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2일 독일
헌법재판소는 예상대로 독일의 유럽안정화기구(ESM: European
Stability Mechanism) 참여가 헌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은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금융위기
해소에 있어 엄청난 의미를 지닌다. ESM의 출범은 이미 다른 16개국 의회의
비준이 끝난 상황에서 독일의회의 비준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 헌재
판결로 독일의회의 ESM 비준은 거의 기정사실이 되었다. 5천억
유로(미화 약 6,500억불) ESM 재원
중에서 독일의 부담이 1,900억 유로를 넘어서는 안 된다는 조건이 붙었지만 독일의회의 비준을 거쳐 ESM이
출범하게 되면 유로존 내의 부실은행들에 대한 직접적인 구제금융이 가능하게 된다. 또한 스페인
같은 재정상태가 취약한 회원국들에 대한 국가차원의 구제금융도 가능해진다. 이것은 이미
발표된 유럽중앙은행의 유로존 국채 무제한 구입계획에 더 큰 현실성을 부여하게 되어 스페인을 비롯한 재정 취약국가들의 국채 발행이 한결 쉬워지게
된다.
독일 헌재의 판결이 나오기
1주일 전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European
Central Bank) 총재의 무제한 국채 매입계획이 발표되자마자 국채시장에서는 이미 8%를 육박하던
스페인 국채 수익률이 순식간에 6% 아래로 내려갔다. 물론 이러한
시장의 반응은 독일 헌재의 긍정적인 판결의 예측 하에서 가능한 것이었다. 여기에
고무된 마리오아노 라조이 스페인 수상은 외부 도움 없이 자국의 재정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장담하지만 이것은 국내 언론플레이일 뿐 결국은
ESM에 구조의 손길을 내밀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견해다. 파탄위기에
처한 스페인 은행들과 지방정부들은 중앙정부의 구조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젠 스페인
중앙정부에 대한 구제금융의 문이 열려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시장은 안도의 숨을 내쉬는 것이다.
사실 독일 헌재의 이번 판결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독일은 불란서와 함께 현 유럽연합의 전신인 구주공동시장 출범 때부터 앵글로색슨 경제권에 대항할 수
있는 유럽경제권을 형성하는 것이 저버릴 수없는 꿈이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투자자들은 1주일 전 드라기 ECB 총재가
국채 매입계획을 발표하자마자 스페인 국채를 사들이기 시작해 수익률을 대폭 떨어뜨렸던 것이다.
물론 5천억
유로(곧 7천억으로 증가
예정)가 ESM 방어막의
형성과 ECB의 무제한 국채 매입만으로 유럽 재정위기를 해소시킬 수 있는 충분조건이 형성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필자가 본 칼럼을 통하여 이미 언급했듯이 유로존이 살아남는 길은 궁극적인 재정통합과 금융통합을 의미하는
유럽합중국(United States of Europe) 또는 이와 비슷한 형태의 유럽연방제
(Federation of European States)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를 위한
가장 시급한 개혁은 유로존 내의 은행연합(banking
union)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유로존 역내의 모든 은행들이 ECB가 주관하는 감독기관에 의한 일률적인 규제와 감독을 받도록 하는 것이다. 이
감독기관은 해당 정부의 간섭 없이 부실은행을 폐쇄할 수도 있고 구조조정을 강요할 수도 있는 권한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감독기관은 예금보험을 통한 일반예금자들의 보호에도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사실상 유럽연합 집행부는
유럽중앙은행이 6천 개에 달하는 유로존 역내 은행을 규제 감독할 수 있는 단일기구 설립을 잠정
합의하였다.
그러나 현재까지 독일과 영국이 반대하기 때문에 이 기구가 계획대로 내년 7월 출범할지는
미지수다.
이 기구가 발효되기 위해서는 27개의
유럽연합 회원국이 모두 이 협정을 비준해야 한다. 독일은 우선
20~25개의 대형은행들만 이 감독기구 산하에 두자는 주장이다. 영국은 이
기구에 의한 자국 은행 감독은 주권 침해라는 견해를 유지한다. 영국은
유럽연합 회원국이지만 유로존 회원국은 아니다. 그러나 이
두 나라는 국내 여론을 의식한 반대를 한없이 고집하기보다는 유로존과 유럽연합을 살리기 위해서는 이 방법 밖에 없다는 것을 결국 깨닫게 될
것이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ECB는 신설될
감독이사회를 통하여 내년 7월부터 우선 대형은행부터 시작해 2014년
1월에는 역내의 모든 은행들을 감독 산하에 둘 계획이다.

물론 은행연합이 이뤄졌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금융위기가 재정위기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금융위기와 재정위기의 상호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은행연합을 통한 금융통합과 동시에 재정통합도 돼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재정통합은
모든 유로존 회원국들로 하여금 이미 정해진 국민소득 대비 재정적자율과 국가부채율의 달성을 의무화하는 것은 물론이고 독일과 불란서를 포함한 모든
회원국들의 공동상환 의무 하에 유로존채권 (euro
bonds)을 발행해 구제금융의 재원을 마련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유로본드 역시 국내 여론을 의식한
독일의 반대로 도입이 지연되고 있으나 궁극적으로는 해결해야 할 과제다. 실질적인
금융 및 재정 통합이 이뤄져 금융위기와 재정위기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전에는 유로존이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독일
헌재 판결은 금융통합을 향한 첫걸음을 가능하게 했다는 면에서 뜻하는 바가 크다. 유로존
금융위기 해소의 중대한 고비를 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