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시간 전만 해도 언제 우리가 강제노동수용소로 보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었다.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알 수 없어 절망적이었다. 그러던 중 북한당국 관계자가 우리를 어디론가 데려갔다. 우리 앞에 빌 클린턴 전 미국대통령이 서 있었다.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머리를 스쳤다. 가슴 벅찬 순간이었다.”

지난 5일 한국계 미국인 유나 리와 함께 북한에 141일간 억류됐다가 풀려난 여기자 로라 링의 귀국소감이다. 다시는 사랑하는 가족을 볼 수 없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억류생활을 했던 여기자들이 LA에 도착, 눈물 속에 가족들과 재회하는 장면은 감동적이었다. 더 감동적인 것은 2명의 보통국민을 구출하기 위해 5개월 가까이 북한과 막후협상을 벌인 미국정부의 자국민 보호 노력이다. 미국정부는 이들의 신변안전과 북한당국에 의한 적절한 처우 보장을 위해 가능한 모든 채널을 동원했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에선 전직 대통령이 직접 적국으로 날아가 ‘이민자 2명을 모셔왔다’는 점이다. 이민의 나라인 미국 국민의 애국심이 결코 단일민족 국가에 뒤지지 않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나라가 자국민 보호를 위해 최선을 다할 때 국민들도 자발적인 애국심을 보이는 것이다.
여기자 석방을 보면서 느낀 것은 역시 시민권을 받아야 한다는 것과 또 한국에 대한 북한의 이중적인 잣대다. 만약 두 기자가 영주권자 신분이었다면 미국정부가 저토록 적극적인 구출노력을 했겠느냐는 점이다. 오바마정부는 북한에 억류돼 있는 자국민을 정부가 한시도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을 확인해주기 위해 거의 매일 여기자 가족과 연락을 취했다고 한다.

캐나다정부도 자국민이 해외에서 위험에 처했을 경우 상당한 노력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3년 전의 레바논사태를 예로 들면 당시 연방정부는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레바논을 탈출하려는 자국민 철수작전을 대대적으로 벌인 적이 있다. 당시 일부 언론은 “캐나다여권을 보신용으로 갖고 있는 레바논계 구출에 엄청난 국고를 낭비할 필요가 있느냐"며 반대했지만 연방정부는 공군기를 동원, 수천 명을 ‘모셔’ 왔다. 당시 미국정부는 의회결정이 나지 않았다며 레바논을 떠나려는 자국민에게 비용을 청구했지만 캐나다는 전액 국고로 충당했다.

캐나다시민권은 일반적으로 국적을 의미하지만 국적보다는 정치색채가 더 짙은 용어로 참정권 등 권익을 주장하는 권리와 비상시 정부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적극적이고 선택적인 의미를 내포한 말이다. 한인들이 이곳에서 개인적으로 또는 집단적으로 권익을 누리고 혜택을 받으려면 시민권을 취득하는 것이 선결조건이다. 그리고 시민권을 받으려면 빨리 받는 게 좋다. 시간이 지날수록 취득조건이 까다로워질 수밖에 없다.

국적은 미국이지만 같은 한인인 유나 리가 풀려난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하지만 북한이 미국인만 석방하고 한국민은 그대로 억류하는 것을 보면 여간 실망스런 게 아니다. 개성공단에는 현대아산 직원 한 명이 넉 달째 구금돼 있다. 얼마 전 조업 중 북한수역에 잘못 들어갔다가 끌려간 한국인선원 4명도 아직 풀려나지 못했다. 북한은 ‘우리 민족’을 외치면서도 정작 한국정부가 도움을 요청하면 ‘원수의 나라’보다도 못 한 대우를 하는 것이다. 이런 태도야말로 그들이 주장하는 주체사상에도 배치되는 일 아닐까.

이제라도 떠나야 하는 이유

캐나다에 사는 한인들에게 정든 고국을 놔두고 왜 태평양을 건너왔느냐고 묻는다면 대부분은 “보다 나은 삶을 위해서”라고 말할 것이다. 과연 한인들은 ‘보다 낫게’ 살고 있는가. 한국에 있는 친지들의 여유 있는 삶의 모습을 보면서 이민한 것을 후회한 적은 없는가. 게다가 불경기와의 싸움은 심신을 더욱 피곤하게 만든다. 열심히 일을 해도 저축은커녕 가계적자가 쌓여가는 것을 보면 휴가라는 말조차 사치로 느껴질 때가 많다.

하지만 그럴수록 휴가를 떠나야 한다. 잔뜩 움츠러든 심신치료에 휴가보다 좋은 보약은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왜 돈을 버는가, 왜 바쁘게 사는가를 자문해보면 휴가가 왜 중요한가에 대한 대답은 저절로 나온다. 쉼이나 떠남이 없는 일상은 건강할 수가 없다. 그날그날 연명해가기 때문이다. 1년에 한두 번 집안을 대청소하듯 몸과 마음에도 한 번쯤은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는 기회가 필요하다. 그래야 출구가 보이지 않는 일상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자신의 생활과 내면을 정리할 수 있다. 아직도 휴가를 갔다 오지 않았거나 생각만 하고 있는 사람들은 더 늦기 전에 떠나야 한다.

휴가를 가는 사람은 또 오래 산다. 작년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6년에 한 번 휴가를 떠난 여성들은 1년에 2번 휴가를 간 사람보다 심장병에 걸릴 확률이 8배나 높았다. 또한 심장병 위험이 높은 남성 중 매년 여행을 가지 않은 남성의 사망확률은 21%, 심장병으로 죽을 확률은 32%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휴가는 단순한 휴식이라기보다는 삶에 생기를 불어넣는 산소다.

고은 시인의 시 ‘낯선 곳’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떠나라/ 떠나는 것이야말로/ 그대의 재생을 뛰어넘어/ 최초의 탄생이다, 떠나라.’ 휴가를 떠나는 것은 새로운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