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유럽은 축구열기로 뜨겁다. 지난 9일부터 시작된 2012 유럽축구선수권 대회는 전 세계 축구팬들을 열광시키며 이제 4강전과 결승전만을 남겨놓고 있다. 이렇게 유로 2012가 월드컵 이상의 인기를 얻는 이유는 수준 높은 경기 내용 외에도 유럽 각국 간의 정치와 역사적 이해관계가 얽혀있기 때문이다. 경기마다 단순한 국가 간 대결 이상의 숙명적 라이벌 구도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매 경기 치열한 혈전이 거듭되고 있다. 따라서 경기 전 행사로 서로의 국가가 연주될 때부터 긴장감은 최고조에 이르게 된다. 흥분과 기대 속에서 각국의 국가를 들으면서 축구만큼 재미있는 각 나라의 국가(國歌)에 얽힌 이야기들을 생각해 보았다.

greate_britain.jpg축구의 종주국 잉글랜드는 영국의 국가인 ‘God save the Queen(신이여 여왕을 지켜 주소서)’을 부른다. 이 곡은 개신교 찬송가 79장 ‘피난처 있으니’로도 잘 알려진 곡이다. 현재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통치하고 있으므로 ‘Queen(여왕)’이지만, 국왕이 재위하게 되면 ‘King(국왕)’으로 가사를 바꾸어 부른다. 영국 국가는 영국연방의 여러 나라들도 국가로 불러왔다. 뉴질랜드는 지금도 두 개의 국가 중 하나로 부르며 캐나다, 호주, 자메이카 등은 자체 국가 외에 왕실 찬가로 계승해오고 있다. 또한 잉글랜드에서는 잉글랜드만을 상징하는 노래로 ‘Land of Hope and Glory(희망과 영광의 땅)’를 부르고 있는데, 이 곡은 영국의 작곡가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 제1번에 사용된 곡이다.

germany.jpg독일은 국가로 ‘독일인의 노래’를 부른다. 1841년 독일의 시인 폰 팔러슬레벤이 오스트리아작곡가 하이든의 현악 4중주 ‘황제’의 선율에 독일 민족주의를 옹호하는 가사를 붙여 이른바 ‘독일인의 노래’를 만든 것이 시초이다. 나치 점령시절에는 노동당 당가였던 ‘깃발을 높이 올려라!’라는 노래가 국가(國歌)에 준하는 대우를 받기도 하였으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에는 한동안 국가가 자취를 감추었다가 1952년 서독정부가 다시 ‘독일인의 노래’ 중 문제의 1절과 2절을 삭제하고 3절만을 국가로 채택했다. 1991년 독일 통일 이후에도 계속해서 국가로 불리고 있다. 이 선율도 역시 개신교 찬송가 245장 ‘시온성과 같은 교회’로 잘 알려져 있다. 하이든의 곡으로 이 선율은 한때 오스트리아 국가로도 사용되었는데, 지금은 모차르트의 곡을 사용하여 ‘산의 나라, 강의 나라’를 오스트리아 국가로 부르고 있다.

france.jpg프랑스는 ‘라 마르세예즈(마르세유의 노래)’를 국가로 부른다. 이 곡은 프랑스 혁명정부가 오스트리아에 선전포고를 했던 1792년에 수많은 시민의용군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공병대위 루제 드 릴이 하룻밤 만에 작사 작곡한 것이다. 1795년 국가가 되었지만 나폴레옹과 부르봉 왕조까지 사용되지 못하다가 1879년에야 정식국가로 인정받게 되었다. 초기에는 6절까지 있었지만 7절이 추가되었다. 현재는 총 15절로 이루어진 대곡이지만 7절까지만 부르고 있다. 영국과 마찬가지로 프랑스령에 있었던 많은 국가들이 오랫동안 국가로 사용했었다. ‘마르세유의 노래’는 프랑스 작곡가 베를리오즈가 1830년 ‘독창자와 이중합창, 오케스트라를 위해 편곡을 했었고, 러시아의 작곡가 차이콥스키는 ‘1812년 서곡’에서, 독일의 작곡가 슈만은 가곡 ‘두 사람의 척탄병’에서 러시아를 침공하는 나폴레옹 군의 상징으로 사용하였다.

italy.jpg이탈리아의 국가는 ‘마멜리 찬가’이다. 1849년 마멜리가 작사하였고 노바로가 작곡하였는데, 프랑스처럼 통일전쟁에 참전한 군인이 만든 곡이었다. 이탈리아는 1861년부부부터 1922년까지는 ‘왕의 행진’을 국가로 사용했고, 1922년부터 1943년까지는 ‘Giovinezza(젊음)’를 국가로 사용하였다. 1946년에 군주제가 폐지됨에 따라 승리와 단결을 강조한 ‘마멜리 찬가’를 국가로 승인을 받게 되었다.

