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찍는 카메라.

렌즈를 활짝 열어놓고 산길을 걷는다.



만년설을 이고 선 설산과

빙하호수의 에메랄드 물빛이

파란 하늘 그림자와 잘도 어우러진

그윽한 산길 풍경에

마음을 섞어

‘Zoom-in, Zoom-out’ 하면서

조심스럽게 사진을 찍는다.



간간이 들려오는 빙산 무너지는 소리.

고사목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 소리도 효과음으로 챙겨 담는다.



그런데 이게 어인 일인가.

숙소로 돌아와

사진기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낯익은 얼굴 하나가 고개를 가로 저으며

멋쩍게 웃고 있다.

“이 또한 다 무슨 소용이냐”며,



지난밤에는 요란스럽게 비가 내리고 천둥까지 쳐대더니, 아침이 되니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파란 하늘이다.

오늘은 W-트레킹 둘째 날. 쿠에르노 산장으로 가는 길은 이번 트레킹 중 가장 걷기 좋은 황홀한 코스라는 가이드의 말에 기대를 걸고, 다소 늦은 시각인 10시30분에 길을 나섰다. 라스 토레스 산장을 지나 흔들다리가 있는 아센시오 강을 건너기까지는 어제와 똑같은 길을 걷다가 강을 건너면서 곧 두 갈래 길로 갈라졌다. 오늘은 왼쪽 평지길이다.

오른쪽으로는 만년설을 이고 있는 설산들이 올려다 보이고, 왼쪽으로는 끝없이 길을 따라오는 에메랄드빛 호수들을 조망하며 걷도록 되어 있는 꿈결같이 아름다운 트레일이었다. 대체로 길은 완만했고 허리 정도를 넘지 않는 잡목들과 야생화들이 어우러져 있는 정겨움이 느껴지는 길로 한참 가다가 보면 두어 차례 큰 바윗돌 징검다리가 있는 냇물을 건너기도 한다.

잠시 깊은 생각에 잠겨 땅만 보고 길을 걷는데, 눈 모자를 쓴 하얀 화강암 봉우리 쿠에르노 주봉이 ‘와르르 쾅쾅’ 요란한 소리를 내며 만년설 덩이를 수시로 흘려 내리고, 왼쪽으로는 세계적인 빙하연구가로 큰 공을 세운 스웨덴의 지질학자의 이름을 딴 노르덴스크홀드 빙하호수가 끝도 없이 그림자처럼 따라 오면서 길동무가 되어 준다.

이곳에서 보는 크고 작은 빙하호수들의 물빛은 호수마다 각기 달라 같은 물빛이 없었다. 심지어 어떤 빙하호수는 2가지 이상의 색을 품어내기도 했다.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각 호수마다 물에 함유된 무기물의 성분과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호수의 빛깔이 초록색에서 황토색 까지 다양하게 보이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의 빙하호수들은 무기물이 너무 많이 함유되어 있는 관계로 햇빛이 물속 깊이까지 들어가지 못하여 대체로 물고기들이 살지 못한다고도 했다. 하루 걷기로는 너무 짧은 14km의 거리지만 느긋한 마음으로 특이한 환경의 자연을 만끽하면서 걷는 재미는 정말 쏠쏠했다.

아침 10시30분 출발, 4시30분경에 파이네 뿔(Cuerno del Paine)이라 불리는 쿠에르노 주봉 바로 아래 위치한 쿠에르노 산장에 도착했다. 대피용 레퓨지캐빈치고는 깨끗했고 짜임세도 있는 시설이었다. 이곳에는 모든 사람들이 신발을 입구 벽에 걸어두고 들어가든지, 아니면 벗어 들고 들어가야 한다. 실내에서는 신발을 신을 수 없는 것이 규칙이기 때문이다.

개방식 주방이라 사용되는 주방도구들을 볼 수 있었는데, 엄청나게 크고 낡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다녀갔는지, 또 얼마나 오래 사용했는지, 이 산장의 역사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며칠 전부터 태양열을 이용하는 발전시설이 고장이 나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고 미처 손전등을 챙기지 않고 2층 침대에 올라가 자다가 밤중에 일어나 생리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칠흑 같은 어둠속을 더듬거리면서 간신히 침대 사다리를 타고 내려와 일을 보았던 그 당시의 난감했던 기억은 오래 잊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