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여신, 폴로라의 질투로
꽃이 된 아네모네.
허물어진 동로마 옛 성터 빈자리에
지천으로 피어나 있다.
역사가 다 무엇이고
한때의 영화가 또 무엇이냐는 듯.
바람의 신, 제프로스의
부드러운 애무를 밭으면서
살랑살랑 잘도 까무러치고 있었다.
여행의 반은 분위기라는 말이 있는데, 이스탄불(Istanbul)이 풍기는 첫인상은 한마디로 신비로움 그 자체였다.
길고도 모질었던 역사의 흐름 속에서, 동양과 서양이 절묘하게 조화된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묘한 느낌의 신비감 감도는 도시 이스탄불은, 지중해와 흑해를 잇는 보스포러스해협을 사이에 두고 꿈결같이 그렇게 터 있었다.
한때는 세계를 지배한 강국들인 로마, 비잔틴, 오스만 등 3대 제국의 수도로서 영화를 누렸던 관계로, 살아 있는 역사박물관과 같은 도시다.
아시아 쪽에 있는 신도시와, 유럽 쪽에 있는 구도시로, 두 대륙이 함께하는 특유한 이국의 정취를 물씬 풍기는 이 도시는, 그 전략적 위치로 인해 오랜 세월동안 세계의 중심이 되었던 곳이다.
그리스, 로마 문명과 이슬람 문화가 혼재 공존하는 데다가, 마지막 정복자인 오스만제국이 돌궐족의 후예라는 점에서 아시아적 향취도 함께 느낄 수 있는 신비의 도시다.
그래서 구 이스탄불에 해당하는 술탄 아흐맷 지구는 일찍,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보호받는 곳으로, 도시 곳곳에 동로마 당시의 번영의 흔적들을 잘 보존해 놓고 있음으로써, 생생한 역사의 장을 보기위해 세계도처에서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아들고 있었다.
오스만제국 때까지는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이라는 이름으로 터키의 수도로 존속해 오다가, 1923년 현재의 수도인 앙카라로 옮기면서 현재의 이름인 이스탄불로 개칭된, 터키의 자부심이 담긴 그들의 자랑스러운 도시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유적지는 역시 성소피아성당, 블루모스크, 톱카프궁전, 지하저수지. 히포드롬광장 등 수도 없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세계사에 남을 역사적인 유물은 역시 '성소피아성당'이다.
현지인들은 지금도 '성스러운 지혜'라는 뜻이 담긴 '아야 소피아'라고 부르는 소피아성당은, 6세기에 만들어진 비잔틴 건축의 최고의 걸작품으로 이스탄불의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오스만제국이 비잔틴제국을 멸망시키고 약 900년간 그리스도교 성당이었던 이 건물을 이슬람의 모스크로 전환하여, 1934년까지 사용하다가 터키의 초대 대통령으로서 국부로까지 추앙 받는 케말 아타투르크 장군이 취임하면서 소피아 성당을 박물관으로 선포하였다.
오랜 세월 동안 모스크로 사용하면서, 성당 안에 화려하게 조각되어 있던, 성화, 모자이크 벽화들을 5cm 두께로 회칠하여 감추어 놓았던 것들을, 현재까지 원상태대로 복원하는 작업이 계속되고 있었는데, 지금은 비교적 원형에 가까운 모자이크를 볼 수 있게 되어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리스도교 성당이었다가, 비잔틴제국시대에는 그리스정교의 본산지로 변하고, 그 이후 오스만제국이 건설되면서 이슬람사원으로 개축된 후, 두 종교 간의 갈등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유일한 역사적인 유물인 이 소피아성당은 바티칸의 성베드로성당 건립 이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이었으며, 뛰어난 건축양식으로 현존하는 세계 7대 불가사의 건축물의 하나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낯선 외국인에게 먼저 환하게 미소지어주는 터키인들의 첫인상은 소박하면서도 정 많은 이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한국인에 대한 친밀감은 각별하다. 한국에서 얼마나 많은 관광객이 몰려오는지, 노점상인들이 간단한 한국말을 자유롭게 구사할 뿐만 아니라, 한국돈도 받을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