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1월1일 유럽연합(European Union) 회원국 중 11개국으로 유로존(Eurozone)이 형성되었다. 11개국은 유로화 사용조건을 충족한 유럽연합 회원국들 중 일부였다. 영국을 비롯한 상당수의 유럽연합 회원국들은 가입조건이 충족됐음에도 불구하고 유로존에 가입하지 않았다. 유로화 도입은 불란서와 독일 주축으로 이루어졌다. 유로존 회원국들은 처음에는 자국통화와 유로화를 병용했다. 2002년 1월1일 유로존 각국 통화가 유로화로 완전 대체되어 유로화가 유로존의 명실상부한 단일통화로 자리매김했다. 현재 27개의 유럽연합 회원국 중 17개국만이 유로존에 가입돼있다. 영국,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등을 포함한 10개의 비교적 부유한 나라들은 가입하지 않았다. 반면 바티칸, 안도라, 산마리노 같은 유로존에 인접한 군소국가들은 유럽연합 회원국이 아니기 때문에 유로존에 가입할 수 없지만 유로존 승인 하에 유로화를 자국통화로 사용하고 있다.


 1990년대 유럽연합이 역내 단일통화의 도입을 검토할 당시 대부분의 경제학자들(특히 통화 전문가들)은 회의적 또는 아예 부정적인 견해를 표명했다. 이유는 당시 유럽연합이 경제이론 면에서 볼 때 적정통화지역(optimum currency area)의 조건을 충족하지 못할 만큼 경제, 사회, 제도적인 면에서 동질성을 결여한 방대한 지역을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면에서 주변의 강대국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는 군소국가들의 경우(앞에서 열거한 도시국가들이 좋은 예)를 제외하고는 효과적인 단일통화지역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여기에 맞는 적정 통화지역의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여러 조건 중에서 세 가지 기본조건을 말하면 역내 노동력의 자유로운 이동, 역내 재정정책의 획일성과 유연성, 역내 경기변동의 동시성이다. 현 유로존은 이런 조건들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유로존 재정위기의 근본적인 이유다. 그리고 현 재정위기의 해결이 쉽지 않은 이유다.

 유로존은 단일통화연맹으로 유럽중앙은행(The European Central Bank)이 통화정책을 주관 한다. 회원국가들은 독자적인 통화정책을 펼 수 없다. 각자 고유통화도 없다. 유로존의 통화 정책은 경제력이 가장 강한 독일과 불란서에 의해 좌지우지된다. 독일경제가 호황이어서 인플레가 주요 관심사일 때 유럽중앙은행은 긴축정책을 쓴다. 그러면 유로화가 강세로 된다. 이는 그리스나 포르투갈 같은 나라에게는 치명적이다. 수출시장에서 자국 상품이 경쟁력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불황 타개에 적합한 통화팽창이나 저리정책을 쓸 수 없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정부 지출을 늘리고 세금을 인하하는 경기부양책 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정책은 재정적자를 가져와 국가부채를 늘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결국 재정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만일 불황에서 허덕이는 유로존 국가들이 단일통화 족쇄에서 해방돼 변동환율제도를 쓸 수 있게 된다면 자국 통화가치의 하락을 허용할 수 있게 돼 재정적자를 감수하지 않고도 불황에서 빠져 나올 수도 있다. 단일통화 하에서는 이것이 불가능하다.

 일부 유로존 국가들의 재정위기가 극에 달하게 되면 유로존 전체가 흔들리게 된다. 재정위기에 처한 국가들의 국채가격이 폭락해 이를 대량 보유한 유로존 내의 은행들이 부실해지기 때문이다. 물론 위기에서 허덕이는 국가들을 유로존에서 탈퇴시키고 이들이 부도를 낸 후에 새 출발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유로존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유로존은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무슨 수를 써서라도 회원국의 부도를 막으려 할 것이다. 그러나 환부를 쉽사리 도려내지 못하니 문제는 갈수록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유로존과 유럽연합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통화연맹을 넘어 역내 재정정책의 획일성과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는 장치를 도입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진정한 유럽합중국(The United States of Europe)으로 재탄생해야 할 것이다. 그럴 때까지는 설령 현 재정위기를 가까스로 극복할 수 있다 해도 앞으로도 수많은 역경과 난관을 거쳐야 할 것이다. 물론 유로존을 포함한 유럽연합이 유럽합중국으로 재탄생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나라가 크다고 해서 그 나라 국민들의 생활수준이 높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렇게 크지 않은 나라 사람들의 생활수준이 더 높은 것을 우리는 흔히 볼 수 있다. 이것은 적정통화지역론에 비춰 볼 때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는 현상이다.

 미국이나 중국, 러시아 같이 덩치 큰 나라들이 적정통화지역에 합당한 몇 개의 지역으로 분할된다면 그 지역사람들의 생활수준은 많이 향상될 것이다. 심지어 캐나다의 경우도 적정통화지역으로 보기에는 지역의 경제적 특성이 너무나 다른 것처럼 보인다. 석유나 천연가스 자원이 풍부한 알버타주가 호황을 구가하면 캐나다 전체의 경상수지 흑자 폭이 커져 캐나다달러 가치가 상숭, 수출의존도가 높은 공업시설이 집중돼있는 온타리오주가 타격을 받게 된다. 이런 문제는 캐나다달러라는 단일통화를 쓰는 캐나다중앙은행이 통화정책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다행히도(?) 유로존과 달리 캐나다는 국가차원에서 지역 불균형을 해소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주정부에 대한 중앙정부의 재정지원(Equalization Grants) 같은 정책 또는 다른 국가 차원의 정책을 쓸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정책이 국민들의 평균 생활수준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캐나다를 적정통화지역 조건을 충족하는 두세 조각으로 분할, 독립시켜 분할된 각 나라가 자국 고유의 통화를 갖고 변동환율제도를 쓴다면 각 나라의 생활수준은 더 향상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캐나다를 몇 조각으로 분할시키자는 주장을 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경제적인 면은 접어둔다고 해도 이는 실현 가능성조차 없기 때문이다. 만일 유럽합중국이 탄생한다 해도 적정통화지역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뜨거운 정치적인 야망만으로 차가운 경제 현실을 극복할 수는 없다.

유종수 Ph. D.
경제학박사/재정상담가(DY & Partn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