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랍시고 끄적여 놓으면 가끔 첫 독자가 남편이 되기도 한다. 읽어 보라고 식탁에 올려놓고는 짧은 촌평을 은근히 기다리는 것이다. 무뚝뚝한 그의
입에서 좋은데! 한 마디면 충분히 흐뭇해진다. 언젠가는 논쟁이 벌어진 일이 있었는데, 글 중에 남의 말을 인용하는 것에 대해 그는 반대
입장이었다. 유명 철학자나 사상가의 말을 옮겨 쓴다는 것은 내 것처럼 소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쉽게 넘어가려는 수법이란 것이다. 한 술 더 떠서
그는 책꽂이에 책을 모아들이는 취향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글을 쓰면서 자꾸 책을 들춰보는 것은 순전히 베끼려는 의도가 아닐 것이냐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책을 많이 읽는 편인데, 읽고 난 책은 미련 없이 버리거나 남에게 넘겨주곤 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우리 집 서가엔 내 책만
그득하다. 그는 한 때 셰익스피어를 연구한 정통 문학파니 그의 이런 지적에 곧장 반론을 제기하기란 쉽지 않았다. 석연치 않은 채로 그저 풀이
죽을 수밖에.
그런데, 제대로 반론을 펼 기회가 찾아왔다. 토마스 머튼의 전기를 읽다가 그의 책 사랑이 유별나서 여행을 떠날 때도
항상 책을 끌고 다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책의 무게가 엄청나서 비행기를 탈 때 수하물 용량 초과로 벌금까지 물었다는 일화였다. 영성의
대가로 일컬어지는 그가 책에 이토록 탐닉했다는 것은 당연한 것 같으면서도 뜻밖의 사실 같았다. 아무튼 내 입장에는 힘을 실어주는 내용이었다.
서울에서 들른 영풍문고에서는 이어령의 책상을 구경할 기회가 있었다. 물론 책 속의 내용을 통해서다. 그 책에서 이어령은 3m가
넘는 책상과 총 6대의 컴퓨터가 작동 중인 서재를 사진으로 공개한 것이다. 모든 데이터를 축적해놓고 다루는 그 어른의 정보화 수준이 놀라웠지만,
언어를 다스리는 연금술사, 박학다식의 천재에게도 자료의 저장창고는 필요한 것인가 보다. 하물며 턱없이 내공이 부족한 내게 있어서야 어찌 책의
집착이 필요치 않겠는가. 책을 통해서 책의 필요성을 주장할 근거를 얻은 셈이다.
가끔 책 속에서 다른 책을 발견하는 기쁨도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나는 아빌라의 데레사를 영적 스승으로 삼고 싶을 만큼 성녀의 자서전을 큰 감동으로 읽었었다. 그런데, 독일의 철학자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죽은 ‘에디트 슈타인’을 읽다가 그녀가 유대교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한 동기를 알게 된다. 바로 아빌라의 데레사 자서전을 읽은
것이 결정적 회심의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발견한 내 기쁨은 컸다. 조금 과장하면 마치 에디트 슈타인과 무슨 영적 친구라도 된 것
같았다.
우리 시대의 성자 이태석 신부님의 책을 읽다가도 비슷한 기쁨을 가진 적이 있다. 그 분이 직접 남기신 유일한 책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를 읽을 때였다. 책의 끝 부분에 한 장의 사진이 있었다. 신부님이 수단의 아이들로 구성된 35인조 브라스 밴드와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어? 이 사진? 돈 보스코 성인의 책에서 본 사진인데? 얼른 찾아보니 정말로 돈 보스코가 그만한 숫자의 소년 브라스 밴드에 둘러싸여
웃고 계셨다. 두 장의 사진이 너무나 똑같았다. 그리고 보니, 신부님의 영어이름 쫄리(John Lee)가 돈 보스코(John Bosco)와
일치하고, 그가 속한 살레시오 수도회의 창시자가 돈 보스코라는데 생각이 닿았다. 그렇구나! 이태석 신부의 영적 스승은 바로 돈 보스코였구나.
그를 닮고자 하였구나. 스승의 삶을 판박이로 담아 낸 이 사진이 바로 그 증거다. 눈시울이 젖어들고 있었다.
책 속에서 삶의
실천적 지혜를 얻을 때도 있다. 최근에 헨리 나웬의 ‘마지막 일기’를 읽었는데 이 책은 그가 토론토의 장애자 공동체인 새벽공동체에 머물다 갑자기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기록한 일기다. 말하자면 영성으로 걸러내지 않은 그의 생활 모습을 그대로 엿볼 수 있는는 책이었다. 안식년을 맞이해 책을
쓰고, 끊임없이 이동하고, 지인들과 식사를 즐기는 일상이 모두 드러나 있었다. 그러나 산책이나 운동을 했다는 기록은 책의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이 사실이 그를 심장마비로 이끈 것은 아니었을지... 몸과 정신을 함께 단련하자. 내가 얻은 다소 엉뚱한 교훈이다. 그는 자신이 거처할
아파트를 새벽공동체 한 켠에 지을 계획이었다. 그 계획이 가을이면 실현될 수 있으리라 여겼지만, 그 가을에 하느님 나라로 가버렸다. 온타리오주
킹 씨티 Sacred Heart 공동묘지에 그의 무덤이 있다고 한다. 가까운 날에 한 번 방문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