spain.jpg스페인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국가 중의 하나인 ‘왕의 행진’을 국가로 사용하고 있으며, 공식적인 가사가 없다. 그 이유는 스페인이 워낙 수많은 종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로 인해 언어도 10개 이상이 존재하기 때문에 하나의 대표적인 국가를 선정할 수 없었다. 이 노래는 1761년 몬테로스가 발간한 어느 책에서 처음 발견되었는데, 초기의 제목은 ‘척탄병 행진곡’이었지만 1770년 왕실에서 연주가 되면서 ‘왕의 행진’이라 하게 되었다.

usa.jpg유명한 미국의 국가는 ‘성조기여 영원하라’이다. 프랜시스 스콧 키가 독립전쟁 중에 영국함대의 포격에 맞서 끝까지 볼티모어 항을 지킨 맥켄리 요새이야기를 시로 쓴 것을 가사로 담고 있다. 그러나 마땅한 곡조를 찾지 못하다가, 영국에서 술을 마실 때 부르는 권주가(勸酒歌) ‘천국의 아나크레온에게(To Anacreon in Heaven)’라는 노래를 사용했다.

canada.jpg우리가 살고 있는 캐나다의 국가는 ‘오 캐나다(O Canada)’이다. 1880년 퀘벡주의 루티에가 프랑스어로 쓴 가사에 라발레가 곡을 붙였다. 원래 이 곡에서 캐나다란 지금의 국가(國家)가 아닌 프랑스계 캐나다인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정확히 1세기 후인 1980년 캐나다 연방의 가사로 지정되었는데, 프랑스계 캐나다인을 노래한 곡이 역설적이게도 연방을 상징하는 노래가 되었다. 영어 가사는 1908년 스탠리 위어가 썼는데, 프랑스어 가사를 그대로 번역한 것은 아니므로 영어 가사와 프랑스어 가사는 내용에 약간의 차이가 있으며 또한 몇 차례 개작되었다. 캐나다는 영연방 회원국이며 영국을 찬양하는 목적으로 1867년부터 ‘단풍잎이여 영원하라’를 자국의 국가로 사용하였다. 그러다가 1980년에 ‘오 캐나다'로 바뀌었고, 기존의 국가였던 ’신이여 여왕을 보호하소서‘는 왕실의 노래(royal anthem)가 되었다

japan.jpg일본의 국가는 ‘기미가요’다. 원래 이 노래는 성스러운 행사나 축제 만찬에서 불렸는데 독일 음악가 프란츠 에케르트에 의해 서양풍의 음악으로 완성되었다. 이때 완성된 곡이 1880년 메이지 천황의 생일축가로 처음 불린 뒤 일본 국가로 사용되었다. 2차 대전 후 폐지되었다가 1999년 논란 속에 일본 국가로 법제화되었다.

korea.jpg우리나라는 애국가를 국가로 사용하고 있다. 10여 종의 애국가 중에서도 1896년 11월21일 독립문 정초식에서 불린 애국가의 후렴 “무궁화 삼천리 화려 강산 죠션 사람 죠션으로 길이 보죤 답세”가 지금도 맥을 잇고 있다. 애국가 작사자는 알려지지 않으며, 상해 임시정부와 독립운동의 현장에서는 스코틀랜드의 민요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에 가사를 붙여 불렀다. 이후 1930년대 후반 안익태가 작곡한 ‘한국환상곡’에서 곡을 사용하여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함께 국가로 제정하였다.

최근 고국의 뉴스에서 애국가가 논란이 되고 있다는 기사를 접하였다. 물론 애국가의 작곡가 안익태가 친일파로 등재되어 있는 점과 애국가의 원곡인 ‘한국환상곡’의 멜로디를 그가 1942년 만주국 창립 10주년을 축하하여 작곡한 ‘만주국’이라는 곡에서도 사용했던 점을 친일 행적으로 비난하는 것이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국가(國歌)의 의미를 생각할 때 이러한 문제제기는 타당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국가(國歌)는 의미보다도 더 큰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문제가 있다고 해서 내가 속한 나라의 국가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모순이라고 생각한다. 더욱이 공인신분으로 국가(國歌)를 부정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친일의 흔적이 있어도 곡조에 문제가 있어도, 지난 60여 년간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국민과 동포가 하나 되어 불러온 나라사랑의 노래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대부분의 국민과 동포들은 애국가를 부르면서 친일음악가 안익태를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나의 조국 대한민국과 나라사랑의 마음을 떠올리기 때문에 애국가를 국가(國歌)로서 부정하는 것은 타당치 않다. 애국가에 문제가 있다면 문제점을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이를 공론화하여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21세기를 살면서도 이러한 논쟁으로 분열되는 것은 식민지와 전쟁, 그리고 이데올로기 시대를 살면서 굴곡의 역사를 품어야만 했던 우리 민족의 아픔 때문이다. 내달 27일부터 런던올림픽이 시작된다. 런던에 울려 퍼지는 애국가의 곡조에 전 세계의 한민족이 열광하고, 눈물 흘리는 감격으로 국가(國歌)의 상징성이 회복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송정호 · 음악칼럼니스트 (mikesong0713@yah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