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ystopia’는 ‘utopia’의 반의어다. 문예지 ‘한국문학(가을호)’에는 홍상화의 ‘디스토피아(650매)’가 실려 있다. 나는 단숨에 끌린다. 이렇게까지 갔나... 하면서. 작가는 말한다. “그동안 유보했던 이 작품을 내보내는 것은, 지난 7월 남북작가대회의 일원으로 북한을 방문해 백두산에 올랐을 때 마련된 행사에서 ‘...양키점령군의 총구 앞에서 / 자본가 개들의 이빨 앞에서...’로 시작되는 ‘조국은 하나다(김남주)’가 낭송되는 것을 보고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남한 지식인 사회에서 좌경세력의 존재는 이제 남북 간의 화해에 도움이 되는 수준을 넘어 위험한 수준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p21).”
이 글은 소설이긴 하지만 거의 모든 내용이 실명으로 거론된다. 교수·작가·지식인들 사이의 대화체 형식으로 전개되는 내용 가운데, 대표적인 민중시인 김남주의 ‘예술 지상주의’가 나온다. ‘현실은 네미X이다 / ... / 제 애비도 몰라보는 후레자식이 예술지상주의였다 / ... / 부르주아 새끼들의 위선이 거만이 구역질나서 / ... / 에끼 숭악한 사기꾼들 / 죽어서 개도 안 물어가겠다 / ...’로 이어지는 투쟁시다. 좌경학자 평론가는 그러나 이 시에 “투쟁의 미학이 상당히 누그러져 있다”고 불평을 쏟아낸다(p28).
시정잡배도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의 나열이 시라고 널리 읽히는 것은 좌파지식인들에 의해 ‘민중시인’ ‘민족시인’이라는 ‘문학의 월계관’이 씌워졌기 때문이라고 화자는 목소리를 높인다.
현재 진보적 문인단체인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자문위원인 작가 홍상화는, 민중학계의 원로시인과 기막힌 이야길 나누며 서로, 어쩌다 우리가 이렇게 까지 됐느냐며 고민한다.
손자 보는 재미로 산다는 노 시인의 말. “손자 녀석이 요즘 부르는 노랫말을 가만히 들어보니, 놀랍게도 이렇더군요. ‘빈 라덴을 따라 나도 테러리스트가 될 거야! 원자탄을 메고 63빌딩을 폭파할거야!’....”
“대체 어떤 자들이 어린애들에게 그렇게 가르칠까요?...”(p64).
화자들 사이에 오가는 대화엔 우리들 귀에 익은 이야기도 들린다.
“모스크바 대학의 대학생들까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이상을 버렸습니다. 그런데 오직 한반도의 젊은이들만이 그 폐기된 이상주의를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버리기는커녕 주체사상과 이상하게 혼합되어 더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p156).”
참으로 이해할 수 없고 우려스러운 답답한 심정으로 책장을 넘기다가, 거기 소개되어 있는 노동자를 대표하는 시인의 ‘진짜 노동자’를 읽는다.
‘... / 이 땅에 노동자로 태어나서 / ... / 이빨만 까는 놈은 좆도 헛물 / 쎈방이라고 다 쎈방이 아녀 / 바이트가 달려야 쎈방이제 / ... / 포크레인 삽날 정도는 되어야 / 진짜 노동자지.’
차라리 민중 선동용 정치구호 같다. 섬뜩한 날을 세우던 그 많던 민중시인들은 왜 북한의 인권에 대해선 ‘모르쇠’로 일관하는 걸까. 백두산에 우르르 몰려 올라가서 어떤 이는 “...양키 점령군의 총구 앞에서...”나 읊조리며 아부하고 있으니, 부끄러운 일이다, 부끄럽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