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정부 간에는 끝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사랑의 메시지’도 있다. 양 국민 간 장기기증이다. 지난달 지중해변 소도시에서 가옥이 무너져 10대 이스라엘 소년이 죽게 됐다. 소년어머니는 아들의 장기를 기증하기로 했다. 간·심장·콩팥 등 소년의 장기는 4명의 환자에게 각각 이식됐다. 간 이식을 받은 한 소녀는 웃는 얼굴로 “나에게 장기를 준 소년은 나의 형제며 그를 사랑한다”고 말했다. 이식수술을 받은 4명의 10대들은 모두 팔레스타인사람이었다.
3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다만 주는 쪽과 받는 쪽이 달랐을 뿐이다. 이스라엘군의 총탄에 12살 아들을 잃은 한 팔레스타인부모가 아들의 장기를 이스라엘어린이 3명에게 기증한 것이다. 팔레스타인아버지는 “아들과 나이가 같은 이스라엘어린이가 5년간 신장이식을 기다렸다는 얘기를 듣고 신장이식을 받지 못 해 죽은 형이 떠올라 기증 결심을 굳혔다”고 말했다. 그는 “장기기증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평화의 메시지가 전달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장기기증은 전쟁을 넘어 종교를 넘어 인류애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다.
사람이 남에게 할 수 있는 가장 큰 기부는 돈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뿐인 생명을 구해 주는 일일 것이다. 그렇기에 사람을 살리는 의사들이 고금을 통해 존경받는 것이며, 불가에서도 생명 보시를 성불을 위한 수행 중 으뜸으로 꼽는 것이다. 토론토 한인사회에서도 숭고한 인간애를 실천한 사람들이 더러 있다. 2006년 11월 하굣길에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숨진 김평화(마이클·당시 16살)군은 6명에게 새 생명을 주고 갔다. 학업성적이 뛰어나고 장래 메이저리거 되는 게 꿈이었던 김군이 뇌사판정을 받자 김군부모는 아들의 장기 일체를 기증했다. 김군은 떠났지만 그의 육신 일부는 이 땅 어디엔가 살아있는 것이다.
작년 9월 토론토 최대근(데이빗)씨에게 간을 기증한 몬트리올의 황인성씨도 ‘생명 릴레이’를 이어간 사람이다. 용접공으로 넉넉지 않은 생활여건 속에서도 남을 먼저 생각한 황씨는 인생에 있어 가장 값진 유산 남기는 법을 몸소 보여주었다.
장기기증은 인간이 행할 수 있는 가장 숭고한 헌신이다. 그럼에도 아직은 터부시 되고 있다. 유교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는데다 매장을 선호하는 장례문화 때문이다. 다행히 최근 한국에서는 김수환 추기경 선종 후 인식이 많이 바뀌고 있다. 하지만 이곳 한인사회에서는 아직도 낯설다. 남은 자들에게 새 삶을 선물하고 가는 것만큼 아름다운 마무리는 없다. 본보가 점화한 ‘생명 릴레이’ 캠페인에 특히 교계의 많은 관심을 바란다.
인권국답지 않은 ‘모녀 추방’
그들 모녀에게 끝내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공부 잘하고 명랑한 8살 유진이는 자기가 왜 이 나라를 떠나야 하는지 이유도 잘 모르면서 친구들과 생이별 했다. 유진이 엄마 김숙영씨도 두 달 간에 걸친 구치소 악몽을 뒤로하고 딸과 함께 한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편모에다 불법체류자로서 9년 동안 힘들게 살면서도 유일한 희망이었던 이민의 꿈은 산산조각 나버렸다. 이들 모녀에게 캐나다는 ‘약속의 땅’이 아니라 ‘비정한 땅’이었다. “개개인의 절박한 상황은 아랑곳하지 않고 법만을 내세워 중죄인도 아닌 사람을 구치소에 가뒀다. 더구나 딸이 시민권자인데도 이렇게 내쫓을 수 있는가.” 김씨는 아마 이런 생각을 하며 이 땅을 떠났을지도 모른다.
이들 모녀에게 선처를 호소한 주류사회의 구명운동에도 불구, 이민당국은 당초 방침을 밀고 나갔다. ‘부적절하고 지나친’ 단속이라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유진양이 다니던 학교의 어느 학부형 말처럼 “김씨는 복지서비스에 부담을 줄 사람이 아니며 죄가 있다면 보다 나은 삶을 딸에게 주려 했을 뿐” 아닌가. 김씨의 불법행위를 정당화하자는 게 아니다. 모든 불법체류자는 말 그대로 불법체류자다. 현행법 하에선 단속대상이다. 하지만 불체자가 경제의 중요한 한 축인 것이 캐나다의 현실이기도 하다. 경찰당국도 묵인하는 비공식적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급습단속은 효과를 거두기 쉽지 않다. 지난 한 해 약 1만 명이 강제 추방됐다. 전국 50만 불체자문제 해결에 그다지 도움 되는 숫자가 아니다.
특히 이번 김씨 경우처럼 자녀가 캐나다에서 태어나도 부모가 불체자라면 함께 추방하는 정책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부모의 보호 속에서 이 나라의 주인으로 자라야할 국민의 기본권을 중시하지 않는 처사는 ‘인권국가’답지 않다. 10년 전 연방대법원이 김씨 사례와 유사한 자메이카인 메이비스 베이커씨에 대해 “자녀들의 권리에 상당한 무게를 둬야 한다”고 판결한 것도 이런 이유다. 하지만 9·11사태 후 대법원의 ‘가이드라인’은 퇴색했고 이민당국은 불체자 단속의 고삐를 죄어왔다.
진정한 이민개혁은 기존 불체자들의 인권도 존중하는 인식의 전환에서 출발해야 한다. 사면이 힘들다면 제도적인 개혁을 통해 최소한의 숨통은 틔워줘야 한다. 이 땅에 김씨처럼 그늘에 숨어사는 한인들이 많다.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한 이번 사례가 한인불체자의 고달프고 절박한 삶을 곰곰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