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유럽연합(European
Union)은 세계 3대 신용평가사들에게 칼을
빼들었다. 이들이 사용하는 신용평가의 기준과 평가방식을 감사하겠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신용평가사들의 신뢰도가 추락될 대로 추락된 상황에서 유럽에서의 그들의 최근
신용평가기록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을 뿐더러 책임성 인식의 부족함마저 드러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 3대
신용평가사들(Standard & Poor’s, Moody’s,
Fitch)은 2008년도 미국발 금융위기의 주범 중
하나에 속한다. 그들은 2006~2007년 비우량주택담보대출(subprime
mortgage)을 바탕으로 한 각종 파생금융상품의 사상누각에 최우량 신용등급을 주어 금융거품을 부풀리는데 가장 크게
공헌(?)한 장본인들이다.
물론 그들은 이러한 파생상품을 개발해 시장에 내놓은 은행들에게 금빛 찬란한 신용등급을 매겨준 대가로 두둑한 수수료를
받아먹었다. 사실상 대형 은행들과 신용평가사들은 이 범행을 공모했다고 볼 수
있다. 이리하여 부풀대로 부풀어진 거품이 마침내 터지게 되자 온세계가
금융위기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 들어가 1930년대의
대공황(The Great Depression) 이후 가장 심한
대불황(The Great Recession)을 초래하게
되었다. 그 여파가 오늘날 유럽을 재정위기로 몰고 가 가까스로 회복단계에 있는
세계경제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이로 인해 세계 각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와 집을 잃었고, 심지어는 가정의 파탄까지도 감당해야
했다. 이 책임을 누가 져야 할 것인가? 대형 은행들과 신용평가사들도 마땅히 일부의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뻔뻔스럽게도 신용평가사들은 2006~2007년의 그들 행동은 까맣게 잊고 금융위기 이후 정부 구제금융과 자본확충을 통해
재무제표를 개선시켜 신용도를 현저히 향상시키는데 성공한 대형 금융기관들의 신용등급을 무차별적으로 강등시키고 있다. 그들은 이렇게 하면 이미 땅으로 추락된 자기들의 신용도가 회복될 것이라고 착각하는
모양이다. 마치 자기네 체면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국가가 되건
은행이 되건 무조건 신용등급을 내리는 것 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작년
8월에는 세계의 투자자들이 가장 안전한 자산으로 인정하는 미국국채의
신용등급까지 강등시켰다. 그러나 투자자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국채시장에서
미국국채 수익률을 오히려 더 하락시킴으로써 미국의 국가신용도를 더 올려놓았다.
작년 8월 3% 정도였던 미국채 수익률이 지금은 1.5%
선을 오르내리고 있다. 투자자들은 신용평가사들의
신용등급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유럽에서도 마찬가지다.
유럽 재정위기가 터지기 전에는 그리스 국채에 장밋빛 신용등급을 매겨주어 그리스의 부채증가를 부채질하더니 그리스가 부도
직전으로 몰리자 국채 신용등급을 순식간에 투자부적격(junk)으로
강등시켰다. 어떻게 한나라의 신용등급이 하루 아침에 상위에서 최하위로 내려갈
수 있다는 말인가?
평가사들의 뻔뻔스러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유럽 재정위기가 확산되면서 다른 유럽국가들의 국채 수익률이 올라가기가 무섭게 그들은 이에 뒤질세라
이 나라들의 신용등급을 강등시키고 있다. 자기들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 시장이
이미 결정한 사실에 뒷북을 치는 것이다. 그들은 추락한 위신을 만회할 심산으로
일본으로 눈을 돌린다. 일본의 국민소득 대비 국가부채율이
250%를 넘는 세계 최상위라 하여 일본국채 신용등급을
강등시켰다. 그러나 시장은 이를 비웃기나 하듯 일본국채 수익률을 오히려
내려놓았다. 혹을 떼려다 오히려 혹을 더 하나 부치게 된
것이다. 평가사들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급기야 얼마 전 유럽연합은 이런 평가사들의 즉흥적이고 무원칙적인 신용평가 행위를 더
이상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다는 듯 이들에게 칼을 빼들고 나섰다. 평가사들의
신용평가 기준과 이 기준의 적용과정을 면밀히 감사하겠다는 것이다. 과연
평가사들에 대한 감사가 실질적이고 유용한 결과를 도출해 낼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근본적인 과제는 과연 신용평가사 자체가 필요한가 하는 문제다. 국가 신용등급을 매기는데 있어 평가사들은 투자자들의 직접적인 이해관계에 바탕을 둔 시장의 결정과는
아예 동떨어진 등급을 매기거나 시장이 이미 결정한 것을 뒤늦게 확인하는 행위를 보여준다.
시장이 국가신용도를 신용평가사들보다 더 잘 알고 있다는 증거다.
평가사들의 신용등급을 믿을 수 없는 것은 대형 은행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국가들의 재정상태나 대형 은행들의 재무제표에 관해서는
시장이(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가진 투자자들이) 평가사들보다 더 정확한 정보를 더 빠른 시간 내에 입수할 수 있기 때문에 신용평가사들이 시장을
따라갈 수 없는 것이다. 다만 시장을 통한 정보 입수가 용이하지 않은 소형
은행들이나 다국적 기업을 제외한 대부분의 기업들에 대한 신용평가에 있어서는 반드시 시장이 신용평가사들보다 더 정확한 판단을 내린다고 볼 수는
없지만 말이다.
아무튼 무지와 탐욕에 눈이 먼 신용평가사들의 특권 남용과 횡포를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유럽연합의 신용평가사 감사결정을 환영한다. 신용평가사들의 신용평가를 고려할 때가 온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