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자동차는 평생 잊을 수 없다. 첫사랑과 같이.
1956년에 미국 디트로이트에 처음 왔을 때 있었던 이야기다. 전쟁으로 황폐화된 한국에서 온 나에게는 모든 것이 생소하고 신기하였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자동차 홍수였다. 집집마다 차가 있고, 길에는 사람은 보이지 않고 자동차만 달리고 있었다. 돈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차 하나는 몰고 다니고 있었다. 차 운전을 못 하고, 차 한 대 갖지 못하는 사람은 어딘가 모자란 인간이요, 사람 축에 끼지 못하는 존재 같이 보였다. 신천지에 와서 새 출발을 하려는 내가 모자란 사람 축에 끼어 출발을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수 개월 있다 절호의 기회가 왔다. 내과 레지던트로 승격한 미국인 랄프가 의대 2학년 때 중고차로 사서 몰고 다니던 플리머스 차를 팔고, 좀 나은 중고차로 개비한다는 소문이 퍼졌다. 두세 주인이 갖고 놀다가 늙고 보기 흉해서 처리하려는 물건이니 오죽잖으리라 생각하고 큰 기대는 하지 않았으나, 그를 처음 보고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래 햇빛에 탄 거무죽죽한 초록색이었고, 먼저 주인에게 얼마나 학대를 받았는지 상처투성이였다. 배기 파이프에서 나는 소리는 굶주린 사자의 으르렁거리는 소리에 못지않았다. 6년밖에 안 되었는데 기록계에는 30만 마일을 여행한 것으로 나타나 있었다. 그러나 시동은 걸리고, 타이어는 네 개 제대로 붙어 있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값이 내가 감당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은행계좌를 털어 100달러 현금을 랄프에게 건네줌으로써 나는 자가용 세단차 주인이 되었다. 여러 번 목욕을 시켜 때를 벗기고 밀랍을 발라 윤 날 때까지 닦았다.
어느 쪽 페달이 브레이크인지, 액셀러레이터인지도 분별을 못 하였던 나는 ‘자동차 안전 운전법’ 교본을 읽어가며 이론을 공부하였고, 실기운전 훈련은 낮일이 끝난 후, 텅 빈 어둠침침한 병원 파킹장에서 혼자서 하였다. 3주 동안 맹훈련을 하여, 시험에 응할 용기가 생겼다. 합격하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뜻밖에 ‘패스’하였다. 제일 겁나고, 자신이 없던 평행주차는 시험관이 잊어버렸는지 고의로 빠뜨렸는지 나에게 운전을 시키지 않았다.
다음 토요일, 면허 있는 운전사가 된 축하로 플리머스를 동반하고 7~8km 떨어진 곳에 있는 다운타운을 답사하러 나갔다. 목적지에 가까이 도달하였을 때 적신호에 걸렸다. 청신호로 바뀌자마자 나는 우아한 좌회전을 시도하였다. 길 중간에 가기도 전에 빵빵 소리가 들리고, 빨간 경광등이 번쩍이는 경찰차가 오른 쪽에 나타났다.
“순경님, 뭐 잘 못한 것 있습니까?” 외국에서 경찰과 처음 대화하니 가슴은 두근거리고, 아는 영어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여보십시요, 당신 눈멀었소? 저렇게 큰 간판이 안 보였습니까?” 하며 ‘좌회전 금지’라 적힌 대문짝 같이 큰 교통표지판을 가리켰다. 그제서야, 아차 큰일 저질렀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 속생각으로는 ‘복잡한 거리에 처음 나와서 좌회전을 제대로 하느라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는 사람이 어찌 교통표식을 볼 마음의 여유가 있겠습니까?‘라고 반문을 하고 싶었지만, 영어 잘 못 알아듣는 촌뜨기 바보 노릇을 하는 것이 상책인 것 같아서 입을 다물고 있었다. 순경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머리를 설레설레 젓더니 교통법 위반 딱지에 숫자를 적어서 내게 건네주었다. 나는 그 쪽지에 적힌 거액을 보고 깜짝 놀랐다…. 5달러! 내 월급은 100달러였다.
한 달 후, 아내가 한국에서 왔다. 플리머스는 우리 부부를 데리고 공원, 박물관 등 구경을 시켜줬다. 6개월이 꿈같이 지나갔다. 나는 인턴을 끝내고, 시카고 새 직장으로 전근하게 되어 몇 주 만에 한 번씩 아내를 보러 시카고-디트로이트 500마일 왕복여행을 하게 되었는데, 플리머스는 노쇠기에 든 지 오래되었지만 우리 형편을 동정하여선지 간간선도로 90에서 한 번도 말썽을 부리지 않았다.
시카고에서 7~8개월 계속 타고 다니기는 했으나, 노병은 죽지 않고 사라진다고 그에게 최후의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차병원에 몇 주에 한 번씩 입원하게 되었고, 그때마다 치료비가 나의 월급 반 이상이 되었다. 마지막 작별을 할 때는 가족의 고려장을 치르는 듯하여 가슴이 뭉클하였다. 그래도, 25달러에 팔려, 두 번째 차를 350달러로 구입하는 첫 불입금으로 썼다.
그와 작별한 지 50년이 지났다. 많은 차를 사서 운전하였고, 고급차도 가져 보았지만 눈을 감으면 먼저 떠오르는 것은 나의 첫 자동차 1950년 플리머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