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장마차는 열려있는 쉼터다. 그리고 누구나 부담 없이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러나 어찌 보면 별로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인, 그러니까 서민들이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삶이 따분할 때 속풀이를 거침없이 토해내기에 마땅한 간이처소라서 그렇다.
때론 마음이 울적하거나 기분이 언짢을 때에도 찾아가기 쉬운 곳이 바로 포장마차다. 웬만한 곳엔 포장마차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쉽게 발길을 돌릴 수 있는 장소라서 더하다.
팔고 있는 음식마저 값싸고 푸짐하다. 가벼운 주머니사정으로도 어렵지 않게 한 잔을 걸칠 수 있는 곳이 바로 포장마차다. 긴 의자에 궁둥이만 걸친 채 몇 잔만 마셔도 취기가 감도는 한마당이다. 그때부턴 살맛이 나는 토론장으로 변하게 마련이다. 정치를 얘기해도 인생을 논해도 누구하나 떨떠름하게 대하지 않는 곳이 바로 포장마차 안에서다.
겨울엔 길거리의 포장마차가 제격이다. 따끈한 오뎅국물에 소주잔을 몇 잔 비우면 추운 것도 잊을 수 있는 아늑한 칸막이다. 꼬치구이며 입맛을 당기는 먹거리도 다양해 몇 푼의 돈으로도 입에 호사를 부릴 수도 있는 자리다.
두어 병의 소주가 비워지면 세상이 손 안에 있는 듯하여 겁날 것이 없는 작은 공간이다. 아니, 서너 병이 비어갈 땐 세상을 등에 업을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보는 곳이기도 하다.
포장마차는 젊은이들에겐 낭만의 장소이기도 하다. 그래서 젊었을 적엔 포장마차를 자주 찾곤 했었다.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장소로 마땅한 자리이며 얄팍한 지갑(紙匣)으로도 취기에 빠질 수 있는 곳은 거기밖엔 달리 찾을 곳이 없어서다.
포장마차에서 빼놓을 수 없는 품목은 바로 소주다. 소주는 포장마차에서 마셔야만 제 맛이 난다. 한 잔을 가득 채워 입에 탁 털어 넣어야 소주 맛이 나기 때문이다. 입안에서 맴돌던 소주가 목을 타고 넘어가며 느끼는 맛은 별나서다. 톡 쏘는 소주가 혀를 자극하다가 목울대를 넘어가는 순간의 짜릿함이 소주의 참맛이다.
그 당시의 포장마차에서 파는 소주는 단연 진로였다. 알코올 농도가 30도라서 몇 잔이면 취기가 감도는 술이었다. 중부지방의 포장마차엔 그 소주가 독점이었다. 그 소주병엔 두꺼비가 한 마리에 앉아 있었다. 그래서 일명 ‘두꺼비’라 했다. 녀석은 금방이라도 뛰쳐나올 것 같은 본새라서 내 어릴 적 마당가에서 만났던 두꺼비와 별반 다르게 보이지 않았었다.
유년시절에 마주했던 두꺼비는 징그러워 보였지만 왠지 반가웠었다. 놈만 보면 무언지 모를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아서였다. 하루가 비에 젖는 날이면 밖에 나가 놀지도 못하고 집안에서 온종일 있어야 했다. 그런 날은 지루했다. 그때에 마당가 울밑사이로 슬그머니 나타난 두꺼비는 무언지 모를 반가움이었다.
별로 갖고 놀 장난감이 없던 시절인지라 두꺼비의 거동만 살피는 것만으로도 만족했었다. 그래서 그 놈을 눈여겨 볼 수 있는 날은 하루가 지루하지 않았었다. 툭 불거진 두 눈으로 멍청히 앉아 숨만 벌떡이다가도 여차하면 도망가려는 자세가 나를 긴장시키기도 했었다.
고향을 떠난 뒤론 다시는 볼 수 없던 두꺼비였다. 서울생활이 몸에 배고 나서야 그 놈과 재회할 수 있었다. 유년시절에 봤던 두꺼비를 소주병에서 다시금 상면하게 되었다. 실체의 두꺼비는 아니었지만 소주병 주둥이에 형상으로 앉아 있었다. 포장마차에 들어서면 그 녀석과 해후하게 되었고, 그런 두꺼비를 두세 마리쯤 잡아두면 세상은 내 세상이 된 적도 있었다.
공항 관제탑이 시야에서 멀리 사라져간 이후, 녹록지 않은 이민생활은 두꺼비를 까맣게 잊게 했다. 이주자의 생활은 초조한 나날이라서 하찮은 두꺼비의 생각은 손톱만치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잊고 살아왔던 것이었다.
오랜만에 찾은 모국 방문길이다. 향수에 젖어있던 포장마차를 찾아간다. 포장마차 속은 밀폐된 작은 방이다. 텔레비전도 있고, 냉장고도 있다. 말만 포장마차지 움집 한 채 같다. 두꺼운 보온 덮개로 바람을 차단하고, 전기장판까지 깔아 둔 포장마차 안은 따끈한 방이다. 얇은 천막 천으로 한데만 겨우 가려놨던 옛 적 포장마차와는 대조를 할 수 있는 고급이다.
소주병도 옛 것이 아니다. 모양새만 변한 것이 아니라 색깔마저 변해버렸다. 맛도 달라져 있었다. 두꺼비마저 어디론가 도망간 소주병이다.
소주잔에 한 잔을 가뜩 채운다. 단숨에 입에 털어 넣는다. 혀끝을 톡 쏘며 목젖을 짜릿하게 하던 옛 맛이 아니다. 목울대를 넘어가는 술맛이 영 딴 판이다. 알코올 농도를 훑어보니 10도가 훨씬 내려간 도수다. 농도만 내려간 것이 아니다. 무얼 섞었는지 밍밍한데다가 들척지근한 맛이다.
추억은 언제나 아름답게 마련이지만, 젊은 날에 찾던 포장마차가 다시금 그리워지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