의 숭고한 정신은 인상적이었다. 이날의 하이라이트 ‘아리랑’은 국악기가 주선율을 리드했다. 연주가 끝나자마자 청중들은 환호했다. 민족혼이 담긴 음악은 프랑스사람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남북이 하나가 되는 듯한 뜻 깊은 연주였다. 앙코르 곡으로는 프랑스의 대표곡 비제의 ‘카르멘’ 서곡이 연주됐다.
2012_jungmyunghoon_concert_in_paris.gif이 광경을 인터넷으로 감상하면서 필자는 2008년 세계적 거장 로린 마젤이 이끄는 뉴욕필이 평양을 방문하여 들려준 ‘아리랑’을 떠올렸다. 그러나 4년 전의 감동보다 이번 파리연주에서 더 뜨거움을 느낀 이유는 한국의 자랑스러운 음악인 정명훈씨가 연주회 중심에 있기 때문이었다. 정씨는 인터뷰에서 “인간적인 관계가 우선이고 그 다음이 음악이다. 이번 공연을 성사시킨 정치적인 부분은 제일 마지막이다”라고 말했다. 음악에 대한 그의 순수한 열정이 이념을 넘어 감동을 연출한 것이다.

15년 전 음반사의 담당자로서 필자는 정씨를 만났다. 그때도 그는 “언젠가 조국을 위해 뜻 깊은 일들을 하고 싶다”고 여러 번 다짐했다. 음악을 들으면서 그의 다짐이 오버랩되자 필자의 감회는 더욱 새로웠다.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의 음반시장 규모는 세계 10위권 안이다. 그 중에서도 클래식 음반시장은 6위와 7위를 오르내릴 정도로 큰 규모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세계적인 음악가로 활동하는 한국인들이 자랑스러운 것은 당연했다.

역동적이고 다이내믹한 지휘로 감동을 주는 지휘자 정명훈. 그를 언급할 때 붙는 ‘세계적’이라는 단어는 이제 전혀 낯설지 않다. 그는 이미 세계 최고 반열에 있다. 정씨는 1974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2등에 입상하면서 피아니스트로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이 사건은 김연아 스케이트선수의 금메달만큼이나 위대한 민족적 업적이었다. 그가 귀국하는 날 그를 태운 차량 행열은 김포공항에서 시청 앞까지 퍼레이드를 이루었다. 청년 정명훈은 당시 국민적 영웅이었다. 이후 지휘를 공부하고, LA 심포니 오케스트라 부지휘자를 거쳐, 프랑스 바스티유 오페라극장 음악총감독, 이탈리아 산타 체칠리아 국립음악원 관현악단 음악감독, 서울 KBS교향악단 상임지휘자, 라디오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음악감독, 도쿄 필하모닉 예술고문, 서울시향 상임지휘자등을 맡으며 세계적으로 행보를 계속했다. 여기에 동생 정명화, 정경화 등과 함께 하는 정트리오의 실내악과 피아노 독주, 그리고 최근에는 성악가 연광철씨의 피아노반주를 맡는 등 다방면으로 바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특히 올해에는 아시아 유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통해 남과 북의 젊은 연주자들의 합동연주를 계획하는 등 남북의 음악교류에도 힘을 쏟고 있다. 

jungkyunghwa.gif세계적인 바이올린 연주자로는 정경화와 장영주(Sarah Chang)가 있다. 정씨는 1967년 리벤트리트 국제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세계무대에 당당히 입성했다. 그는 1970년대 유태계가 주름잡던 바이올린계에 실력으로 도전한 입지전적 연주자였다. 확고한 음악적 신념으로 지휘자와 갈등도 불사하지 않았으며 세계 최정상 지휘자였던 카라얀의 협연제의를 음악관이 다르다는 이유로 거부할 정도로 카리스마를 지녔다. ‘현의 마녀’ ‘암암호랑이’라는 닉네임을 얻었던 그녀는 남성을 능가하는 격정적인 연주와 연간 100회가 넘는 연주회를 거뜬히 치러낼 정도로 정열적인 연주자였다. 1982년 영국의 선데이타임지는 지난 20년간 영국 문화계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 중 한 사람으로 선정했다. 이제 환갑이 넘은 나이로 줄리어드음대와 이화여대에서 후진양성에 힘쓰고 있다.

jangyoungjoo.gif사라 장은 정경화씨의 계보를 잇는 바이올린 연주자다. 음악가인 부모의 영향으로 일찍이 천재성을 키워간 그녀는 9살 때 세계 최연소 레코딩 기록을 수립하며 세계무대에 나섰다. EMI 근무 시절 필자가 처음 본 사라 장은 못 다한 숙제를 걱정하고, 틈나면 가요를 즐겨 듣는 15살 하이틴 소녀였다. 이제 30대에 접어들면서 중견 연주자의 위치를 굳힌 그는 본인의 천재성 외에 부모의 헌신적 도움, 피나는 노력 등 3박자를 모두 갖추고 유태인이 점령한 미국 음악계를 넘어섰다. 세계 최고 권위의 에버리 피셔상을 최연소로 수상한 것도 자랑스러운데 이를 2번이나 받는 등으로 해서 각종 수상 경력은 한 페이지를 넘는다. 뉴스위크와 경제지 ‘포럼’이 선정한 세계를 이끄는 여성리더 리스트에 포함되기도 했다.

baekgunwoo.gif현대음악과 프랑스 레퍼토리 권위자인 피아니스트 백건우는 현대음악에서부터 시작하여 거꾸로 낭만주의 음악과 고전 레퍼토리로 향하는 특이한 행보로 세계 음악계의 주목을 다시 받고 있다. 1967년 나움버그 콩쿠르와 부조니 콩쿠르에서 우승, 촉망되는 연주자로 급부상하였고 1972년 뉴욕 링컨센터에서 가진 라벨의 독주곡 전곡 연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1992년 스크리아빈 작품집으로 디아파종 상을 수상하였고 1993년에는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전곡 녹음으로 디아파종 상과 프랑스 3대 음반상을 수상하며 유럽 언론의 많은 찬사를 이끌어 내기도 했다. 세계적인 거장으로 평가 받으면서도 늘 소박하고 진솔한 음악행보를 이어 온 그는 ‘건반 위의 순례자’로 불리며 세계를 누비며 왕성한 연주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는 한 작곡가를 꾸준히 깊게 파고드는 연주자로 유명하다. 한 작곡가를 접하면 그의 전 작품을 연주하는 것이 특성이다. 서울서 백씨를 만났을 때 그는 “존경하는 피아니스트 리흐테르처럼 생의 마지막 시기를 시골의 마을회관에서 동네사람들을 위해 연주하면서 마감하는 것이 꿈”이라고말했다. 그의 말에서 인격의 소박함이 진하게 묻어났다.

이들은 모두 한국인의 긍지를 갖고 세계를 누비는 최고의 음악가들이다. 백인과 유태인, 그리고 소수의 자본가들이 지배하는 세계 음악계에서 오직 실력으로 정상에 올랐기에 그들이 더욱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