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이름을 밝히지 않은 어느 분으로부터 두툼한 편지를 받았다. 편지 속엔 두툼한 분량의 신문 기사 및 광고 스크랩이었다. 밑줄이 잔뜩 그어진 스크랩 중엔 내가 만들어 신문에 게재한 광고 문안도 있는데 그 속에 '교민'이란 단어가 잘못된 것이니 앞으로 '동포'로 고쳐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이유가 교민이란 단어의 앞글자인 교(橋)자가 한자로 풀이해 보면 해외에 나와 살고 있는 우리를 떠돌이처럼 폄하하는 뜻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저 지나치려다 벌써 두 번째 그 편지를 받은 데다 앞으로 또 그분의 노고가 담긴 편지를 받아야 할 것 같은 생각에 인터넷에 접속해 '교민'이란 말의 뜻을 찾아보았다. 국어사전에서 교민은 '외국에 나가 살고 있는 자기 나라의 사람'으로 풀이돼 있었다. 또 '동포'는 '1. 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형제자매 2. 같은 나라 또는 같은 민족의 사람을 다정하게 이르는 말'로 풀이가 돼 있었다. 우리가 쓰는 '동포'란 결국 2번의 풀이인 셈이다.
사전의 뜻으로 보면 캐나다에 나와 살고 있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일컬어 '동포'라고 하는 것은 어째 어울리지 않는다. 한국의 한국인이 한국에 살고 있는 한국국적 사람(굳이 우리 한민족이 아니더라도)도 동포로 부를 수 있는데 캐나다에 살고 있는 우리가 우리를 동포라 부르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대신 한국에서 볼 때 해외에 나가 있는 우리를 동포라고 부르는 것이 자연스럽다. 실제 우리가 우리를 동포로 부르면 어색한 느낌이 나는데 나만 그런 것은 아닌 듯 하다.
사전적 뜻을 보면 오히려 교민이 더 우리를 잘 표현하고 있다. 또 네이버 지식검색의 한 창에서는 교민은 이민자뿐 아니라 유학생 등 임시 체류자, 지상사 주재원 등도 포함하는 단어로 규정하고 있어 더 적합하다. 또 많은 한인들이 자연스럽게 쓰는 말은 동포가 아니라 교민이다. 우리가 우리를 교민이라 부르는 것이 실제 언어사회에서 자연스럽고 이 말에 스스로를 낮춰 부르는 느낌을 받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언어란 살아있고 그래서 늘 변화한다. 가까운 예로 불과 수십 년 전 번역된 한글 성경을 보면 이상한 단어와 표현들이 무척 많다. 수십 년 동안 변화에 불과한데도 마치 외국어나 제주도 사투리처럼 달라진 것이다. 또 컴퓨터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에 익숙한 신세대는 기성세대와 더욱 달라진 언어생활과 문자생활을 하고 있으며 그들이 성인이 될 무렵에는 지금의 기성세대가 쓰는 말이 외국어처럼 생경하게 들릴 것이다.
이런 언어의 변화는 굳이 막을 필요도 없고 막을 수도 없다. 세계의 언어가 된 영어는 물론 사용되고 있는 모든 언어는 이런 변화가 필수적이다. 수많은 단어가 해마다 새로 사전에 등록되거나 새로운 의미가 추가 또는 변화되고 있다. 그런 변화를 무시한 채 단어 하나 하나의 어원과 뿌리를 따지며 그에 따라 쓸 수 있는 단어, 없는 단어로 나누는 것은 언어학자가 아닌 다음에야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 단어의 어원과는 관계없이 다수의 사람들이 본래의 뜻과 다른 뉘앙스로 선택해 사용한다면 이미 그 단어의 뜻은 달라진 것이다.
이름 없는 그분의 주장처럼 '교민'이란 단어를 지우려면 캐나다 '교민'사회뿐 아니라 한국과 세계 각국에 자리잡은 교민사회 모두의 동의를 구해야 하지 않을까. 참고로 인터넷에서 '교민'을 검색해 보면 모국정부의 공문서에서부터 아프리카 어느 오지에 살고 있는 교민의 생활 잡기도 등장하지만 그 속에서 '교민'이란 단어를 정처 없는 떠돌이 정도로 폄하는 경우는 찾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