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폴 마틴 정부에서 쇠고기를 수출하기 위해 비상회의가 열렸었다. 2003년 캐나다 광우병 사건으로 수출이 중지되고 외교통상부에서 해결을 못 하자, 즉 한국·일본시장을 개방 못시키자, 담당부서인 농업부에서 들고일어났다. 알버타 등 축산업자가 많은 지역구의원들이 중심이 되어 강력한 불평을 하고 있을 때였고 곧 선거가 있기에 서부캐나다 출신 의원들 신경이 특히 날카로웠었다.
당시 일부에서는 일본은 만만하게 못 보는 대신 한국을 쉽게 보고 한국시장부터 열고 그걸 이용해 일본시장을 열자는 생각이었다. 농업부에서 외교통상부에 불평을 하자 외교통상부에서 "한국에서 광우병(BSE: Bovine Spongiform Encephalopathy) 문제가 있다고 보는데 어떻게 시장을 열라는 것이냐"고 되물었다. 이에 농업부에서 구엘프대학(University of Guelph: 토론토대 농대가 독립한 대학으로 캐나다에서 제일 좋은 농대)의 확률적으로, 과학적으로 광우병이 문제가 아니라는 보고서를 내밀면 한국정부에서 과학적으로 반박을 못 할 것이라는 제안이 나왔다.
이에 총리비서실에서 한국 서울대인가 거기에 펑(Fung)인가 흥(Hung)인가 교수 하나 있는데(황우석 박사를 칭하는 말) 거기 정도면 구엘프대학을 훨씬 능가하는 과학자들이 깔렸을 테고 괜히 어정쩡한 광우병 보고서 냈다가 조목조목 우리를 반박하는 서울대 과학보고서가 돌아오면 우리는 국제적으로 개망신 당할 테니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며 넘어갔다.
황우석 교수는 후에 추락을 했지만 비한국인은 많은 사람들이 황우석 교수 추락한 건 기억을 못해도 한때는 한국의 수의학 수준이 세계 최고였다는 건 기억을 한다. 미국 경우 원체 노무현 정부가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 주춤했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였는지 영원히 수수께끼로 남게 되겠지만 황우석 교수의 영향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참 아까운 사람이다.
선거를 코앞에 두고 있었기에 정치권 일부에서 한국계인 내가 서울에 가 이 문제를 해결 하기를 요구했었다. 캐나다 총리가 노무현 대통령에게 누가 무슨 일로 가니 협조를 부탁한다는 내용의 편지가 나가면 그게 소위 특사임명이다. 당시 한국 사정이 수입쇠고기 절대 불허로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마음이 안 내켰다.
또 다른 문제는 한국에서는 미국이나 캐나다의 최저급 쇠고기를 수입하기에 안전성의 문제가 완벽하게 사라졌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원래 한국정부에서 축협 즉 한우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최초로 쇠고기 수입권을 주었기에 이들은 자신의 쇠고기를 보호하기 위해 해외에서 최저급의 쇠고기를 주로 수입했다. 따라서 한국에서는 수입산은 저질, 국산은 고급의 방정식을 세우는 최고의 마케팅 전략에 성공했다.
로또 맞을 확률보다 적은 광우병 발병확률이지만 수입 재개가 되었는데 백만의 하나, 천만의 하나 캐나다 쇠고기로 광우병이 나면 내가 이완용 수준의 죽일 놈이 된다는 것도 걱정이었다. 왜냐하면 정치판에 비밀은 없기 때문이다. "One way or the other, sooner or later, press will get hold of it, and everyone will know it was you(어떻게든, 언제든 기자들은 사실을 알아내고 국민 모두 당신이 저지른 일이라는 걸 알게 된다)."
다행히 당시 표면적으로는 아니었지만 실질적으로 최고실력자였던 비서실 차장과 개인적으로 무척 가까웠고 "더 큰 시장인 일본부터 해결하면 다 해결되니 일본으로 목표를 잡자"라고 방향을 틀었다. 결국 2005년 일본은 미국과 캐나다에 시장을 개방했다.
