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추픽추를 마주보고 있는 산 정상에 꽂힌 무지갯빛 쿠스코 국기를 망원경을 통해 내려다 볼 수 있다는 ‘Phuypamarka(3,678m)’ 정상에서 마지막 점심식사를 하고 세 번째 캠프장인 ‘Winay Wayna(2,700m)’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5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내려오는 길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배낭을 벗어야만 겨우 빠져 나갈 수 있을 정도의 좁은 바위동굴을 두 개 지나야 했고, 급하게 내려가는 돌계단의 연속이라 위험한 곳들도 있었지만, 멀리 산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우르밤바강을 어우르고 있는 거대한 정글계곡의 경치는 정말 볼만 했다.

샤워장이 있다는 말에 큰 기대를 하고 캠프장에 도착해 보니, 지난 이틀간 묵은 곳들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붐비고 있지 않는가. 가이드에게 물어 나중에 안 일이지만, 우리같이 3박4일 동안 잉카트레일을 처음부터 걸어온 사람들과는 달리, 1박2일 코스가 따로 있어 기차를 타고 온 사람들이 이곳 캠프장까지 걸어 올라와 하룻밤을 자고 새벽에 마추픽추의 해 뜨는 절경을 보려 내려갈 사람들이 이곳에서 함께 묵는다고 했다.

오늘은 우리들의 산행을 도운 포터들과 보내는 마지막 밤이다. 특별히 잘 차려진 저녁 만찬을 끝내고 우리들 일행 44명은 텐트 밖 마당으로 나와 달빛, 별빛 아래서 서로가 서로에게 감사하고 서로가 서로의 행운을 빌어주는, 평생을 두고 잊지 못할 특별한 ‘작별식’을 가졌다.

돌아가면서 자신의 이름과 나이를 소개하고 간단한 인사말을 곁들이기도 하면서 일일이 서로의 손을 잡고 행운을 빌어 주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얼마의 팁을 나누어 주고 또 준비해 간 헌 옷가지들도 고루 나누어 주었다.

그지없이 순박하고 착하기만 한 그 사람들이 한없이 가엽게 느껴졌다. 무거운 짐을 지고 험악한 돌계단 산길을 다람쥐처럼 오르내리는 일이 직업이다 보니, 쉽게 관절이 상하기 때문에 이 일도 5~10년 정도밖에 할 수가 없다고 했다.

6월22일. 오늘은 새벽 3시에 기상하여 4시에 출발. 5시에 문을 여는 선게이트로 들어가는 체크포인트에 도착해야 마추픽추를 향해 뜨는 첫 해돋이를 볼 수 있기 때문에 각 팀마다 서로 먼저 출발하려고 온 캠핑장이 야단법석이었다.

각자 준비해간 손전등으로 칠흑같이 어두운 돌계단 산길을 비추면서 빠른 걸음으로 달려 내려가기 시작했다. 새벽 산길이 풍기는 특유한 내음이 잠을 깨우면서 길을 열어주고 있었다. 한창 내려가다 보니, 점차 밝아오는 하늘을 배경으로 톱니 모양으로 이어진 산들의 능선이 그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있었다.

예정시간에 체크포인트를 통과하여 6시20분에 우리 일행은 ‘선게이트’에 도착했다. 선게이트에 오르기 직전에 있는 50도 급경사 돌계단을 네발로 기어서 간신히 올라서니 때맞추어 동쪽 산 정상에서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고 있지 않는가.

반대편 산 저 아래로 내려다보니 세계 8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인 ‘공중도시’ 마추픽추가 금방 떠오른 첫 햇살을 받으면서 신비로운 모습을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아. 저것이구나! 드디어 우리가 해냈구나! 감격 감격의 순간이었다.

주위의 산들은 푸른빛 아침 안개로 아득했고, 방금 ‘선게이트’를 통과한 햇살은 마추픽추 중앙에 자리 잡은 태양신전에 당도하여 퓨마의 그림자를 만들어 내겠구나 싶었다. 아주 조용히, 그 신비로운 광경을 침묵으로 지켜보고 있던 우리 일행을 포함한 모든 이들은 잠시 후 정신들을 차리고 일제히 환호를 지르면서 카메라셔터를 눌러댔다.

1911년 7월24일 미국의 역사학자 히렘 빙엄(Hirem Binghm)에 의하여 발견되었다고 역사에 기록되어 있지만, 실제의 마추픽추는 그에게 발견되기 그 이전부터 오랜 세월동안 슬픈 역사를 되씹으면서 그곳에서 외로운 잉카전성기의 흔적들을 안고고 그렇게 있었을 것이다.

그가 친구들의 금전적인 후원을 받아 비싼 비용과 노력을 지불하고 남미 땅의 끝 칠레에서부터 마추픽추가 있는 이곳까지 와 우르밤바계곡 저편 빌카밤바산맥을 뒤지면서 잉카의 존재를 확인하려다 끝내 실패하고, 어느 날 우연히 ‘신비의 도시‘ 마추픽추를 보고 말았던 것인데, 그가 잉카제국의 궤적을 ?아 그토록 집요하게 찾고자 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안개와 정글로 뒤덮여 오랜 세월동안 숨겨져 있던 잉카 최대의 유적인 마추픽추를 발견했지만 그 속에는 그가 찾던 황금으로 만든 보물은 하나도 없었고 다만 그로 인해 오늘날 세계 속에 마추픽추를 알리는 공헌을 했다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