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가을날.
혼자 산길을 가다가
야생 사과나무 아래
잠시 앉아 쉬며
엉뚱한 생각에 잠긴다.
이 야생 산 사과나무의
한평생은 과연 행복했을까?
땅에 널브러진
사과들의 시체 위를
분주히 기어다니던 개미
한 마리가 ‘힐끗’
나를 쳐다보고서는
별꼴이라는 시늉을 해보이면서
홱 돌아서 딴 길로 가버린다.
맞구나!
존재한다는 것. ‘있음’
그 자체만으로 행복에 겨운
자연의 섭리 앞에서
나는 따지기나 하는 바보로구나.
부끄러운 생각에
멋쩍게 하늘을 우러러 본다.
순리의 자유로움이 익어가는
가을 산, 돌 사과나무 아래서.
요즘, 우리 사회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고 있는 말은 ‘웰빙’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렇다면 ‘참살이’로 통하는 이 말의 진정한 참뜻은 무엇일까?
'Well Being'이란, 말 그대로 “건강하고 만족스러운 인생을 살자"는 의미일 것이다. 물질적인 가치나 명예보다는, 건강한 신체와 정신적 행복을 척도로 삼아 아름다운 삶을 추구하자는 것이 웰빙의 진정한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본래의 참뜻과는 달리 상업적인 수단으로 다양하게 이용되고 있는 것이 그 현실이다. 1970년대 “잘살아보세”를 함께 노래하며 불꽃같이 일어났던 ‘새마을운동’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너무나도 가난했던 그 시절. 지긋지긋했던 빈곤의 대물림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어났던 국민의식개혁운동이자 생활운동이기도 했던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그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전혀 딴판이다. 갑작스럽게 풍요로워진 문화생활을 즐기게 됨에 따라 마음의 건방이 들어 ‘웰빙’이란 말이 왜곡되어 뜨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자기도 중산층에 속한다는 희망 섞인 착각에 사로잡혀, 유행이라는 풍선을 타고 떠오르는 상술에 오염된 웰빙의 시대를 살고 있지만, 가난했던 그 시절보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진 지금이 더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오히려 줄어들었다는 기이한 통계다.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 철학자 플라톤은 ‘인간의 행복 조건’ 다섯 가지를 이렇게 제시한 바 있다.
첫째, 먹고 입고 살기에 조금은 부족한 듯한 재산.
둘째, 모든 사람이 칭찬하기에는 약간 부족한 외모.
셋째, 자신이 생각하는 것의 절반밖에 인정받지 못하는 명예.
넷째, 남과 겨뤄 한 사람에게는 이기고 두 사람에게는 질 정도의 체력.
다섯째, 연설을 했을 때 듣는 사람의 절반 정도만 박수를 치는 말솜씨.
행복해지기 위한, 이 다섯 가지 조건의 공통점은 모두 조금은 부족해야 한다는 것이다. 잠시 틈을 내어 가만히 눈을 감고, 자신의 영혼과 마주앉아 얼굴을 맞대어 보는, 침묵의 참 의미를 몸에 익히기에 참 좋은 계절이다. 현대인의 공통된 욕망인 건강하고 행복한 삶도, 결국은 물질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되돌아보는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깨닫기에 참 좋은 이 계절, 가을이 다가기 전에 큰마음 먹고, 마지막 낙엽이 마저 떨어지고 있는 가을 산에 한번 다녀오기를 권하고 싶다.
우리에게 ‘다섯 가지의 행복의 조건’을 제시한 플라톤도, 인간에게 있어서 불행의 극한인 죽음을 극복하지는 못하고 죽어갔다. 인간의 모든 성과를 수포로 되돌려 놓는 죽음을 극복하지 못하고는 웰빙을 어찌 ‘참된 웰빙’이라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나는 진정으로 참된 웰빙은 ‘행복한 죽음’으로 완성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행복한 죽음을 맞지 못한다면 행복한 삶 또한 완성될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