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연이 많은 연인들은 이 노래는 듣지 마십시오. 가을에 보낸 연인을 부르는 애절함이 너무나 절절하기 때문입니다.
지난주 소개한
이브 몽탕의 ‘고엽’과 함께 프랑스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가을의 노래 ‘사랑의 찬가’는 가을을 노래하지는 않았지만 사연을 알면 노래를 듣지 않아도
눈시울이 뜨겁다.
1949년 10월27일 파리를 떠나 미국으로 향하던 에어프랑스기는 대서양 중부 아조레스군도의 산봉우리에
추락했다. 48명의 탑승객 전원이 사망한 이 사고는 20세기에 빈번했던 비행기 사고 중 하나이지만 적어도 프랑스에게는 잊을 수 없는 참사였다.
사망자 중에는 프랑스의 국민가수 에디트 피아프의 연인 마르셀 세르당과 촉망받던 바이올린 연주자 지네트 느뵈가 있었기 때문이다. 세르당은 프로복싱
미들급 세계챔피언으로 피아프의 연인으로 알려지기 전부터 프랑스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그런 그는 외모는 볼품없지만 폭발적인 가창력을 가진
피아프에게 한눈에 반했다. 그는 사랑에 빠진다.

뉴욕공연 중이던 피아프는 며칠 후면 만날 예정이던 세르당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당장 보고 싶다”고 재촉했다. 세르당은 예약한 선박편을 취소하고, 급하게 비행기편을 찾아 몸을 실었다. 그도 역시 하루라도 빨리 연인을 보고
싶었다. 그러나 두 연인의 불같은 사랑은 비극을 불렀다.
애인의 돌연사를 접한 피아프는 사랑을 잃은 슬픔과 그를 재촉한 자책으로
사흘 낮과 밤을 자기 방에서 칩거했다. 사흘 뒤 문을 열고 나왔을 때는 해쓱한 얼굴에 삭발한 모습이었다. 자학이었다. 피아프는 그동안 세르당을
위해 시를 썼고 곧 어느 작곡가가 곡을 붙였다.
푸른 하늘이 우리들 위로 무너진다 해도/ 모든 대지가 다 허물어진다
해도/ 만약 당신이 나를 사랑해 준다면/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아요/ 사랑이 매일 아침 내 마음에 넘쳐흐르고/ 내 몸이 당신의 손 아래서 떨고
있는 한/ 세상 모든 것은 아무래도 좋아요/ 당신의 사랑이 있는 한/ 내게는 대단한 일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에요/ 만약 당신이 원하신다면/
세상 끝까지라도 가겠어요/ 금발머리로 염색이라도 하겠어요/ 하늘의 달을 따러, 또 보물을 훔치러 가겠어요/ 조국도 버리고, 친구도 버리겠어요/
사람들이 아무리 비웃는다 해도/ 나는 무엇이든 해 내겠어요/ 만약 어느 날 갑자기/ 나와 당신의 인생이 갈라진다고 해도/ 만약 당신이 죽어서 먼
곳에 가버린다 해도/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면 내겐 아무 일도 아니에요/ 나 또한 당신과 함께 죽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우리는 끝없는 푸르름
속에서/ 두 사람을 위한 영원함을 가지는 거에요/ 이제 아무 문제도 없는 하늘 속에서.../ 우린 서로 사랑하고
있으니까요...
피아프의 절규에 청중은 모두 눈물을 흘렸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샹송 ‘사랑의 찬가 (Hymne A
L'amour)’는 이렇게 탄생됐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영원까지 따라가겠다”고 노래했던 그는 이내 노래와 연기
실력이 뛰어난 6살 연하의 이브 몽탕에 반해 짧은 기간이었지만 동거하면서 그를 후원, 그가 세계적인 스타가 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이후
그와 헤어진 피아프는 자포자기랄까, 멈추지 않는 남성편력으로 수많은 스캔들을 일으켰다.
1915년 1차대전이라는 격변의 시기에
곡예사인 아버지와 무명 가수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피아프의 본명은 에디트 조반나 가시옹(Edith Giovanna Gassion)이다.
길에서 태어났다고 할 만큼 가난했고, 생후 2개월 만에 고아가 되어 거리를 떠돌았다. 불우한 어린 시절 거리리에서 노래를 부르며 겨우 입에
풀칠했다. 커서는 미혼모가 되었고 심지어 매춘으로 삶을 연명할 정도였다.
그러나 ‘가수의 꿈’은 늘 소중히 간직했다. 거리에서
노래하던 어느날 카바레 주인의 눈에 들어 무대에 선 그는 생애 처음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불우한 어린 시절과 불행했던 삶의 질곡이
한으로 맺혀 토해내듯 부르짖는 그녀의 노래에 청중은 눈물로 감동했다. 영양실조로 키가 140센티미터에서 멈춘 그녀에게 ‘작은 참새
(piaf)’라는 예명이 붙었다. ‘작은 참새’가 ‘작은 거인’이 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녀의 팬이었던 시인 레이몽 아소와
극작가 장 콕도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파리 무대로 진출한 그녀는 파리를 순식간에 사로잡았다.
유명세를 탔을 때 피아프는 1살 연하의
유부남으로 국민영웅이었던 세르당을 만났다. 두 사람은 곧 사랑의 불꽃을 태웠다. 두 사람의 장밋빛 밀애를 노래한 ‘장미빛 인생(La Vie En
Rose)’이 나온 배경이다. 이 곡은 사랑을 표현한 곡이지만, 당시 2차세계대전으로 피폐한 삶을 사는 국민들에게 ‘다시 좋은 날이 올
것’이라는 용기와 희망을 주기도 해서 더욱 유명해졌다.
화려한 남성 편력 끝에 1952년 가수 자크 피르스와 정식 결혼한 그는
1951년과 52년 연속해서 디스크 대상을 수상하였고, 히트곡 ‘빠담, 빠담, 빠담’으로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하늘로부터 재능을 받은 대신
불행을 타고났는지 결혼은 4년 만에 파경에 이르자 피아프는 그때부터 알코올과 약물에 탐닉했으며 자살을 시도하는 단계에 도달했다. 그러다가 60년
자신의 비극적 삶을 노래한 ‘아니, 후회하지 않아’로 재기에 성공하여, 62년에는 23살 연하의 청년 테오 사라포와 재혼했으나 알코올, 약물,
무질서한 생활로 약해진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이듬해인 63년 10월11일 48세의 나이로 삶을 마감했다. 겨우 반세기를 살았으나 천국과 지옥을
오고간 파란만장의 삶이었다.
피아프는 프랑스의 국민가수를 넘어 레코드 역사상의 기록도 남겼다. 단순히 노래만을 잘 부른 것이
아니라, 눈물에 젖은 인생을 혼으로 노래했기 때문이다. 한때 살인 누명으로 범법자로 살았으며 밀애와 불륜, 연인의 비행기사고, 약물과 알코올
중독, 자살미수, 치료와 재기, 결혼과 이혼, 재혼까지 한 편의 영화와 같은 삶을 살았던 그녀는 ‘작은 참새’가 아닌 ‘슬픈 참새’였다. 사실은
음악계의 ‘작은 거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