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인 1992년 2월7일
유럽공동체(European Community) 회원국들은 네덜란드
마스트리히트에 모여 공동체보다 한 단계 높은 통합수준인 유럽연합(European
Union)을 추진하기 위한 조약에 서명했다. 다음해
11월1일
마스트리히트 조약에 따라 정식으로 유럽연합이 발족되었고 단일통화로 유로화(Euro)가 도입됐다.
비준과정에서 어려움에 부딪쳐 이 조약은 3번이나
수정되었으나 결국 모든 회원국들의 비준을 얻는 데 실패했다.
이 조약은 4가지
거시경제적 조건을 충족하는 회원국들에게만 유로화 사용을 허용했다. 4가지
조건은 물가상승률이 가장 낮은 세 회원국의 평균치보다 1.5%를 넘지 않을
것, 재정 적자가 국내총생산량의 3%를 넘지 말고 국가부채가 국내총생산량의 60%를 넘지 않을 것, 2년 이상
자국통화의 평가절하 없이 ‘유럽환율협약’을 준수했을 것, 그리고 장기국채
수익률이 물가상승률이 가장 낮은 세 회원국들의 장기국채 수익률 평균치보다 2%를 넘지 않게 유지 할 것이었다.
당시 필자를 포함한 대다수 경제학자들은 유럽연합의 단일통화제 도입을 회의적으로
봤다. 적정통화지역이론(Theory
of Optimum Currency Area)이라는 경제이론에도 맞지 않은 제도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적인 동기가 경제적 동기를 압도해 유로존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 4가지 조건을
충족한 11개의 유럽연합 회원국들이 1999년 1월부터 유로화를 공식
사용하기 시작했다. 마스트리히트 조약이 서명된지 7년 후에야 유로존(Eurozone)이 탄생한 것이다.
그리스가 그 다음해에, 그 후에 다섯 나라가 더 합류해
현재 17개 회원국이 있다.
영국, 덴마크, 스웨덴을 비롯한 10개의
유럽연합 국가들은 가입조건을 충족했는데도 가입하지 않고 있거나, 가입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비회원으로 남아있다.
유로화 발행과 통화량 조절은 유럽중앙은행(European Central Bank) 소관이다.
따라서 유로존 회원국들은 자기네들 고유의 통화정책 수단을 상실하고 말았다.
영국이 유로존에 가입하지 않은 주요 이유 중 하나다.
통화정책 수단을 상실한 유로존 회원국들은 국내 경기 안정화 정책수단으로 재정정책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을 수 없는 현상이
생겼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세계적인
불황의 불길이 유럽으로 확산되자 독일의 입김을 주로 반영한 유럽중앙은행의 보수적인 통화정책으로는 경기 회복을 기대할 수 없게 되어 유럽의 각
나라들은 경기부양정책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었다. 그 결과 재정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국가부채는 감당하기 힘들게 됐다.
유로존은 출범 때부터 근본적인 모순을 내포하고 있었다. 유럽중앙은행으로 하여금 통화 정책을 총괄하도록 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유로존 차원의 재정정책을
총괄하는 제도적 장치가 없었던 것이다. 또한 마스트리히트 조약 조건을 충족하여
일단 유로존에 가입하게 되면 그 후에 방만한 재정 운영으로 인해 조건을 더 이상 충족하지 못하게 되더라도 회원국을 축출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지 않은 것도 문제였다.
뿐만 아니라 유로존 내의 은행들에 대한 감독과 규제를 총괄하는 기구도
없었다. 예를 들어 금융제도 건전성의 근간인 유로존 차원의 예금보험제도도
없었다. 일률적인 통화정책은 가능했으나 금융 전반에 걸친 통합이 결여돼 있었고
회원국들의 재정정책을 조율하는 장치도 없었다. 불완전한 금융통합과 재정통합의
부재는 유로존의 위기대처력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이런 체제 하에서 재정이
취약한 국가들은 금융기관들의 건전성과 신뢰성마저 자동적으로 상실하고 말았다.
이에 대한 해법은 무엇인가?
근본적인 해법은 유로존의 해체 즉 유로화의 취소이겠지만 이는 가능성이 전혀 없다. 단일통화제 도입 자체가 유럽연합의 결속을 강화시켜 유럽대륙에 미국을 주축으로 하는 앵글로색슨
경제권에 버금가는 거대한 경제권을 형성해보겠다는 의도였기 때문이다. 유로존의
양대 축인 독일과 불란서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유로존을 살리려 할 것이며,
방법은 하나뿐이다. 그것은 유럽중앙은행이 수행하는
단일통화정책(정책 이자율 결정 포함) 외에 유로존 차원의 일괄적인 금융기관 감독 규제를 통한 금융통합을 완성함과 동시에 모든 유로존
회원국들의 세입과 지출을 통제할 수 있는 재정통합을 이룩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유럽합중국(The United States of Europe)을 결성하는
것이다. 지금에 와서 후퇴는 할 수 없으니 통합과정의 끝까지 가서 하나의
국가를 형성하는 것이다. 이것이 물론 이상적인 방법은 아니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
유럽합중국을 이루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들이 많을 것이다. 합중국 구성 멤버들은 통화,
금융 및 재정정책의 분야에서 주권을 상실하게 돼 실질적으로 자주적인 외교와 국방의 능력까지 상실하고 말
것이다. 오랜 역사와 문화 전통을 중시하는 회원국들이 이처럼 엄청난 변화를
순순히 받아들일지 의문이다. 단시일 내 이루어질 성격이
아니다. 합중국이 필연적인 방향이기는 하나 당장 발등의 불을 끄는 데는 별
도움이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합중국을 궁극적인 목표로 세워놓고 목표
달성에 필요한 단계적인 이정표를 도출하여 합의를 볼 수 있다면 현 위기를 진정시키는데 어느 정도의 도움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유럽이 설령 현 위기를 타개하는 데 성공하고 궁극적으로
유럽합중국의 해법을 찾아낸다 해도 독일과 불란서가 그렇게도 원했던 앵글로색슨 경제권을 위협할 수준의 유럽경제권 형성은 물 건너간 것
같다. 다양한 역사적 전통,
문화, 종교, 인종, 언어를 공유하게 될
유럽합중국은 한 나라로 발전하는데 있어 이와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는 중국이나 러시아보다 더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기
때문이다. 앵글로색슨 경제권의 세계경제 패권이 쉽사리 무너질 수 없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