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한달 전 세계 3대 신용평가사 중의 하나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가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최고 수준인 AAA에서 한 단계 낮은 AA+로 하향조정하였다. 온 세계의 미디어매체들은 하늘이 무너지기라도 하듯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나 세계 금융시장, 특히 채권시장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콧방귀만 뀌고 있었다. 당시 증시의 동요는 갑자기 악화된 미국 실물경제 지표와 유럽 재정위기의 확산 징조가 동시에 발표된데 기인한 것이었다. 까마귀가 날아가자 배가 떨어졌을 뿐이다.
며칠 전에는 또 다른 신용평가사인 무디스(Moody’s)가 일본의 국가 신용등급을 Aa2에서 Aa3로 한 단계 내렸다. 이번에도 역시 세계 채권시장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단지 언론만이 무슨 큰 일이 난 것처럼 야단법석이었다.
한 나라의 신용도가 떨어지면 그 나라의 채권 값이 내려가고 채권 수익률(이자율)이 올라가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가 은행에서 돈을 빌릴 때 신용이 나빠지면 더 높은 이자율을 감수해야 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S&P가 미국의 신용등급을 내렸는데도 미국 국채수익률은 올라가기는커녕 오히려 내려가는 기현상(?)을 보였다. 미국정부가 자기들이 발행한 채권을 제때 상환하지 못할 것이라고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왜 2%의 낮은 이자율을 바라보고 미국 국채에 투자하겠는가? 신용등급이 내려갔는데 왜 국채(10년 만기) 수익률이 올라가기는커녕 2.5%에서 2%로 오히려 내려갔을까? 투자자들이 S&P의 신용평가를 믿지 않는다는 증거다. 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한 나라의 신용도를 보려면 그 나라가 발행한 국채의 수익률을 보면 된다. 신용평가사들이 매긴 신용등급을 볼 필요가 없다. 현재 주요 국가들의 10년 만기 국채수익률을 보면 일본 1%, 미국 2%, 독일 2%, 캐나다 2.3%, 영국 2.5%, 불란서 2.75%, 한국 3.85%, 이태리 5%, 스페인 5%, 아일랜드 9.5%, 포르투갈 10.6%, 그리스 18% 이다. 물론 한 나라의 국채수익률은 그 나라의 신용도 외에 예상 물가상승률을 어느 정도 반영하는 면도 없지 않다. 또한 단기 이율의 경우, 예상 환율변동률도 반영한다. 그러나 그리스 18%와 스페인 5%의 차이는 근본적으로 국가신용도의 차이라고 보아야 한다.
신용평가사들의 신용등급이 엉터리라면 그들의 존재 가치는 무엇인가? 신용평가사들이 유익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분야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아직 선진국대열에 끼지 못해 금융 시장에 그 나라에 관한 정보가 보편적으로 나와 있지 않은 나라의 경우에는 신용평가사들의 전문지식과 정보망을 바탕으로 한 신용평가가 유익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그리스 같은 경우 신용평가사들에 의한 국가 신용등급 강등은 국채수익률의 즉각적인 상승을 불러왔다. 그리스 재정상태에 관한 정확한 정보가 시장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증거다.
또한 정확한 정보를 구하기 힘든 민간기업들의 신용도를 측정하는 데에도 신용평가사들의 전문지식과 정보망이 필요하다. 다만 민간기업의 경우라도 세계 굴지의 대기업들의 신용도를 평가하는데 있어서는 이미 자본시장에 나와 있는 정보를 충분히 반영한 회사채 수익률이 이들 기업들의 신용도를 신용평가사들의 신용등급 이상으로 비교적 정확히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신용평가사들이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야는 관련 정보가 자본시장에 광범위하게 보편적으로 나와 있지 않은 국가들 또는 민간회사들에 대한 신용평가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이나 일본 같은 나라의 재정상태는 신용평가사들이 아니라도, 아니 신용평가사들보다 일반투자자들이 더 잘 알고 있다.
사실 신용평가사들은 민간기업 신용도를 객관적으로 누구보다도 더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서 출발한 것이다. 기업들이 회사채를 발행할 때 신용평가사로부터 일정의 신용등급을 받아 거기에 합당한 이자율로 회사채를 발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용등급이 없는 회사는 회사채 발행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신용평가사들은 자기들의 전문성과 공정성을 생명으로 여긴다. 왜냐하면 신용평가에 대한 수수료가 주 수입원이기 때문이다. 물론 더 좋은 신용등급을 받기 위해 기업들이 신용평가사들을 매수하려고 하는 충동이 없을 수 없다. 그러나 평가사들이 고객들에게 매수당하기 시작하면 그들의 신뢰도가 추락, 신용평가 자체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평가사들은 이러한 유혹을 뿌리치려 할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몇몇 신용평가사들이 세계시장을 쥐고 흔들 수 있는 단계에까지 도달해 이들의 영향력이 막강하게 되자 많은 기업들이, 심지어는 리만브러더스 같은 초대형 금융기관까지 평가사들과 결탁하여 부당한 방법으로 현실과는 동떨어진 신용등급을 획득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런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나자 대형 신용평가사들의 신뢰도가 땅으로 추락하였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S&P와 같은 대형 평가사들은 민간회사에 대한 신용등급 서비스 제공과는 달리, 국가 신용등급을 매기는 데에는 어차피 수수료를 청구하지 못하기 때문에 손해 볼 것이 없다고 생각해 일부 국가들의 신용등급을 시장에서 인정하는 신용도와는 아주 거리가 멀게 매기기 시작한 것 같다. 그러나 이런 행태는 그들의 신뢰도를 더욱 추락시킬 뿐이었다.
사실 S&P와 같은 세계 굴지의 신용평가사들이 아닌 대부분의 신용평가사들은 비교적 정직하게 영업하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그들의 신뢰도까지 흔들리지는 않은 것 같다. 캐나다의 대표적인 신용평가사로 도미니언(Dominion Bond Rating Agency)과 캐네디언(Canadian Bond Rating Services)을 들 수 있다. 이들은 국가 신용등급보다는 자기들 본연의 사업분야인 민간 기업의 신용등급을 주로 취급한다.
사실 몇몇 대형 신용평가사들이 국가 신용등급을 매기는 것은 월권행위로 볼 수 있다. 국가들은 신용평가를 받을 필요도 없고, 받을 의무도 없다. 좋은 신용등급을 받으면 국채 발행 시 이율부담을 낮출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는 자본시장에 신빙성 있는 통계자료를 제때 발표하는 것만으로도 가능하다. 나라 살림만 잘하면 시장에서 신용등급은 자동적으로 올라가게 마련이다.
오바마정부는 이미 발효된 새로운 금융규제안에서 미국 신용평가사들에 대한 규제를 강화시킨바 있다. 이것이 앞으로 이들의 행동에 얼마만큼의 영향을 미칠지 두고 볼 일이다. 신용평가사들은 정부의 강화된 규제보다는 그들 신뢰도의 추락으로 인해 시장에서 외면당하는 것을 더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
필자 유종수 Ph.D.
경제학박사/재정상담가(DY & Partn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