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009-3.gif현대음악은 주제와 형식이 자유롭기 때문에 작곡가들은 새로운 기법을 창안하여 저마다 독특한 개성을 만들어 간다. 이러한 변화와 개혁의 최첨단에 섰던 20세기 최고의 작곡가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Igor Fyodorovich Stravinsky, 1882년 6월17일~1971년 4월6일)였다.

그는 발레음악 ‘봄의 제전’을 통해 원시적인 강렬한 리듬과 충격적인 불협화음으로 바바리즘(Barbarism) 민족음악을 내놓았고, 반대로 8명의 연주자로 구성된 발레곡 ‘병사 이야기’에서는 아름다운 선율과 화음이 돋보이는 신고전주의를 표방했다. 또한 막 태어난 재즈음악에도 기여했으며, 쇤베르크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아예 12음 기법에 매달려 남은 생을 보냈다.

필자가 모국 음반사에 근무하던 시절 친구가 음악을 들려주면서 작곡가를 맞추어 보라고 했는데 끝내 알 수 없었던 곡이 스트라빈스키의 ‘3악장의 교향곡’이었다. 이 곡은 ‘불새’와 ‘봄의 제전’으로 알려진 전위적인 작곡가의 작품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우아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오히려 고전파 작곡가 모차르트나 베토벤을 연상케 한다. 이를 계기로 나는 그에게 흥미를 갖게 되었고, 그의 작품을 모두 들어 보았다. 작품마다 강렬한 개성이 빛났고 강인한 역동성이 거기 있었다. 현대음악의 역사와 다양성을 한 작곡가의 작품들을 통해 만난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마치 여러 작곡가의 작품들을 한 데 모아 놓은 것 같은 ‘스트라빈스키 전집’은 팔색조의 음악가, 카멜레온의 작곡가로 불리는 그의 다양한 음악세계와 개척정신을 잘 보여준다.

스트라빈스키는 1882년 러시아 페테르부르크에서 성악가인 아버지와 다재다능한 음악가였던 어머니로부터 태어났다. 1893년 11살 때 차이콥스키의 지휘를 보고 감동, 음악가가 되려다가 아버지의 반대로 법률을 전공했다. 그러나 법대 졸업 후 유명한 ‘러시아 5인조(과거 경향에서 탈피를 시도한 전위적 작곡가들)’ 중 관현악의 대가였던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제자가 되어 작곡을 공부했다. 그는 악기의 특성을 잘 아는 선생으로부터 관현악법을 터득한 후 1905년 23세 나이에 첫 작품 제1교향곡을 작곡했다. 이후 그는 교향곡에 번호를 붙이지 않고 ‘E 플랫 장조 교향곡’ ‘C장조 교향곡’ ‘3악장의 교향곡’ ‘시편 교향곡’ 식으로 이름을 붙여 대작들을 내놓았다.

다음해 사촌동생 카테리나(Katerina Bosanko)와 결혼했고, 26세 때에는 교향적 환상곡 ‘불꽃’을 작곡, 작곡가로서 명성을 굳혔다. 이즈음 러시아의 발레 프로듀서로서 최고의 공연 기획가인 댜길레프(Sergei Pavlovich Dyagilev, 1872~1929년)는 그에게 발레곡들을 의뢰했고, 이에 따라 그는 1910년(28세) 대규모 관현악 편성곡인 발레곡 ‘불새’를 작곡하였다. 이어 혼을 가진 광대 인형, 발레리나 인형과 무어인 인형들이 삼각관계에 빠져 결국에는 어느 한 인형이 다른 인형을 죽인다는 내용의 발레곡 ‘페트루슈카’를 발표하였다.

