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저녁 파티의 화제는 ‘유다복음’이었다. 그건 그 전날 이곳 신문들의 1면 톱기사가 아니었던가. “유다의 배신은 예수의 뜻 따른 것”이라는 논쟁성 제목도 도발적이었다. 하지만 그 파장은 글쎄였다. 이미 ‘다빈치 코드’의 파도가 휩쓸고 간 것도 한 이유다. 한국에서는 보수적인 기독교총연합회가 ‘다빈치 코드’의 영화 상영을 막기 위해 법적 절차를 취했다고 한다. 진보적인 기독교협의회는 픽션을 가지고 과민반응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거기 비하면 유다복음이야 바람에 날려온 깃털에 불과할 터이다.

그날 저녁 사람들의 관심사도 교리적인 데 있지 않았다. 오히려 1,700년의 세월을 견딘 갈댓잎 문서의 고고학적 가치가 관심사였다. 이번에 공개된 유다복음은 서기 300년경 이집트의 기독교인들이 고유언어인 콥트어로 번역해서 파피루스에 기록한 것이다. 원전은 그리스어이고, 2세기 초 교리가 달랐던 영지주의(靈知主義)교파 사람이 저술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것이 멀리 이집트에 전해지고, 번역돼서 유통될 정도였다면 파급력이 대단했다는 증거다. 따라서 교리에 상관없이 종교사적 자료가치는 무시할 수 없을 것 같다.

예수 승천 후 300여 년 동안 초대교회는 수난과 핍박 때문에 교리를 확립할 여력이 없었다. 특히 영지주의 교파의 도전은 위협적이었다. 영지주의는 헬레니즘 사상을 기반으로 하는 이원론적 사상, 범신론적 우주관, 그리고 기독교 순수신앙이 반죽된 것이었다.

저급한 물질계와 완전한 영계를 이분화하고 물질이나 인간의 육체는 악하기 때문에 구원을 얻으려면 영혼이 육체에서 해방되도록 신적 계시의 지식이 필요한데, 이것이 영지라는 것이다. 영지주의나 그에 유사한 교파가 이단으로 밀려난 것은 서기 325년 5월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소집한 니케아 공의회와 서기 381년 데오도시우스 황제가 소집한 콘스티노플 회의에서였으며, 예수의 신성(神性), 삼위일체, 부활의 신앙이 확정됐다. 4복음서에는 모두 유다가 예수를 판 배신자로 기술돼 있다. 그러나 그 배신이 유다복음에서는 예수의 요청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배신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는 다른 제자들에게는 숨긴 비밀을 유다에게만 털어놓았는데, 그것은 이 세상이 악한 신에 의해 신성을 가두기 위해 창조됐다는 것이다. 예수 역시 육신에 갇혀 있는 신성을 탈출시키려면 죽음의 통과의례를 거칠 수밖에 없는데 그 다리를 놓아준 것이 유다의 역할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배신이 아니고 오히려 공헌이라는 주장이다.

캐나다의 어느 성경학자는 유다가 배신자가 아니고 실은 가장 아끼던 제자였다는 암시는 성경에 여러 번 나와 있다고 말한다. 4복음서 중요한 복음은 유다의 행적을 가장 부드럽게 서술했다. 요한복음 13장 21절서부터 28절까지에서 필요한 구절들을 인용하면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고 예수는 말씀하셨다. 주여 누구오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빵 한 조각을 찍어다가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찍으셔다가 가롯 시몬의 아들 유다를 주시니 조각을 받은 후 곧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 이 말씀을 무슨 뜻으로 하셨는지 그 앉은 자 중에 아는 이가 없고...”이다. 한 조각을 찍어다가 주는 행위는 동양의 식사예절 상 특별한 우정의 표시이다.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는 채근도 의문을 남긴다.

유다복음이 기독교 신앙에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는 신학자는 없다. 떠들썩함 뒤에는 다만 종교사적이나 문화사적 연구의 대상으로 접근이 예상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