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보스토크서 토론토까지
-성숙해 가는 한인동포사회
캐나다 한인동포사회가 캐나다 땅에 뿌리를 깊게 내리기 시작했다는 현상이 이런 모양 저런 모양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즉 동포사회에 뿌리내리기 운동이라고 부를 수 있는 단체들이 조직돼 가고 있었다. ‘성인장애인공동체’라는 조직이 출발되어서 한울연합교회 아래층에 사무실을 차리고 매일 수십 명이 모여서 각종 프로그램을 진행시키고 있었다. 이 그룹은 모여서 강의도 듣고 서로 돕고 격려하면서 심리적인 아픔과 육체적인 아픔을 극복해 가고 있었다. 이 일에는 정동석 목사 부부, 장활천 목사 부부와 그 외 여러분들이 동참해서 활기찬 프로그램을 진행시키고 있었다. 나도 그들의 모임에 자주 불려가서 강의도 하고 담화도 나누곤 했다. 이 장애인 공동체는 다양한 변화를 경험하면서 2009년 현재까지도 꾸준한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1999년경 토론토에는 정확한 숫자를 알 수 없는 속칭 코리언 불법체류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신분을 밝히기를 꺼려하는 사람들이었지만 캐나다에 정착하기를 원하고 있었다. 이들은 블루어 스트릿 어느 식당 2층에 종종 모여 서로 격려하고 캐나다에 적응하려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어서 나는 연변출신의 한 사람으로 그들에게 가서 캐나다생활에 관한 질의응답을 하기도 했다. 남한에서 온 동포들과 북한에서 온 동포들은 언어도 같고 생활양식도 같았지만 무엇인가 설명하기 어려운 장벽 같은 것이 막혀 있다는 인상을 주기도 했다. 대부분의 불법체류자들은 가족을 모국에 두고 온 사람들이어서 마음의 아픔이 짙었다.
우리 동포들의 생활기반이 잡혀가고, 이민자녀들도 대학을 졸업하고 직업전선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토론토한인회가 교양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21세기를 향한 인류의 바른 자세’를 모색하는 모임을 마련하고 여러 가지 유익한 의견교환을 하는 모임에 나도 초대가 돼서 많은 격려를 받았다. 위에서 얘기한 동포사회의 움직임이 코리언-캐네디언들의 성장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나는 마음에 흐뭇한 느낌을 가졌다.
얼마 전에 우리 내외를 알래스카 관광여행에 초대해 주었던 미국 LA에 살고 있는 양준철 박사 내외가 와서 두 가족이 함께 동부캐나다 여행을 즐기게 되어 무척 기뻤다. 토론토를 떠나 킹스턴, 오타와, 몬트리올, 퀘벡, 그리고 뉴브런즈윅, 노바스코샤를 관광하고 미국에 들러 나이아가라폭포 구경까지 하고 돌아오는 스케줄이었다. 캐나다 여행에서는 가는 곳마다에서 나는 여행안내자 역할을 해야 했는데 그 지역에 관한 역사 등에 관한 설명을 해야 했다. 그리고 가는 곳마다에서 우리 동포들을 만나 얘기도 나누고 그들의 안내를 받기도 했으며 한인들이 사는 곳에는 거의 어느 곳에나 한인교회가 있어서 연락해서 목사님들과 교회 장로님들을 만나기도 했다.
양 박사와 만날 때마다 되풀이되는 우리들의 과거 얘기들을 이번에도 나누었다. 북간도 용정에서의 소년시절, 서울에서의 대학생 시절, 같은 교회에 출석하던 시절 얘기 그리고 양 박사는 미국으로 오고 나는 캐나다에 와서 살게 된 삶의 얘기들을 이번에도 되풀이했다. 특히 이미 별세한 양 박사의 어머니 최옥명 권사님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 때는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최옥명 권사님은 양 박사의 어머님이시었지만 나에게도 친어머니처럼 느껴지는 분이었다.
노바스코샤에서 10월3일 주일을 맞게 되었는데 그곳 한인교회가 설교 청탁을 해서 설교했다. 양 박사 내외는 노바스코샤에서 미국 쪽으로 내려가 나이아가라폭포 구경을 하고 토론토에 오기로 하고 우리 내외는 토론토에 약속해 놓은 일들이 있어서 비행기로 토론토에 돌아왔다. 양 박사 내외는 10월7일 토론토에 와서 하룻밤을 우리 집에서 지내고 LA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