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진 칼바람 알몸으로 맞으면서

벗은 나목 한 그루

벌판 가운데 외로이 서서

소리내어 울면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바람이 하자는 대로

미친 듯이 흔들리면서

고난의 세월을 짜내어 먹물로 찍어

하늘을 화폭 삼아

난해한 묵화를 그리고 있다.



빈 가지 허탈한 팔 사이로

좋은 날의 기억들은 다 빠져나가고

얼어터진 목피에 새겨진

삶의 흔적들만 남아

골이 깊어가고 있다.



오늘 밤도

푸른 별빛 아래 나와 앉아

뿌리 깊이 묻어둔 부활의 꿈을 위해

스스로를 위로하는 위안의 기록을

나이테에 새겨 넣겠지.



누가 감히 함부로 말했던가.

나목이 겨울 하늘에다 대고

먹물이 된 마음으로 그린 추상화를 두고

쓸데없이 난해하기만 하다고.




바람이 우는 걸까. 나무가 우는 걸까.

겨울 들판 길을 걷다보면, 크고 작은 나목들이 모진 칼바람에 부대키면서 울어대는 소리를 자주 듣게 된다. 그 소리를 듣는 내 마음은 항시 짠하여,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서서 소리내며 우는 나무를 올려다보고 한참을 더 멈추어 서 있다가 가는 버릇이 있다. 이유는 모진 겨울 칼바람을 맞으며 슬프게 우는 나무의 울음소리가 마치 고통 속에 살아가는 우리 인간들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 때문에서다.

겨울이라야 나무의 본 모습을 가장 적나라하게 볼 수 있는 계절이다. 나무는 모든 계절이 다 아름답지만 겨울나무는 아름다움을 넘어 숭고한 삶의 깊이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느낌이 들어 나는 겨울 산행을 더 즐기는 편이다. 지난 가을에는 갈 때를 준비하는 나무의 모습을 통하여 떠나는 삶의 미학을 배우면서 많은 것을 생각했다.

모든 것을 허허롭게 다 놓아버리고 빈 몸으로 겨울을 맞이하는 나무를 보면서, 어쩌면 저렇게도 우리네 일생살이와 닮았을까 하는 생각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기야 그러니까 나무일 터이지만 말이다.

우리 모두는 사람이기에 육체적인 고통과 더불어 영혼의 목마름을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다.그 말은 우리 안에는 누구나 영혼의 광야 하나씩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말이 될 것이다. 어떤 사람은 경제적인 고통 때문에, 어떤 사람은 사랑과 미움의 갈등 때문에, 또 어떤 사람은 끝 모를 욕망의 갈증과 쉼 없이 일어나는 경쟁심 때문에 삶의 황량한 광야에 서서 늘 초조한 모습으로 서성거리면서 살아가고 있다.

광야는 자신의 바닥을 대면하는 뜰이라 하지 않는가.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광야가 과연 무엇인지 깊이 들여다보고 스스로 깨닫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산길이나 들길을 가다가도 잠시 길을 멈추고 옆으로 비켜서서 한참을 머물었다가 다시 걷는 습관이 있다.

한 점 꾸밈없는 벌거숭이가 된 모습으로 자기 자신의 바닥인 광야를 바라보고 그 광야를 형성하고 있는 정체가 무엇인지를 인식하고 인정할 때 비로소 우리는 참 자신과 만나게 된다. 우리가 어디에도 걸림이 없는 무애진인(無碍眞人). 자유인이 되기 위해서는 누구나 반드시 자신의 광야를 거쳐야 한다니, 광야는 분명 우리 인간들이 기필코 건너야 할 숙명적인 사막임에 틀림이 없다.

누가, 벌판 한가운데 서서 미친 듯이 바람에 흔들리면서 겨울하늘에다 대고 고통을 먹물삼아 그리는 묵화 그림을 두고 쓸데없이 난해하기만 하다고 했던가.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슬픔을 보는듯하여 나는 항시 겨울나무 숲속에서 서성일 때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