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 경제전망에서 필자는 북미경제의 발목을 잡을 암초 중에 두 가지의 해외요인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나는 유럽 재정위기의 악화 가능성이고 다른 하나는 중국의 인플레 악화가 필연적으로 불러올 초긴축정책으로 인한 성장률의 급락 가능성이다. 후반기로 접어드는 현 시점에서 북미경제는 두 암초에 걸려 허덕인다. 현재로서는 두 번째보다는 첫째 암초가 더 심각해 보인다.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든 것은 두 암초 외에 연초에는 전혀 예기치 못했던 다른 두 가지 돌발변수가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이는 연초에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민주화바람이 일으킨 원유가의 폭등과 곧이어 나타난 일본 대지진 및 쓰나미다. 유가 폭등은 기업의 생산비를 올려 생산활동이 위축됐고 소비자들의 가계부를 압박해 소비지출이 줄었다. 일본 쓰나미는 북미 일부 제조업계 특히 자동차업계에 부품 공급의 차질을 가져와 생산활동을 위축시켰다. 그 결과 1분기 미국경제 성장률은 보잘 것 없는 0.4%에 그치고 말았다.
여름으로 접어들면서 그리스의 채무불이행(디폴트) 가능성이 점점 높아져 유럽 재정위기 확산에 대한 우려가 떠나질 않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지난달 미국의 부채상한문제와 디폴트 가능성이 거의 매일 매스컴을 탔다. 하원을 장악한 공화당은 극우세력인 티파티(Tea Party) 일당들의 압력을 뿌리치지 못하고 부채상한 협상과정에서 한 치의 양보 없이 부유층에 대한 세금 인상을 끝까지 반대했다. 그 결과 미국정부의 경제정책 수행력에 대한 회의감이 온 천하로 확산됐다. 협상은 정치적 계산에 집착, 진전이 없는 동안 경제는 서서히 힘을 잃었고 주식시장은 이를 반영해 꾸준히 하락했다.
마침내 8월2일 시한에 맞춰 부채상한 조정안이 의회를 통과했지만 내용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부유층에 대한 세금 인상은 전혀 없고 지출삭감 내용도 불분명해 앞으로 초당적인 추가협상에 의해 결정토록 했다. 이에 실망한 투자자들은 주식을 대거 팔아 치우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그날 발표된 제조업 생산, 소비자 지출, 그리고 고용창출에 관한 경제지표들이 모두 기대에 못 미치는 실망적인 것이었다. 2분기 성장률도 1.3%에 그쳤다. 한편 유럽에서는 이태리와 스페인의 재정적자 해결능력에 대한 회의감이 증폭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주가가 폭락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다행히 8월5일 실업률과 신규 고용 창출건수 발표가 예상외로 고무적이었으나 이미 주식시장은 타격을 받을 대로 받은 후였다. 사실 7월 실업률은 6월보다 0.1 포인트 낮은 9.1% 였고, 신규 고용 창출건수도 예상을 훨씬 웃돌았다. 내용도 건실해 공공부문보다도 민간부문에서 고용창출이 더 활발했다. 이는 월스트리트 생각과는 달리 미국경제가 더블딥에 빠질 확률이 낮아졌음을 의미한다.
문제는 실물경제의 실제상황은 어떻든 간에 주식시장이 일단 폭락하면 소비자들의 소비의욕이 줄어들고 기업들의 설비투자 및 생산의욕이 저하돼 증시 폭락 자체만으로도 실물경제 활동이 위축된다는 것이다.
문제를 더 꼬이게 하는 것은 경제적 어려움이 미국 뿐 아니라 세계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는 점이다. 유럽에서는 재정위기에 허덕이는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 그리고 이제는 이태리와 스페인까지 국채수익률이 위험수위로 올라가 이 나라들의 재정지출 삭감과 세금 인상에 박차를 가하는 초긴축재정을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만들었다. 이는 이 나라들의 성장률이 현저하게 저하되거나 경우에 따라 불황에 직면할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기회만 있으면 미국을 훈시하기 좋아하는 중국도 사정이 장밋빛만은 아니다.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 인플레를 잡으려면 이미 성장률이 많이 둔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긴축통화 및 재정정책에 배가의 노력을 경주해야 할 처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지나친 긴축으로 인플레도 잡지 못하면서 심한 경기침체를 감수해야 할지도 모르는 판국이다. 중국경제의 연착륙을 장담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대지진과 쓰나미의 충격에서 아직도 헤어나지 못한 일본도 죽을 지경이다. 미국 부채문제로 인한 신용등급 강등은 미화의 약세를 부채질하는 한편 유럽 재정위기의 확산은 유로화의 약세를 부추겨 이들 통화에 대한 엔화의 강세를 무마할 길이 없다. 가뜩이나 죽을 지경인 일본 수출업체들은 너도나도 앞다퉈 생산기지를 해외로 이전하기에 혈안이 되어있다.
캐나다와 호주는 아직까지는 승승장구한다. 최근 발표된 캐나다 실업률은 6월 7.4%에서 7월 7.2%로 꾸준히 내린다. 고용창출도 공공부문보다 민간부문이 주도한다. 파트타임보다 풀타임 직장이 더 늘어난다. 그러나 문제는 세계가 물속에 잠기는데 두 나라만 살아남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캐나다의 주요시장은 미국이고 호주의 주요시장은 중국이다. 미국경제에 더블딥이 오고 유럽과 중국의 성장률이 현저히 둔화되면 두 나라도 안전하지 못할 것이다. 이것을 예언이라도 하듯 벌써부터 원유를 비롯한 원자재가격이 폭락한다. 당연히 두 나라 증시도 미국증시를 따라간다. 현재 진행 중인 세계증시 폭락은 무엇보다도 미국의 더블딥을 전제로 한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더블딥을 피하고 미미하나마 플러스성장을 계속한다면? 유럽 재정위기가 더 악화되지 않고 그리스의 부분적인 디폴트 선상에서 일단 마무리된다면? 중국이 연착륙에 성공한다면? 그렇다면 일본도 엔화 강세의 압박에서 해방돼 어느 정도 숨통이 트일 것이다. 가을에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미국에서 우려했던 것보다는 덜 비관적인 경제지표가 속속 발표돼 폭락했던 주식이 다시 반등하기를 바랄 뿐이다.
(필자 주: 이 글을 마무리한 8일(월) 아침 현재 유럽중앙은행이 매일 25억 유로 상당의 이태리와 스페인 국채를 공개시장에서 매입키로 파격적인 결정을 내림으로써 유럽 재정위기 확산 우려는 일단 줄어든 것 같다.)
필자 유종수, Ph.D.
경제학박사/재정상담가(DY & Partn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