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필의 평양공연 비디오를 보면서, 내게 다가온 첫 인상은 웃음을 잃어버린 사람들이라는, 어딘가 그런 서글픔이었다.
여자는 말쑥한 한복으로, 남자는 양복 정장으로 차려입은 관객은 모두가 선택된 사람들 같아 보였다. 틈틈이 화면에 비치는 그들의 얼굴은 표정이 없다. 웃음을 머금은 얼굴이 없다. 좀 황당하다. 표정은 딱딱하고 몸가짐은 굳어 보인다. 일상의 경직된 삶이 몸에 배어서 그럴테지, 하면서도, 이건 음악회, 그것도 흥겨운 대중 음악회가 아닌가, 노래가 흐르면 신나게 따라 부르기도 하고, 리듬을 따라 몸도 흔들고, 박수를 터뜨리며 한껏 흥겹고 편안한 게 우리네 대중 음악회인데.... 노래 한곡이 끝나면 토닥토닥 박수를 치곤 그만이다. 첫 곡이 “태양의 눈”이었는데, 비슷하게 빠른 노래를 연거푸 쏟아내도 반응은 차갑다. 조금 과장하면 얼음으로 조각한 차가운 얼굴에 손뼉만 토닥이는 형국이다. 꾸지람을 당한 학생들의 머쓱한 모습을 연상케 한다. 대중음악은 그러나 인간의 본능에 스며있는 어쩔 수 없는 것. 시간이 흐르면서 얼음 조각상은 서서히 녹으면서 공연장은 온기로 가득 찬다. 마지막 곡인 “꿈의 아리랑”은 무대와 관객석을 종이 눈이 하얗게 뒤덮는 장관 속에 분위기는 한껏 달아올랐고, “재창”을 외치던 관객은 재창곡인 “홀로 아리랑”을 함께 따라 부르는 열기 속에 조용필은 기립박수의 예우를 받는다.
평양공연 테이프를 보면서, 나는, 뭔가 우리의 삶을 보여주려는 조용필의 대단한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북쪽에 아첨하는 노래는 없었다. 당당한 자기노래였다. 첨단기술이 활용된 무대와 공연은 나도 놀랬다. 5톤 트럭 28대분의 장비를 싣고 가 세운, 너비 60메타, 높이 16메타의 무대는 7천명이 응집한 체육관 여기저기에 온통 조명 빔을 쏘아댔고 스크린은 휘황한 동영상을 쏟아내며, 조용필은 뜨겁게 노래했고, 그 노래는 끝내 북의 관객을 압도한다. 한(恨)과 정(情)이 절절한 그의 창법은 대중음악과 고급음악의 간극을 좁힌다. 한류란 이런 것이 아닐까, 나는 낯익은 한류(韓流)라는 말을 생각한다.
한류....뿌리 깊은 한국인에 대한 일본인의 편견을 바꾸어 놓은 것이 인간의 순수한 애정을 그린 <겨울연가>라는 단 한편의 TV 드라마로부터 시작된 것은 다들 아는 얘기다.
중국의 젊은이들이 한국의 대중문화에 빠지는 것을 경고하기 위해 베이징의 청년보(靑年報)는 1999년 처음으로 한류라는 말을 사용한다. 그 뜻은 음이 같은 부정적 의미의 한류(寒流)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사람들의 감동으로 이뤄지는 대중문화는 그러나 어쩔 수 없는 것. 韓流를 寒流라는 교조적 여론조성으로도 중국은 한류의 바람을 잠재울 수 없었다.
정치 경제 군사력 그 어떤 무엇도 풀 수 없는 걸 풀어나가는 게 격 높은 대중문화의 카리스마다.
장명수 칼럼<개성 가는 길>(9월 12일)은 말한다. (...)13년 만에 다시 보는 개성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변한 것은 현수막에 쓴 이름이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바뀐 것뿐이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장군님 만세/조국에 심장을 바치자/.... 쥐죽은 듯 조용한 도시에서 표어들은 소리 없이 외치고 있었다(...).
지층을 흐르는 물은 보이지 않는다. 시계가 멈춰 있다는 정체된 영토 북녘 땅에, 조용필의 평양공연이 또 다른 의미의 한류의 흐름으로 지층을 흐르는 물일수도 있다는 아득한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