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미노 데 산티아고’는 제3의 성지인 스페인의 서북쪽,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가는 순례의 길이란 뜻이다. 이 순례의 길은 황량한 들판과 피레네 산맥을 넘어서 걸어가는 지역의 문제 때문에 주로 프랑스와 스페인의 접경마을 생 장 피드포르에서 시작하거나 포르투갈에서 여러 사람이 합류하여 순례의 길을 시작한다. 마을 주변에 있는 성당과 수도원과 성인들의 유물 등을 만나면서 믿음에의 열정을 되찾는다. 금욕과 인내와 고행이 따르는 이 순례는 마치 자신이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의 영광에 동참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속죄와 변화의 과정, 말하자면 자기실현의 과정이기도 하다.

순례자들은 산티아고 대성당까지 걸어서 혹은 자전거로 1천km 내지 2천km를 달려와 순례자의 사무실에서 무사히 도착한 인사와 인정서를 받은 후 매일 정오에 열리는 미사에 참석한다. 힘든 순례 길에서 병들거나 이 성지에서 자신의 삶을 마감하려는 병약한 사람들을 수용하는 호스피스(병원과 동의어)가 있었지만, 이용하는 이가 줄어들어 지금은 화려한 호텔과 국제회의장으로 바뀌었다.

한 별빛이 이베리아 들판의 동굴을 비추어 그곳에서 예수가 사랑하던 제자 가운데 제일 먼저 순교한 큰 야고보의 시신을 발견한 다음부터 지금까지 사도 야고보의 이적을 믿고 묵상하는 고난의 긴 여정을 순례하는 사람이 다시 늘어나고 있다. 날이 갈수록 온 세상이 부익부 빈익빈의 경지에 이르자 그 그늘에 숨어있는 영성에 대한 갈망의 노출인지도 모른다.

카미노 산티아고는 성서의 구절에서 딴 ‘일년이 천년 같은 순례’라고 그 긴 여정을 표현해왔으나, 요즘엔 ‘40일의 순례’라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30여 일이 걸리는 여정 외에 떠나기 전의 준비과정과 돌아온 다음의 정리과정을 포함해서다. 그보다 40일이라는 성서적인 용어는, 예수의 40일 광야기도를 떠 올리고, 성서적인 명상과 관련한 암시적인 숫자, 마침내 이루는 성공의 숫자를 의미하기 때문이리라.

현대 작가 코엘료가 1986년에 옛날 에스파냐인의 순례길인 이 카미노 산티아고를 따라 걸으며 힘겹게 체험하고 쓴 ‘순례여행’과 그 후에 쓴 ‘연금술사’ 이야기는 굉장한 인기로 번역출간 되고 있다. ‘연금술사’의 주인공 이름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의 주인공인 산티아고를 따다 붙인 건 좀 너무했지만, 그 연금술사도 사도 산티아고처럼 변용의 과정을 거쳐 깨달음에 이르는 여정을 묘사했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그래서 그의 책은 ‘자아의 신화를 찾아가는 영혼의 연금술’이라는 평을 듣는다.

3세기의 영지주의자이며 연금술사였던 초시모스는 자신의 체험을 기초로 한 연금술의 과정을 가톨릭교회 전례의 하나인 성체변화에 견주어 말했다. 예수의 성체의식에서 받는 떡과 포도주는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환하여 우리를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현상으로 변화시키는 색 다른 연금술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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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내리는 산티아고 대성당의 야경
(Raining Nightview of the Santiago Cathedral)
우리 부부는 토론토에서부터 비행기와 기차와 버스를 타고 도보순례가 아닌 현대적인 순례를 했지만 우리도 여행 전후를 포함하면 ‘40일의 순례’를 한 셈이다. 파리와 레옹의 한적한 길목에서, 빠삐뇽의 옛날 성채 뒷길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가는 순례의길’이라고 쓴 이정표를 보는 순간, 우리도 순례의 길에 참여하는 감동의 순간을 맛 보곤 했다.

우리의 종착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대성당, 11세기에 마태오 장인의 손에 다듬어진 성인 야고보라는 ‘모퉁이 돌’로 고이기 시작한 이 거대한 성당은 조각예술작품 그 자체였다. 정문에 있는 영광의 문엔 산티아고가 그를 둘러 서있는 모든 사도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듯 앉아 있고, 북쪽 시계탑 아래 반원형의 문 기둥 위엔 산티아고가 긴 지팡이를 짚고 나의 할아버지 같이 인자한 웃음을 띠고 우리를 반겼다.

