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쥐는 순수한 한국말로 밤쥐란 말이 변형된 것이다. 중국에서는 날아다니는 쥐라하여 비서(飛鼠)라 부른다. 일본에서는 우산같이 생겼다하여
우산쥐라 하는데 공통점은 쥐라는 개념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박쥐는 쥐가 진화된 종(種)으로 얼마 전까지도 생물학계에서조차
이견이 없었다. 하지만 10년 전부터 동물의 진화과정을 유전자(DNA)서열을 판독해 정의를 내리기 때문에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많은 부분의
진화론을 수정하고 있다. 바로 박쥐가 이에 속한다.
박쥐의 유전자 서열은 쥐보다 낙타나 돌고래에 훨씬 더 가깝다. DNA 기준으로 보면 쥐는 약 6,500만년 전에 태어났고, 수많은
젖먹이동물들이 분리되어 나갔으나 쥐 자신은 지금까지 큰 변화 없이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이에 비해 박쥐 역시 오래된 젖먹이동물로 최고 오래된
화석은 2004년에 발견된 것으로 분석결과 약 5,200만년 되었으며 낙타와 돌고래의 조상이었음이 밝혀졌다. 이빨화석이 곤충을 잡아먹는 지금의
박쥐 것과 같아 그 당시에도 밤하늘을 누비고 다녔다고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쥐와 박쥐는 둘 다 오래된 포유동물로 아무런 연관성 없이 각자 살아왔다는 이야기이다. 따라서 둘은 살아가는 방법이 판이하게
다르다. 우선 쥐는 뱀, 고양이, 매 등 천적이 많지만 박쥐는 천적이 거의 없어 자연계 먹이사슬에 끼어있지 않다. 게다가 박쥐는 젖먹이동물 중에
유일하게 공중을 날아다니는 능력이 있어 생존에 위협을 거의 받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치열한 생존경쟁 속에서 사각지대를 잘 이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낮에 날아다니면 매 같은 적에게 노출되고, 땅위에서 자면 뱀이나 야생 맹수의 먹이가 되지만 박쥐는 아무도 접근할 수 없는 동굴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잔다. 이같이 박쥐는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수단으로 자연속의 사각지대를 택했다.
박쥐의 혈통을 이어받은 낙타나 돌고래 역시 비슷하다. 특히 맹수를 피해 아무도 살 수 없는 사막의 사각지대를 택한 낙타는 처절한
자기변신으로 어떤 동물도 먹을 수 없는 마른 풀을 소화시킬 수 있게 진화했다. 박쥐 역시 깜깜한 밤하늘을 누비며 먹이사냥을 해야 하는데 야행성이
되고 보니 시력은 퇴화되어 차선책으로 스스로 개발한 먹이사냥 수단은 초음파였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박쥐는 음파 탐지능력이 월등하다.
사람의 경우 음파를 20에서 1만3천 Hz(헤르츠)까지 들을 수 있는데 이는 소음이 없는 공간에서 30cm 밖에 날아가는 모기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하지만 박쥐는 20에서 15만Hz로 10m 떨어진 공간에서 모기가 날아다니는 소리를 듣는 청각을 지녔다.
문제는 먹이 사냥할 때 시속 60km로 질주해 주위 물체와 충돌을 피해야 하기 때문에 항상 “찍찍”소리를 내고 그 반사파를 수신해 두뇌에
먹이 뿐 아니라 주위 물체를 정밀하게 구상해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박쥐는 주로 모기를 잡아먹는데 배를 채우기 위해서는 하룻밤에 최소한 3천 마리
이상을 사냥해야 한다. 이러한 불가사의한 점을 들어 박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감각이 있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 왜냐하면 공중을 날면서
초음파가 미치지 않는 나뭇잎 뒤나 풀잎 뒤에 숨어있는 벌레를 식별하는 능력이 있고 박쥐가 선호하는 풍뎅이무리에 모조플라스틱 풍뎅이를 섞어놓으면
모조풍뎅이한테는 접근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박쥐는 앞다리와 몸통 사이가 가죽막으로 접게 되어있어 날개역할을 하고, 잘 때는 몸을 감싸 열을 보호하지만 이를 펼쳐 활강할 때는
제비보다 빠르다. 특히 좁은 공간에서 방향전환은 어느 조류도 할 수 없는 동작으로 이 또한 과학의 연구대상이다.
박쥐는 생물학계에도 숙제를 남기고 있는데 암놈은 수컷의 정자를 받아 곧바로 수정시키지 않고 몇 개월이고 자궁에 간직하고 있다가 적절한
시점에 수정시켜 배란하는 특성이 있다. 이런 체질을 인간이 지녔더라면 인구조절은 물론 수많은 비극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이같이 박쥐는 많은 신비를 간직한 동물로 2차대전 당시 박쥐의 반사파 판독에 힌트를 얻어 레이더를 발명, 전세(戰勢)를 역전시킨 사실은 잘
알려진 실화다. 박쥐는 생존경쟁을 피해 진화해온 동물로 아직도 파악할 수 없는 신비성을 지니고 있다. 불길한 동물이란 편견은 버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