1913년 파리에서 샹젤리제 극장이 개관되면서 공연 기획자 댜길로프는 개관연주곡을 그에게 의뢰했다. 발레곡 ‘봄의 제전’은 이렇게 탄생했으나 역사에 남는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폴란드계 러시아인으로 전설의 발레리노인 니진스키(Vatslav Nizhinskii, 1890~1950년)가 주연한 첫 공연은 극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이 곡은 기존 발레곡과 전혀 다른 1/16 박자나 3/16 박자 등을 사용, 발레리나나 음악연주자 모두 박자를 맞추는 데 크게 애를 먹었다. 게다가가 첫 소절의 ‘바순’ 소리는 괴상하게 들려 청중들로부터 비웃음을 샀다. 야유가 심해지면서 극장은 축제분위기는커녕 작품에 대한 반대파와 찬성파의 싸움터로 변했다. 당황한 댜길레프는 소동진압을 위해 조명을 껐다 켰다를 반복했는데 이것이 소동을 오히려 더 격화시키지 않았나 의심된다.

‘봄의 제전’은 리듬이 불규칙하고 강렬하며 여러 개의 화성을 동시에 사용했다. 그는 이 곡에 여러 실험적 요소들을 도입했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이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이에 작곡가는 “발레가 음악을 죽였으므로 이 곡은 그냥 음악연주로만 듣자. 아마 청중들의 호응이 굉장히 좋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봄의 제전’은 연주곡으로 크게 성공하여 그는 세기적인 음악의 혁신자로 당당히 등장했다.

댜길레프와 니진스키의 동성애 행각이 충격적이었지만, 스트라빈스키-댜길레프-니진스키의 황금 트리오는 발레공연의 새로운 금자탑을 이루었고 그는 차이콥스키와 함께 발레음악의 최고 작곡가라는 명성을 얻었다(그는 20세기 최고의 화가 파블로 피카소와 절친했다. 피카소는 그의 초상화를 종종 그려주었다).

1914년(32세) 그는 프랑스로 망명했고 1917년 러시아 공산혁명이 성공하자 열성 공산당원들은 그를 “고국을 등진 망명작곡가”로 비난, 정부의 재정지원을 끊어버렸다. 생계가 어려워진 그는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기 시작했다. 1918년(36세) 8명의 소규모 오케스트라 편성으로 발레극을 전개해 가는 독특한 형식의 발레곡 ‘병사이야기’를 발표하였고, 이어서 18세기 바로크시대의 이탈리아 작곡가 페르골레시의 악보를 보고 영감을 얻은 발레곡 ‘풀치넬라’를 작곡하여 고전파 음악으로 회귀하는 ‘신고전주의 작곡가’로 변신했다. 베토벤과 차이콥스키를 추종하면서 오라토리오 ‘오이디푸스 왕’ 같은 듣기 편하고 대중지향적인 곡도 작곡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그는 이같은 신고전주의 성향을 창작열로 불사르며 1930년(48세) ‘시편 교향곡’을 썼다. 또한 미국의 초기 재즈음악에 관심을 갖고 래그타임 음악을 작곡하여 다방면의 만능 수퍼 작곡가로 군림하게 된다. 1923년(41세) 그리스의 비극을 노래한 ‘뮤즈를 이끄는 아폴로’를 작곡했다.

그는 1938년(56세) 첫째딸 루드밀라가 폐결핵으로 사망하고, 이듬해 사랑하는 아내 카테리나 마저 세상을 떠나자 깊은 실의에 빠져 1940년(58세) 미국으로 이주했다. 미국서 그는 12음 기법의 창시자인 쇤베르크를 만나면서 새로운 창작에 다시 몰두했다. 처음에는 12음 기법을 반대했으나, 이후 그는 12음 기법을 기존 조성음악과 혼용했다. 1957년(75세)에 발표한 발레곡 ‘아곤’에서는 무조음악과 조성음악을 모두 사용해 화제가 되었고, 말년에는 아예 12음 기법만으로 작곡했다. 지휘자로서도 왕성한 활동을 펼치다가 1971년 89세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삶은 ‘봄의 제전’으로 대표되는 제1기 혁명의 시대, ‘시편 교향곡’과 같은 제2기 신고전주의 시대, 12음 기법을 사용한 제3기 혼돈의 시대로 구분되는데, 그는 “나는 비평가들보다 한 걸음 앞서가며 오늘을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해 쓴다”라고 말했다. 그는 끝없이 새로움을 추구한 진화형 작곡가의 전형이었으며, 변화를 받아들이면서 미래시대의 요구를 고민했던 융합형 음악가의 본보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