2003년 집권당인 자유당 내에서 마틴 계보가 반크레치엥 쿠데타를 일으켜 성공을 하고 정권을 잡았다. 2003년이 계미년(癸未年)이니 크레치엥계에서 볼 때에는 계미반정, 마틴계에서 볼 때는 계미혁명으로 만약 쿠데타 실패를 했으으면 계미사화가 되어 크레치엥계가 나를 포함한 마틴 계보의 구족(九族)을 멸하고 그 피로 오타와강이 범람할 뻔했는데 바로 비서실 차장이 2003년 마틴 쿠데타를 성공시킨 장본인으로 최고의 실력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2006년 선거 실패로 마틴 총리와 같이 정계를 떠났다. 인생무상이지만 정치는 특히 화무십일홍에 일장춘몽이다. 이제는 차장도 또 나도 한 달의 3주를 해외에서 보내는 외국증권사 고문으로 있다.
이번 한-미 쇠고기 수입 협상을 봐도, 아니면 단순한 가게 매매 때에도 몇 백 페이지짜리 계약서를 자기 마음대로 자기에게 유리하게 작성해 놓고 사인하라 한 후 문제점을 발견하고 항의하면 돌아오는 반응은 '변호사에게 의뢰하라'든지 '법정에서 보자'이다. 즉, 너도 그 계약서를 읽어보고 변호사를 고용해 상의했으면 이 계약은 정당하고, 공연히 '사람이 그럴 수가 있느냐' 아니면 '전혀 몰랐다' 혹은 '영어가 딸려 정확히 이해 못했다'해봤자 상황이 달라지지도 않거니와, 이 사람들은 전혀 죄책감 또한 느끼지도 않는다.
우리가 축구를 한다면 이 사람들은 미식축구를 하는 것이니 왜 손으로 공을 잡고 뛰냐고 아무리 항의해봤자 의미가 없다. 이 사람들 규칙을 빨리 터득해 적응하고 역으로 이용할 줄 알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판판이 깨지고 나서 인종차별 운운하며 이 사회를 겉돌고 교민사회만 맴돌게 된다. 역으로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고 여기 사람들 정신상태만 이해하면 학교에서건 사회에서건 인종차별은 물론 싸워서 패배도 않게 되는 것이다.
이곳 사람들은 우리와는 판이하게 다르고 사고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우리가 볼 때 인종차별로 느껴지는 것들이 결국은 배타적인 사고나 문화습관에서 기인한 것들이 많다. 예를 들자면, 이들 사고방식은 창이나 활을 들고 대항하는 인디언을 총으로 쏴 죽이면 그것은 정당하다(fair)하고 맨손인 인디언을 쏘면 그것은 비겁한 일이라 한다. 엄밀히 말하면 총 앞에선 창을 들었건 맨손이건 불리한 건 마찬가지지만 이것이 소위 미국과 캐나다를 건설하며 인류문명을 정복한 영국식 정신구조(Anglo-Saxon Mentality)이다.
만약 캐나다에서 공부를 하고 학교를 다니는데 백인들과 경쟁을 하며 인종차별이라는 것을 느낀다면 그건 언어실력이나 이 사회의 사회·문화구조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서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처럼 상대를 파악하기 위해 캐나다 역사나 미국 또는 영국역사 그리고 문화에 관한 서적을 필수로 공부하면 된다. 대신 상대적 우월감은 안 된다. 어느 인종보다는 우월하다는 아주 허무맹랑하고 못 된 생각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완벽한 인종차별이고 또 백인보다는 못하다는 상대적인 열등의식적 사고이기 때문에 전혀 용납될 수 없으며 용서될 수도 없다.
(전 연방총리 정책고문·연방재무장관 경제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