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뭐 바지저고리냐?” “핫바지로 보이냐?”
이 말에는 우리 것이 촌스럽고 별볼일 없다는 자조적 엽전의식이 깔려있다. 왜 하필 쇠딱지가 덜 떨어진 인간을 빗대어 한복에 비유되느냐는 거다. 이 의식을 뒤집으면 그기에 실라 호텔식당 한복푸대접의 답이 보인다.
지난 100년 근대화(서양화)의 과정에서 우리 스스로가 우리적인 것들을 걸림돌로 취급해버렸으니 신라호텔의 이번 처사는 이상할 것 하나 없는데, 스스로도 한복 입기를 꺼리는 내가 이런 글을 쓰다니 더 웃긴다.
지금 우리적인 것, 무엇이 남았는가? 관혼상제 그 예식문화가 남았는가? 의복은 물론 주거문화가 남았는가? 유일무이로 남은 것 하나 식탁문화가 있다. 밥과 김치를 주식으로, 숟가락과 젓가락을 짝으로 한 세계유일의 식탁문화 유지는 그래서 기적이다.
우린 말로만 우리 것이 최고라 목청을 높인다. 세계인들이 그 우수성에 놀라고 있는 한글만 해도 그렇다. 창시해 놓고도 400년을 언문으로 홀대하다 구한말 근대화의 과정에서 겨우 재발굴 컴퓨터시대에 그 우수성이 빛을 발하고 있다.
지금은 달라졌는지 모르지만 나의 초 중 고 대 16년 교육에서 국악(창 악기 춤)에 대해 단 한시간도 배운 기억이 없다는 건 오천년 역사에 부끄러운 엽전의식이다.
요즘 이곳에서도 한국TV를 실시간으로 방연되고 있어 한류바람이 세계에 불고 있다는 걸 안다. 그러나 그것은 내 보기로는 진정한 한류(韓流)가 아니라 미류(美流)의 흉내다. 한국TV에서 정작 우리의 가락과 춤을 제대로 방영되는 걸 보지 못한 걸로 봐 우리 것이 상업성이 없어 푸대접 받고 있다는 의미인데, 그만큼 우리 것이 국민정서에서 벗어나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서울의 최고급 식당 서열 선두엔 일식, 프랑스식, 중화식, 이태리식이 줄줄이 차지하고 한식은 변두리 서민식으로 밀려 나 있는 희한한 나라, 엽전의식이 이정도면 민족의식 건강성은 중증 수준이다.
5천년역사 유전인자 버릇의 꿈틀거림은 싫다 해서 소멸될 성질의 것이 아닐 것인데, 5천년역사가 얼이 빠졌었거나, 벨 빠진 민족이 였거나 둘 중 하나다.
분명 한식메뉴가 70%이고 손님 또한 한식을 그렇게 시켜먹고 있는데 식당이름은 일본식 발음으로 되어 있는 희한한 나라 민도, 돈 벌기 위한 장사 속이라면 내가 간여할 일이 못 되지만 서도.
우리 창 우리 춤이 방송에서 밀려나 있는 나라, 사투리 억양을 부끄러워하는 아나운서의 입에서 “힘내자!” “나가자!” “아자!”란 좋은 우리말을 외면하고 연신 “파이팅(싸우자)!”을 외치고 있는, 영어를 고급어로 여기고 있는 나라, 그런 나라 최고급 실라 호텔에서 촌스러운 한복여인이 핫바지 취급 받았다 해서 비난할 것 하나 없다. 되려 토를 달고 있는 내가 바지저고리 엽전의식 티 내는 꼴이다.
한복, 나도 단 한번 입어본 일이 있다. 말 그대로 핫바지 꼴이다. 잠방이 입고 물래 돌리고 있는 인도의 깐듸 꼴이다. 이곳 시내를 활보할 자신이 없다. 우선 모양세가 없다. 날아갈 듯 학(鶴)처럼 도도한 여성한복은 비유될 수 없을 만큼 우아한데 남성한복은 애국심으로 백번 무장해 봐도 핫바지 꼴이다. 여성 자신의 한복 패션감각엔 그 우수성이 돋보이면서 왜 상대 남자 옷 바느질솜씨엔 핫바지 꼴이 돼버렸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못 말릴 바람기 많은 남자의 외도를 줄여보려는 영리한 시도라 이해하면 된다.
어쨌거나 우아한 여성의 한복까지 싸잡아 핫바지 치급을 해버린 이번 실라호텔 실수는 나도 화나지만 이렇게 우리 의식 밑바닥에 깔린 엽전의식이 만들어 낸 합작품이다.
“영어로 말하는 나라는 다 잘 살고 있다”라고 선진화의 핵심 바탕의 지름길을 서구화에 두고 매진하고 있는 의식이 고질화 되어 있는 한 우리 것은 촌스럽고 무능하고 비능률적이고 미개하게 보여질 건 뻔하다. 그러함에도, 5천년뿌리문화의 꿈틀틀거림에 가끔은 우리적인 것에 젖어보고 싶은 충동이 없지 않을 터, 김치를 찾듯 창 소리도 듣고싶을 태고, 가끔은 날아갈 듯 우아한 한옥지붕 처마끝처럼 팔을 휘감아 뻗어올려 어허 두둥실 흥의 꿈틀거림에 어깨춤사리가 절로 나올 만도 한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