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20일. 새벽 5시. 어둠속에 일어나 바쁘게 준비를 끝내고 7시에 대장정에 올랐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잉카 트레일 안에는 4계절이 동시에 있다고 했다. 해발이 높은 고산지대이다 보니, 잠시 후에 일어 날 일기의 변동도 예측할 수가 없다고 했다. 작렬하는 적도의 태양 볕 날씨가 갑자기 변하여 열대성 소나기나 우박을 불러올 수도 있고, 밤 기온이 영하 10도 아래로 떨어질 수도 있으니 겨울옷가지를 여벌로 꼭 준비해가야 한다고 겁을 주기도 했는데, 오늘 아침 일기가 이토록 좋으니 얼마나 다행한가.
오늘은 잉카 트레일에서 가장 높은 첫 번째 분수령(分水嶺) ‘Warmiwanuscca’를 넘어야 하는 고난도 트레일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인지 모두들 표정이 바짝 긴장되어 있어 보였다. 오늘 우리가 올라야 하는 고도는 1,200m가 넘고, 계속해서 이어지는 험난한 급경사의 연속임을 알기에 미리부터 중압감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오늘 우리가 넘게 될 ‘1st pass’와 같이 산맥의 높은 봉우리들을 이은 선을 분수령이라고 하는데, 큰 산맥의 중추가 되는 이와 같은 분수령은 빗물의 경계가 될 뿐만 아니라 기후구(氣候區)의 경계를 이루기도 하기 때문에 아주 큰 의미를 갖는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들이 몇 cm의 간격의 차이로 한 빗방울은 태평양으로, 다른 빗방울은 인도양으로 흘러가는 강물의 시초가 된다는 이야기다. 뿐만 아니라 이 분수령은 남미 대륙의 척추 역할을 하는 안데스산맥의 분수령인 관계로 이 산 고개를 경계로 하여 동서의 일기가 판이하게 달라짐을 눈으로 확인할 수가 있었다.
먼지가 풀풀 나는 건조한 사막성 기후가 분수령을 넘으면서 습기가 느껴지고 숲이 우거져 점차 정글로 변해가고 있음을 금방 눈으로 확인할 수가 있었다. 캠프장을 출발하여 경사를 타고 조금 오르니 여기도 ‘체크포인트’가 있었다. 인솔 가이드들이 이곳에서 다시 현황을 보고하고 출입허가를 받은 후에야 비로소 산을 오를 수가 있는데, 브라질, 호주, 일본, 영국, 미국 등지에서 온 그룹도 눈에 띄었다. 다시 한참을 더 오르다가 간단한 간식과 티 종류를 준비해둔 ‘Ayapata(3,300m)’에서 잠시 앉아 ‘해피 타임’을 즐겼다.
마지막 총공격을 앞두고 잠시 숨을 돌리는 비장한 분위기를 느끼면서 나와 아내는 아무것도 먹지 않고 먼저 일어나 천천히 걸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굽이굽이 돌고 돌아 끝도 없이 이어지는 급경사 돌계단길이 정말 사람을 힘들게 했다.
페이스를 잃지 않고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걸어 의지로 이겨내야 한다는 한 가지 믿음만을 기지고 죽을힘을 다해 올라가고 있는데, 수시로 자기 몸의 몇 배나 됨직한 덩치의 짐을 진 포터들은 뛰는 걸음으로 보란 듯이 우리를 스쳐 달려 올라가고 있었다.
작렬하는 적도의 태양 볕과 여러 가지 증상으로 괴롭혀오는 고소병증세를 이겨내면서 12시 정오를 전후하여 일행 전원이 성공적으로 해발 4,215m 표시판이 있는 첫 번째 분수령에 올라설 수가 있었다. 정말 힘들었지만 이 높은 준령에 서서, 저 멀리 끝없이 이어지는 다른 상봉들에 걸쳐있는 운해(雲海)를 보는 풍광은 한마디로 감탄이었다.
만약에 이 잉카 트레일의 최대의 고비인 이 분수령을 넘을 능력이 도저히 안 되는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 조치하느냐고 물었더니, 이런 경우에는 똑똑한 가이드 한 사람의 보호 아래 트레일 헤드로 되돌아가 기차를 이용하여 우리의 목적지인 마추픽추로 먼저 가서 관광을 끝내고 기다리다가 마지막 날 우리와 합류하도록 주선한다고 했다.
몇몇 사람은 돌탑 쌓기로 소원을 빌기도 하면서 한 시간 정도 자유롭게 쉬다가 해발 4,215m라는 표시판 앞에서 단체사진 한 장을 기념으로 찍고 곧 하산하기 시작했다. 쉼 없이 이어지는 돌계단 길, 돌계단의 높이가 유난이도 높아 잠시 부주의하면 관절을 다치기 십상인 위험한 내리막길이란 생각이 들었다(대부분이 돌로 된 잉카의 유적들의 보호를 위한 조치로 이곳에서 사용하는 하이킹 스틱은 끝에 꼭 ‘Rubber cover’가 끼워져 있는 것이라야 한다).
오늘밤 야영지가 될 ‘Paqaymayu(3,600m)’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3시경이었다. 너무 늦은 점심식사인 데다가 땀을 많이 흘려 탈진한 상태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녁을 거르고 휴식을 취하다가 그냥 잠자리에 드는 경우도 있었다.
아직 오후 4시가 채 되기도 전인데 벌써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더니 삽시간에 지척을 분간할 수 없는 암흑천지로 변하고 마는 것이 아닌가. 달을 찾아 하늘을 올려다보니, 높은 산봉우리들로 사면이 둘려 쌓여 분화구처럼 뚫린 밤하늘이 수많은 별들을 머리에 이고 빠끔히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