우리가 머물던 나흘 동안 줄기차게 내내리는 빗줄기 속에 산티아고의 별이 머문 언덕을 지나, 사도의 도시, 대학의 거리를 순례했다. 셋째 날 해가 질 무렵, 메뉴판이 요란한 라피도 식당에 들어갔다. 밤 10시30분 대성당에 불이 켜진다는 친절한 정보를 준 덕분에, 갈릴리바닷가 베드로 물고기보다 더 비싼 ‘산티아고의 해돋이조개찜’을 맛있게 먹었다. 식당주인은 우리가 먹고 난 빈조가비를 깨끗이 씻더니 새 조가비 두개를 더 얹어 준다. 나는 ‘와-그라시아스!’ 하고 탄성을 올리며 선물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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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ling Leaves, Flowering Oleander in Alameda Park
10시 반이 넘어 우리는 다시 밤의 순례를 계속했다. 대성당 주변이 갑자기 불을 당긴 듯 밝아졌다. 여전히 온 누리는 신비스런 비와 안개에 젖어 산티아고 대성당은 야고보의 영적인 숨결을 내뿜고 있었다. 지하층에서 비쳐 나오는 불빛은 마치 사도 야고보의 시신이 있는 자리를 인도해준 금빛 별이 보내주는 듯 눈부셨고.

다음날 산티아고의 마지막 날 이른 아침, 단비를 맞으며 가까운 곳에 있는 Alameda 공원에 걸어가 산티아고 대성당을 돌아다보았다. 산티아고가 우리의 떠남을 서운해하는 듯 더욱 회색빛 사색에 잠겨있었고, 빨간 철쭉꽃 같은 올린다 꽃잎이 간밤의 비바람에 우수수 떨어져 바닥에 수북하다. 솔로몬 시대의 현인들이 그들의 성공을 기원했던 꽃피는 협죽도 나무가 산티아고 성당 동구 밖에 서서, 산티아고를 묵상하는 이들이 피곤치 않게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돌아가 진리를 실천하도록 기원해주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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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amuel & Tony with his Santiago Pilgrimage Credit
산티아고 기차역엔 집으로 돌아가는 많은 순례자들이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며 서성거리고 있다. 마치 그리스도 안의 한 형제이며 영원한 나그네 길을 함께 가려고 기차를 기다린다는 듯이. 다섯 번이나 카미노 산티아고를 순례한 네덜란드인 프란츠 할아버지는 35일동안 짚고 걸어 온 조가비와 나무십자가 달린 지팡이를 자랑스럽게 보여준다. 나는 그 귀한 지팡이를 만지작거리며 사진을 같이 찍었다. 또 한분, 도수 높은 안경 쓴 토니 할아버지는 고향 제네바에서 자전거로 피레네 산맥을 넘어왔단다. 기차 안에서 바로 우리 앞자리에 앉아 남편 민석홍 장로와 함께 그의 굵직한 자전거 타이어를 풀어 큰 가방에 접어 넣고 긴 이야기를 즐겁게 나눈다. 그가 받은 인증서가 가득 찍힌 노트와 지도를 자랑스럽게 보여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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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티아고의 종과 해돋이 조개
(Santiato Shell & Bell at S. Hampton Beach)
우리는 지난 주말 집에서 가까운 해변에 가서, 산티아고의 래피토 식당주인이 선물로 준 해돋이 조가비와 기념품으로 산 십자가 달린 은빛 종을 모래밭 위에 나란히 놓고 드려다 보았다. 열성이 높은 순례자들이 산티아고 성당에서부터 사도 야고보의 유해가 돌배에 실려 왔다고 하는 바닷가까지 순례여행을 연장하는 것처럼, 우리가 그곳에서부터 가져온 정다운 산티아고의 조가비들을 이곳 해안에서 만져보고, 머리에 써보기도 하면서 손이 얼기 직전까지 앉아있었다. 이 해돋이조가비들은 누가 뭐라든 산티아고를 사랑하며 그의 변용을 본 받으려는 우리 부부의 순례의 완성을 증명하는 증표이며 정표였다. 그리고 우리가 그를 본 받으려고 한 것은 미움이나 측은한 마음을 넘어서는 ‘사랑’임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