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올 때 조심하라. 올라가는 것보다 내려오는 것이 더 힘든 법이다."

에드먼드 힐러리경의 아들 피터가 2002년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라 "아버지 저도 해냈어요"라고 인공위성 통화를 했을 때 힐러리경이 한 말이다. 당시 피터는 아버지인 힐러리와 함께 인류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셰르파인 텐징 노르게이의 아들 잼링과 한 조로 정상에 올라 화제가 됐었다.

등산은 말 그대로 산을 오르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산은 오를 때보다 내려올 때가 더 중요하다. 조난사고는 주로 하산 때 일어난다. 한국인 최초로 히말라야 14좌를 등정한 엄홍길은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르는 것보다 내려오는 게 더 어려운 이유를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8천m 이상의 고봉에 오를 때는 긴장과 산소 부족으로 제정신이 아니다. 비몽사몽으로 해낸다. 거기서 너무 감격하면 긴장이 풀리게 된다. 지현옥씨도 등정에 성공한 후 내려오다 변을 당했다. 대학 산악인 P씨도 정상에 오른 후 잠깐 선글라스를 벗었다가 설맹 때문에 하산 시 목숨을 잃었다."

라인홀트 메스너는 현재 살아있는 알피니스트 중 전설적인 인물이다. 인류최초로 8천m 봉 14개를 완등했다. 그것도 대부분 무산소로. 그런 그도 홀로 하산을 시도했다가 여러 차례 목숨을 잃을 뻔했다. 그는 "인간은 경건함을 잃는 순간 추락한다"고 경고한다. 산에 올라갈 때의 진지함과 경건함을 내려올 때 잃기 쉽고 결국 죽음의 심연으로 떨어진다는 얘기다. 알피니스트들은 보다 높은 산에 오르기 위해 신명을 바친다. 하지만 그들은 정상에 오르는 것보다 하산에 올인한다. 진정한 산악인은 정상에서 결코 환호하지 않는다.

지난 11일 88세로 생을 마감한 힐러리경은 20세기 최고의 탐험가이지만 등정보다는 하산 길을 더 중시했다. 등산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그랬다. 1953년 5월29일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라 단번에 세계적인 명사가 됐지만 늘 자신을 낮추었다. '세계 지붕' 첫 등정의 영예를 셰르파인 텐징에게 양보하기도 했다. "진정한 영웅은 내가 아니라 미천하게 출발해 세계 정상에 선 텐징이다"고 외쳤다. 그는 각종 강연에서 받은 돈과 인세 등 대부분의 수입을 히말라야 재단에 내놓았다. 그가 1960년 만든 히말라야 재단은 그 동안 네팔에 3개의 병원과 13개의 진료소 및 30개가 넘는 학교를 지었다. "하늘이 나에게 처음 에베레스트 길을 허용한 것은 네팔 주민들을 위해 봉사하는 인연을 맺어주기 위한 것"이라며 정상 정복보다 네팔 돕기에 더 보람을 느낀다고 말할 정도로 자선에 열중했다.

그는 재단 사업을 위해 토론토도 수 차례 방문했다. 1973년부터 힐러리경과 친분을 쌓은 토론토 기업인 지케 오코너씨는 "힐러리 초청으로 네팔을 여러 번 방문했는데 그가 10번 정도 산소 부족으로 거의 초주검이 되는 장면을 봤다. 해발 4천m 이상의 지대에서 학교와 병원 짓는 일에 몰두하다 생긴 고산병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기를 거부했다." 힐러리경은 마음만 먹었다면 뉴질랜드 총리도 될 수 있었지만 이를 마다하고 산악인으로 자선사업가로 생을 마감했다. 15년 전 뉴질랜드 5달러짜리 지폐에 그의 초상화가 들어가게 된 것도 이런 삶과 무관하지 않다.

인생에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게 마련이다. 산을 오르는 도전과 탐험정신만큼 하산의 지혜와 용기도 중요하다. 힐러리경은 결코 정상에서 환호하지 않았다. 그래서 하산길은 더욱 빛을 발했다. "내려올 때 조심하라. 올라가는 것보다 내려오는 것이 더 힘든 법이다." 영원한 에베레스트 사나이 힐러리가 우리에게 남긴 메시지다.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