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마가 동물들을 사냥하는 곳’이라기에 당연히 고산 밀림 속인 줄로 알았는데, 막상 도착해 보니 건초들이 겨우 자라는 황량한 들판이 아닌가.
오늘은 아르헨티나로 떠나기 하루 전날. 지난 4일 동안 계속된 ‘W-트레킹’을 강행하느라 쌓인 피로도 풀고 멀리서 바라보는 설산의 위용도 감상할 겸, 가벼운 하이킹 삼아 계획된 하루인 듯싶었다.
길가에는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밤이슬을 머금고 지천으로 피어 있고, 남미의 빨간 열매 카라파데를 마음껏 만날 수 있는 곳, 조그마한 산언덕을 넘을 때마다 푸마가 먹이로 가장 즐긴다는 과나코(Guanaco)가 여기저기에 무리를 지어 몰려다니면서 야생하고 있었다.
과나코는 이곳 파타고니아가 원산지로 라마와 노루를 닮은 낙타과에 속하는 초식동물이다.아주 크게 보이는 놈도 더러 있었지만, 대체로 길이 120cm 에 무게 120kg 정도의 몸집이며 이 지역에서만 야생하는 아주 귀한 대접을 받는 동물이라고 한다.

한 마리의 수컷이 15마리의 암컷과 새끼들을 거느리고 집단을 이루어 모여 사는데, 성질이 아주 온화한 동물이나 도망갈 때는 시속 60km가 넘는 속도로 달린다고 한다. 그러나 아메리카의 표범으로 불리는 천적(天敵)인 푸마의 빠르고 강한 운동신경에 비할 수는 없는 법. 항시 푸마의 밥으로 살면서도 얼마나 온화한 성품인지 친근감을 주는 동물이었다.
이곳 칠레 파타고니아 지역에는 과나코와 목장에서 대대적으로 방목하는 양들이 많아, 풍부한 먹잇감 덕분에 이곳 푸마의 평균 길이는 2m, 무게는 160kg로 적도 부근에 사는 놈들에 비하면 곱으로 큰 편이다. 그러다 보니 목장 주인들이 전문 사냥꾼들을 풀어 푸마를 잡고, 또 본래부터 사람을 두려워하여 밤에만 움직이는 푸마의 특성 때문에 실제 사람 눈에 띄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한다.
가이드의 설명을 귀담아 들으면서 언덕길을 내려가고 있는데 이번에는 오른쪽으로 조금 떨어 진 언덕 하늘 위에 독수리과에 속하는 맹금류 콘도르(Condor) 한 무리가 빙글빙글 돌고 있어 어인 일이냐고 가이드에게 물었더니, 멀지 않는 곳에 푸마가 과나코 한 마리를 사냥한 곳이 있는 모양이라고 말했다.
이곳 칠레 파타고니아에는 지난해 다녀 온 페루와는 달리 참 많은 종류의 야생동물들이 살고 있었다. 그만큼 동물들이 자생하기에 자연조건이 좋다는 증거일 것이다. 과나코, 홍학, 백조, 오리, 콘도르, 여우, 야생타조(Rhea), 면양, 그리고 평생 처음 보는 이름 모를 산새들을 만나는 기쁨이 각별했다.
들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는 황량한 들판 길을 지나 사냥터 한가운데 있는 돌산에 올라, 우리 일행은 산 아래 펼쳐진 기이한 풍경들을 내려다보면서 점심식사를 하고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파타고니아의 하늘빛을 마냥 만끽했다.
그리고 자연 동굴 천정에 그려져 있는, 1만6천 년 전에 이곳에 살았다는 원주민 인디언들이 남긴 그림의 흔적들을 구경하고 내려와 밴을 타고 공원 입구 쪽을 돌아 토레스 델 파이네를 배경으로 사진 찍기에 가장 좋은 곳을 찾아가 단체기념 촬영을 하면서 이곳에서의 여정을 대체로 마무리했다.
‘W-트레킹’ 4일 동안 산길에서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독일, 프랑스, 이스라엘, 일본, 미국, 호주 등. 그리고 우리 한국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이곳이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명승지라는 사실과 우리 한국인들의 남다른 자연 사랑의 깊은 마음을 읽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고, 세계 속에서 한 단계 발돋움한 한국인들의 위상을 보는 계기가 되었다는 생각에 더 기분이 좋았다.
진정 여행은 미지의 세계를 만나는 긴장과 즐거움의 연속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고나 할까. 한 번이라도 이곳을 여행한 사람이라면 그 풍경을 평생 마음에 담고 살게 될 것이이라는 생각을 혼자서 해 보았다.
푸른 빙하와 호수, 초록의 평원. 거대한 화강암 봉우리로 이루어진 순수의 파타고니아는 그 아름다움이 지구 위에서 너무나 특별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누가 나에게 살면서 가장 행복한 때가 언제냐고 묻는다면 나는 거침없이 ‘미지의 자연을 찾아 걷는 일’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것도 속으로 때로는 조금은 느리게 걷는 일이라고 대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