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의 “마른 꽃”을 다시 읽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10년 전, 신경숙이 “현대문학상”을 탄 “깊은 숨을 쉴 때마다” 수상작품집에 찬조로 실린 이 단편을 읽으면서, 끝맺음이, 참 멋있었다는, 무슨 하얀 여백 같은 것이 기억의 갈피 속에 한동안 머물러있었는데...정말 우연이었다. 향기를 잃어가는 나이든 여인의 메타포인 “마른 꽃”을 다시 읽게 된 것은.
서울에서 훌쩍 날아온 세 살, 네 살짜리 손자 손녀가, 심심하면 내 서재로 쳐들어와선, 저이들 마음 내키는 대로 모든 걸 흩으러 놓고, 숨바꼭질을 하자며 어디론가 숨어버리곤 했었는데, 한 보름 쯤, 그러다가, 훌쩍 다시 서울로 날아가 버렸을 때, 그립지만 설레임이 연한 그런 그리움을 그래도 지우지 못하면서, 주섬주섬 이것저것 제자리에 주서 넣다가 손에 닿은 것이, “마른 꽃”이 담겨 있는 단행본이었다.
그 책을 들고 호숫가로 나간다. 한 여름, 호숫가에서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내게 허용된, 내가 기질 수 있는 최상의 사치다. 햇살은 따거웠지만 덥지는 않았다. 일광욕을 하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떠들썩하지는 않았다.
나무그늘에 타월을 펴고, 앉었다 누웠다 자세를 바꿔가며 책장을 넘긴다.
박완서는 이야기를 잘 풀어나간다. 별 것도 아닌 일상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실화를 그럴 듯하게 끌며 풀어나가는 솜씨가 타고난 이야기꾼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회갑을 앞둔 초로의 미망인이, 상처한지 삼년 되는 멋쟁이 조 박사를 만나면서 호감을 갖게 되고, 호감이 연애로 발전하는 과정이 그려진다. 시선이 자꾸 활자를 따른다. 재미있다.
연애과정을 눈치 챈 딸이 정색을 하고 도대체 그 늙은이하고 어쩔 셈이냐고 다그친다. “그 늙은이라니.” “그럼 우리 엄마를 꼬셨는데 고운 말이 나와?” 그러던 딸아이가, 저쪽 집 며느리와 대화가 트이면서 <그 늙은이>가 <조 박사님>으로 바뀌는 것에 작중화자는 실소를 참지 못한다. “엄마 조 박사님 사랑하지?” 에미가 딸자식을 출가시키려는 듯이 딸이 작중화자에게 결합을 하라고 성화하는 과정이 유니크하게 그려진다.
프로이드의 말을 꺼내지 않아도 사랑이 곧 정욕이라는 건 작중화자의 나이쯤 되면 누구나 수긍하게 된다.
겉멋을 부리며 정서적인 연애가 한참일 때 화자는 여자로서의 “나”를 바라보는 환한 시선을 “나”에게 붓는다.
(...)연애 감정은 젊었을 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데 정욕이 비어 있었다. 정욕이 눈을 가리지 않으니까 너무도 빠안히 모든 것이 보였다. 아무리 멋쟁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이 닥칠 늙음의 속성들이 그렇게 투명하게 보일 수가 없었다.(...)
이어서 곱지 못한 늙음(남성의)의 속성을 한 삼백 자 쯤의 길이로 지면을 메꾼다. 효과를 최대화하려는 듯 조금은 과장이 보이지만, 나이 든 남자의 속성이 보기로 많이 다뤄진다. 늙음의 속성을 아무렇지 않게 견딜 수 있다는 것은 사랑하니까, 사랑만 있으면 다 되는 것은 아니라고 화자는 담담히 말한다.
(...)적어도 같이 아이를 만들고, 낳고, 기르는 그 짐승스러운 시간을 같이한 사이가 아니면 안 되리라. 겉멋에 비해 정욕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나이 든 여자의 메타포로 그려진 “마른 꽃”은 그러나 젊음의 발랄함이 가질 수 없는 또 다른 깊은 아름다움으로 내겐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