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그리워했으면 
그토록 오랜 세월 눈물 흘렀는데도
여태, 그 눈물 다 마르지 않고 
샘물이 되도록 
흐르고 또 흘러내리는 걸까.

갓난아이로 바닷가에 버려진 
눈물겨운 운명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인간적인 천륜(天倫) 때문만은
더 더욱 아닐 것이다.

순교자이신 
아버지 황사영(알렉시오)과
신안의 증인이신
어머니 정난주(마리아)의 혈육으로 
태어났음을 영광으로 생각하는
뜨거운 감사의 눈물이요.
아들의 애끓는 소망에
하늘이 감동하여 내리시는
마르지 않는 은혜의 눈물일 것이다.



 ‘제주올레길’의 마지막 제18코스는 이름도 아름다운 추자도를 일주하는 18.4km 코스다. 완도와 제주도의 중간지점 청정해역에 떠있는 ‘갯바위 바다낚시의 천국’으로 유명한 이 섬은 1271년(고려 원종 12년)까지 후풍도(候風島)라 불렸으나, 지금은 행정구역이 ‘제주시 추자면’으로 2천6백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이 섬은 상·하추자, 추도, 횡간도 등 4개의 유인도와 38개의 무인도를 합쳐 42개의 군도로 형성되어 있는데 ‘올레길 제18코스’는 상·하추자도를 한 바퀴 도는 형태로 길이 나 있는 관계로 어디를 걸으나 바다를 향해 사방으로 탁 터진 경치가 세상 온갖 잡념을 다 잊게 바다를 조망하는 풍광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하추자도의 동쪽 끝, 예초리에 가면 제주 천주교 전래 1백주년을 기념하여 조성한 황경한(黃景漢)의 묘역을 만날 수 있고, 그 묘역에 도착하기 조금 전 언덕길에 전설 같은 이야기가 담긴 ‘눈물의 샘’이 있다. 
 
이 샘의 주인공인 황경한은 조선 선조 때(1800년) 천주교 박해사건인 신유사옥의 불씨를 집힌 ‘백서(帛書)’를 작성한 아버지 황사영(알렉시오)과 어머니 정난주(마리아)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정난주는 다산(茶山) 정약용의 조카이며, 고모부 베드로 이승훈(李承薰)으로 부터 영세를 받은 신앙의 선조 집안의 딸로 약관 16세 나이로 문과 장원급제 한 황사영(黃嗣永)과 결혼하였으나 황사영은 자신이 쓴 ’백서’가 발각되는 사건으로 신유사옥 때 천주교도의 핵심 주모자로 지목되어 1801년 11월5일 서소문 밖 저자거리에서 대역부도 죄를 저지른 중죄인으로 처참하게 순교하게 된다.
 
이 사건을 인해 부인 정난주는 제주 관노로 가게 되는데, 2살이던 아들 황경한을 안고 강진에서 배를 타고 제주도로 가던 도중 추자도 관리에게 아들을 인계하면 죽임을 당하리라 믿어 뱃사람과 호송 관리를 패물로 꾀어 아들 이름과 내력을 적은 헝겊을 아이의 옷에 붙여 추자도 예초리 해안가 바위에 내리고 하늘이 보살펴 주길 빌었는데 다행히 소를 방목하는 하추자도 주민인 오 씨 부인이 울고 있는 아이를 거두어 성장시켜 황 씨가 없었던 추자도에 지금은 7대를 이어가는 창원 황 씨 가문을 이루게 된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얽힌 샘의 이야기다. 
 
그 이후 정난주는 제주에서 관로로 37년간 길고 긴 인욕(忍辱)의 세월을 살면서 늘 아들을 그리워하다 돌아가셨는데 아들은 그것도 모르고 자신의 내력을 알고 난 후 항상 어머님을 그리워하며 제주도에서 고깃배가 들어오면 어머니의 안부를 물어봤다고 전해진다. 추자도 올레길을 걷는 길손들에게 잔잔한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전설 같은 슬픈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