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나는 G20 회의를 계기로 퀸스파크 주청사 앞마당에서 열렸던 시위에 참여했었다. 그리고 내친 김에 5천여 인파에 묻혀서 몇몇 한인들과 함께 유니버시티 애비뉴 남쪽으로 행진하다가 퀸 스트릿에서 서쪽으로 돌고, 또 스파다이나 애비뉴에 이르러 북쪽으로 꺾어져 올라가다가 칼리지 스트릿에서 동쪽으로 돌아 퀸스파크로 되돌아 온 코스를 약 두 시간 반 걸려 걸었다. 그 다음날인 27일에는 레슬리 길 한인회관 진입로의 건너편에서 피케팅을 했었는데, 하필 비가 억수로 쏟아져 좀 불편했었지만 날씨가 여름이고 또 행진을 했던 것은 아니어서 힘들지는 않았다. 
 
 그 두 차례의 시위는 내가 주관했던 건 아니지만, 그러나 여러 명의 한인들이 참석할 줄로 짐작하면서 그 중엔 미처 피켓을 준비하지 못한 이들도 있지 않을까 싶어 나름대로 4개의 구호판을 만들었었는데, 참가자 수는 예상만큼 안 되었지만 가지고 간 피켓은 다른 분들도 함께 사용했다. 그 내용은 다음 것들이다.

 “South Korea, Stop Building Dams on 4 Main Rivers” “War? Oh No! Leaders of S.&N. Korea Must Meet and Talk about Peace" “Korean Warship Accident / People Want to Reinvestigate the Sinking of the Chunan Vessel" “실패한 청계천 / 4대강 (파헤치기) 중단하라”.
 
 나는 살아오는 동안 몇 번의 시위에 참가했었다. 초중고교시절엔 여러 번 관제데모에 참가했었지만, 언제 어떤 궐기대회에 갔던지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자의로 참여했던 첫 번째 시위는 대학생시절 을지로를 거쳐 중앙청 앞까지 갔었던 4·19 시위다. 그리고 두 번째는 캐나다에 와서 모국의 광주사건 때 토론토시청 앞에서 가졌던 범교민 전두환 군부정권 타도시위였다. 세 번째 시위는 1982년도 전두환씨가 대통령으로서 오타와에 방문했을 때 오타와까지 원정가서 벌였던 규탄데모였다. 그 외에도 80년대 당시 유니버시티 애비뉴에 있었던 총영사관 앞에서의 시위에 몇 번 참여했었는데, 그리고는 20 몇 년 만에 참가한 시위가 이번의 시위다. 이런 얘기를 하면 혹자들은 내가 시위를 즐기는 줄로 알지 모르겠으나 난 시위꾼도 아니거니와 애초부터 폭력적인 시위는 옳지 않다고 보았기에 4·19 때도 돌멩이를 들지 않았었다.
 
 시위는 민주주의 체제하에서의 국민의 정당한 의사표시의 한 형식이다. 시위엔 관제시위가 있는가 하면 민간주도 시위 중에도 찬성을 위한 찬성시위가 참 많지만, 시위하면 반대를 위한 반대행위로 오해되곤 한다. 까닭은 관제시위나 찬성시위는 보호 가운데서 부추김받으며 하는 시위인 데 비해 반대를 위한 시위는 차단 내지 방해 가운데 갈등과 대결로 벌어지기 때문에 얼핏 반대시위만이 시위로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시위는 대개 불공정하게 평가된다. 그러나 놀라운 바는 바로 그 시위의 열매는 사실은 그런 류의 시위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약삭빠르게 더 많이 따먹는다는 점이다. 그러기에 민주주의가 발전한 나라에선 모든 시위는 합법적으로 공평하게 인정받고 공정하게 평가받는다. 그런 면으로 보면 한국사회의 사고와 한국인들의 관념 속에는 아직 시위에 대한 바른 견해가 자리 잡혀 있다고 보기 어렵다. 긴 세월동안 사상과 이념의 권리와 자유가 제재되어오기 때문에 사람들이 ‘다르다’와 ‘틀리다’를 제대로 구분하는 교육을 받지 못해서 그러지 않겠나 싶다.
 
 정작 잘못되고 나쁜 것은 힘이나 편견에 의해서 사실이 감춰지고 논리가 왜곡되고 정의가 억압받고 진리가 빛을 발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지난 3월 말에 일어난 천안함 침몰사건에 대한 모국정부의 발표엔 몇 가지 납득하기 어려운 석연찮은 점들이 있다고 보기에 재조사가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이번 기회에 피케팅을 했었다. 물론 한국정부는 정권적 차원의 권위가 손상되는 것을 허용할 수 없기에 재조사를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유엔의 안보리는 한국정부가 그 사건을 빌미로 제안한 북한제재를 결정하지 않을 것인데, 내적으로 도저히 그럴 수는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일 것이다. 
 
 빛이 어둠을 다 밝힐 수는 없다. 그러나 어둠이 빛을 완전히 덮어버릴 수도 없다. 그건 자연의 절대법칙이다. 그런데도 인간사회에서는 인위적으로 조작된 어둠으로 빛을 완전히 덮으려드는 일이 흔히 일어난다. 그런 경우엔 누군가가 제2의 불을 켜서 인위적인 어둠을 밀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시위를 나는 그런 경우의 불켜기 같은 것이라고 보는데, 혹 그게 시위를 너무 긍정적으로만 본 견해라고 한다면 “물론 모든 시위가 다 그렇다는 건 아니다”라는 토를 하나 달면 되지 않겠는가 하고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