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기자회견할 때 기자들을 가장 많이 모을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피겨스케이팅계의 여왕 김연아 선수다. 실제로 지난 2일에 그녀의
기자회견장은 발 디딜 틈도 없이 많은 내외신 기자들로 대성황을 이루었다. 김 선수는 지금 한국에서 가장 사랑 받는 스타 중의 스타이며, 세계가
주목하는 대표적 한국인일 것이다.
김 선수가 은퇴하지 않고 2년 후인 2014년 소치올림픽에 출전한다는 소식은 많은 국민을 즐겁게
했을 것이다. 특히 캐나다 동포들은 2010년 밴쿠버올림픽의 추억을 떠올리며 그날의 감동을 다시 한번 더 기대할 수 있게 되어서 기뻤을 것이다.
필자도 그날의 감동을 생각하면 아직도 흥분과 여운이 남아있다.
평소에 동계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없었으므로 그냥 지나칠 뻔 했으나
이틀 동안 그의 매력에 흠뻑 빠져 그녀의 환상적인 경기를 보았고, 금메달을 목에 거는 감동의 과정도 TV 중계를 통해 함께할 수 있었다. 아직도
수많은 외국인들이 필자가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연아 킴 원더풀”이라고 말할 때마다 그저 놀라울 뿐이며,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느낀다.
피겨스케이팅에는 항상 아름다운 음악이 함께한다. 현역선수였던 린 홀리 존슨이 주연한 1979년 영화 ‘사랑이 머무는 곳에(Ice
Castles)’는 시력을 잃은 비운의 피겨 선수가 장애를 극복하고 재기에 성공하는 감동의 줄거리를 담았다. 영화 전편에 잔잔히 흐르는 멜리사
맨체스터의 히트곡 ‘Through the Eyes of Love’와 함께 피겨스케이팅의 아름다운 연기가 감동의 스토리와 어우러져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지난 올림픽에서 본 김연아의 퍼포먼스는 이 영화를 오랜만에 떠올리게 했다.
스케이팅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필자는 음악중심으로 관전했는데 연아의 선곡 실력에도 최고의 점수를 주고 싶었다. 제한된 시간과 정해진 방식으로 먼저 진행되는
쇼트프로그램에서는 역설적으로 비교적 자유롭고 대중적인 ‘007 테마곡 메들리’로 화려하고 관능미 넘치는 본드걸의 매력적인 연기가 있었고 4분여의
시간 동안 최선의 연기를 다하는 프리 스케이팅에서는 거쉰의 피아노협주곡 F장조를 통해 리듬감을 살리고, 자신의 역량을 최고로 끌어올려 기어이
금메달의 꿈을 이루었다. 거쉰 곡은 재즈 연주자들이 즐겨 연주하는 피아노협주곡 1악장의 피아노 독주부분이었는데 김 선수가 이를 택한 것은 정말
잘한 결정이었다.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음악이기에 다소 우려했지만 연아의 환상적인 연기와 몸놀림이 음표 하나 하나가 되어 빙판이라는 악보 위에
아름다운 곡을 쓰는 듯 했다. 그녀의 연기는 음악을 완벽하게 소화했기에 금메달은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확실히 연아는 선곡에서도 다른 선수들보다
한 수 위였다.
요즘도 필자는 피겨 경기를 관심있게 보는데 세계 톱 클래스의 일부 선수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선곡에서도 실패했다고
생각될 때가 여러 번 있었다. 김 선수의 음악에 대한 안목은 지나온 발자취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프랑스 낭만주의의 자유분방함이 돋보이는
생상스의 교향시 ‘죽음의 무도’와, 동양의 신비가 매혹적으로 펼쳐지는 림스키코르사코프의 관현악곡 ‘세헤라자데’, 현대판 ‘나비부인’으로 불리는
인기 뮤지컬 ‘미스 사이공’의 주제가 등을 사용했다. 또한 주니어 선수 시절에 선택한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 요한 시트라우스의 오페레타
‘박쥐’ 서곡, 탱고 음악 등도 뛰어난 선곡이다.
그녀가 이제까지 사용한 음악들로 구성된 편집음반 ‘Fairy on the
Ice’는 한국 내 음반 판매 1위를 오랫동안 기록하면서 세계 여러 나라에 수출됐다. 또한 밴쿠버올림픽 폐막식의 갈라쇼에서 선보인 환상상적인
연기의 배경음악 마스네의의 ‘타이스의 명상곡’이 때 아닌 호황을 누려 인터넷 검색어 1위를 기록한 것도 그의 덕분이다. 실제로 김연아 신드롬은
열병처럼 한국인에게 퍼졌으며, 그녀의 손은 ‘마이다스의 손’이 되어 만지는 것마다 모두 황금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 같았다. 그녀가 먹고,
마시고, 듣고, 입는 모든 것은 간접홍보가 되어, 매출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그녀의 행동과 패션은 곧 트렌드가 되어 젊은이들의 유행으로
자리했다.
세상에 좋은 음악은 참 많다. 그러나 좋은 음악이 모두 사랑받고, 들려지는 것은 아니다. 타이스의 명상곡은 100여 년
전 작곡되어 수도 없이 연주되었지만, 지금처럼 이렇게 대중에게 인기를 얻어본 적은 없었다. 수많은 재즈 뮤지션들이 좋아하는 거쉰의 피아노 협주곡
F장조도 위대한 곡이지만 한국인 모두의 관심을 한날한시에 받은 적은 없었다.
스포츠와 음악이 만나 종합예술이 되어 감동의 드라마로
발전하는 한 편에서는 치열한 마케팅 경쟁이 치열하다. ‘귀하신 몸’이 된 김연아가 한국 경제에 미치는 경제효과가 6조 원에 이른다고 한다.
그녀가 최근 음주광고의 모델로 나서면서 주류 매출이 급등했다. 이에 대해 반대하는 비난도 컸다. 청소년 음주를 부추긴다고. 또 순수성을 잃고
점차 상업화 되어간다고. 이런 와중에서 교생실습에 대한 한 교수의 김 선수 비판발언이 법정으로 비화되는 등 그녀가 구설수로 시달리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선수로서의 재기를 선언한 김연아의 결단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많은 사람들은 그녀에게 또
하나의 금메달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불가능을 극복한 투혼으로 연출하는 아름다운 한 편의 드라마를 기대할 것이다. 국민의 영웅에서 피겨스케이팅
선수로 되돌아간 그녀가 다시 성공하여 음악 같은 분야에도 좋은 영향을 미치기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