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발표된 미 재무부의 세계경제 및 환율정책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은행이 원화가치 변동성을 제약하기 위한 목적으로 외환시장에 개입하고 있다”며 “한국경제의 빠른 회복과 외환보유액 등을 감안할 때 한국은 환율 유연성을 더 높이고 외환시장의 개입을 줄일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이는 미국이 이례적으로 한국의 의도적인 ‘환율조작’ 가능성을 지적한 것으로 주목할 사항이다. 과연 한국은 의도적으로 환율을 조작해왔는가? 다시 말해 한국은행이 환율을 외환시장의 수급 균형에 의해 결정되도록 놓아두지 않고 의도적으로 원화가치 상승을 억제하고 있는가? 미국의 주장은 어떠한 근거에 기반을 둔 것일까?

 작년 말 현재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2,910억불로 국내 총생산량(국민 총소득)의 29.5%에 해당한다. 중국(49.6%)이나 러시아(33.6%)에 비해서는 현저히 낮으나 일본(20.7%)과 인도(20.9%)보다는 훨씬 높다. 외환보유액이 많다는 것은 경상수지의 흑자 또는 해외자본 유입으로 인해 발생하는 외환시장에서의 외화 초과공급을 억제하기 위해 한국은행이 외화를 계속 사들였다는 증거다. 이 같은 한국은행의 외환시장 개입이 없었더라면 원화가치는 더 빠른 속도로 올라갔을 것이다. 
 
 일국의 중앙은행이 외환을 보유하는 목적은 금융위기 같은 유사시에 환율의 급격한 변동을 막는 수단으로 사용하기 위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외환을 갖고 있을 아무런 이유가 없다. 자국통화가 세계의 기축통화로 쓰이는 미국은 환율을 방어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외환을 거의 갖고 있지 않다. 기축통화 국가가 아닌 캐나다도 환율의 결정을 외환시장의 수급 기능에 맡기기 때문에 외환시장 개입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아 소규모의 외환(국민 총생산량의 3.8%에 불과한 590억불) 만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정부는 유사시 환율 방어에 필요한 충분한 양의 외환을 항상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당연시하는 것 같다. IMF 위기 때 외환보유고가 고갈돼 경제신탁통치에 버금가는 국치를 경험한 나라로서 이런 시각을 갖게 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한국의 경우 유사시 환율 방어에 필요한 외환보유액은 총 단기외채의 수준을 조금 넘는 액수면 충분할 것이다. 현재 한국의 총외채는 약 3,370억불이며, 이중 단기외채(1~3년 만기)는 이의 40%에 해당하는 1,350억불에 불과하다. 한국의 현 외환보유액이 단기외채의 2배가 넘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많은 외환보유액은 한국경제의 건전성에 비춰볼 때 필요 이상으로 너무 많다는 것이 미국의 지적이다. 외화의 초과공급을 인위적으로 억제하려 들지 말고 환율 변동에 반영시키도록 해야 한다는 말이다. 
 
 많은 경제학자들은 한국의 경우 2천억불 이상의 외환보유고는 낭비로 본다. 외채에 대한 이자율이 외환수익률보다 훨씬 더 높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외환만 축적할게 아니라 국내 산업의 생산성 제고에 필요한 생산재를 더 많이 수입해 국민들의 생활수준을 높이는 것도 등한시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도 설득력이 있다. 다만 북한의 위협이 자본시장을 교란시킬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둬야하는 남한으로서는 외환보유고를 조금 더 넉넉하게 유지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점은 인정할 수 있다.
 
 사실 한국은행은 이런 점들을 염두에 두어서인지 지난 1년간 외환보유고를 200억불 늘리는데(7.4% 증가) 그쳤다. 지난해 282억불의 경상수지 흑자나 해외자본 유입의 규모를 생각해볼 때 이것은 외환보유액의 급상승을 막기 위한 한국은행의 노력이 작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필자가 본란(1월14일자)을 통해 이미 지적했듯이 지나친 외환보유고의 유지는 그 나라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특히 인플레이션 악화 위협에 직면하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지나친 외환의 축적을 피함으로써 원화가치의 보다 빠른 상승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 국민소득의 50%에 육박하는 외환보유고의 효율적인 운영을 고민하는 중국의 전철을 밟을 필요가 없다. 사실 빅맥지수Big Mac Index를 이용한 구매력 균등원칙에 준한 환율과 비교할 때 현재 원화가치가 18% 정도 과소평가되어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빅맥지수가 각 나라의 일반물가 수준을 정확히 반영한다고 볼 수 없지만 원화가치가 현재 상당히 과소평가되어 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힘든 것 같다. 다행히도 지난 1년 동안의 한국 외환보유액 증가세를 볼 때 미국의 지적이 있었던 없었던 한국은행도 이 점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한국을 환율조작국으로 낙인찍기에는 아직 시기상조인 것 같다. 한국은행의 이런 자세로 미루어보아 유럽 재정위기가 다시 불거지거나 북한의 도발이 다시 없는 한, 그리고 현 중동 지역 불안으로 인한 원유가격의 급등이 계속되지 않는 한, 원화가치의 꾸준한 상승세는 유지될 것으로 봐야한다. 물론 현 중동위기 같은 현상이 얼마나 자주 일어날 것이며 얼마나 오랫동안 계속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