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2월 한국의 대표기업 중 하나인 KT&G(한국담배인삼공사) 이사진에게 공개매수 선언편지가 왔다. 세계적인 기업사냥꾼 칼
아이칸(Carl Icahn)과 워런 리히텐스타인 (Warren Lichtenstein)이 제휴해 적대적 인수를 선언한다. 이들은 KT&G
주식의 약 7.3%를 매집한 다음 경영진에게 임금 과다지급, 담배와 인삼사업의 분리 등 주주입장에서 회사 가치를 높이는 조치를 요구했지만
이사회가 묵살하자 이사진 교체를 요구하며 아예 회사를 인수하겠다고 공개선언한 것이다. 그후 불과 몇 달만에 1,500억원의 차익을 남기고 완전
철수했다.
사실 이 사건 이전인 2004년에도 SK텔레콤에 대해 액면분할 및 유상증자를 요구하며 이사 해고를 요구(최태원회장 퇴진)하는 등 논란을
일으킨 타이거펀드 사례에도 역시 아이칸이 연루돼 있어 KT&G 이사진은 적대적 인수를 막기 위해 온갖 묘안을 짜느라 여념이 없었다.
기업인수합병 시장에서 우호적인 인수합병도 있지만 현 경영진의 의사에 반하여 적대적으로 진행되는 사례도 수없이 많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영화 ‘프리티 우먼(Pretty Woman)’에서 배우 리처드 기어는 기업사냥꾼으로 나온다. 이는 실제로 유명한 기업사냥꾼(Edward
Lewis)을 모델로 만든 영화다. 1987년 개봉된 ‘월스트릿’에서 냉혈인간 기업사냥꾼으로 나오는 고든 게코도 실제인물을 소재로 한
영화다.

1970~80년대 유행한 적대적 기업인수합병은 인수목표회사의 자산을 담보로 막대한 부채를 동원해 소액의 자기자본으로 인수한 다음 자산매각,
비용절감, 회사분할, 청산 등 여러 방법을 동원해 비싸게 되팔아 차익을 남기는 행위다. 당연히 기존 경영진 의사에 반하여 이뤄지기 때문에 적대적
인수합병이라고 불린다. 소액주주들에게는 오히려 주주이익을 대변하고 주식가치를 단기간 상승시키는 좋은 효과도 있지만 많은 경우 종업원이 대량해고
된다든지 장기적으로 회사가 망하는 등 부정적 효과도 동반한다. 실제로 적대적 인수 후에는 대량해고, 회사자산의 대량매각(장기적으로 필요한
자산임에도 불구하고), 청산 등이 일어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적대적 인수합병은 이런 점에서 양면의 날을 가지고 있는 바, 인수합병 이후
이루어지는 자산매각 및 회사분리 매각을 금융시장 속어로 ‘Asset Stripping’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적대적 인수합병의 대명사인 칼 아이칸은 미국 뉴욕 퀸스에서 자랐고 프린스턴대학과 뉴욕대학을 중퇴하였다. 그의 전공도 철학, 의학 등
금융과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 하지만 1961년 월스트릿에서 첫 금융권 경력을 시작했고 68년에는 ‘Icahn & Co’라는
파생금융상품을 거래하는 증권회사를 창립하였다. 그는 금융상품 거래뿐만 아니라 우연히 소규모 회사들을 인수하게 되었고 결국에는 아예 인수합병을
전문으로 하는 기업으로 변모했다.
그가 인수하거나 위협한 회사들은 RJR Nabisco, 항공회사 TWA, 정유회사 Texaco, 화장품회사 Revlon, 영화뉴스제작회사
Time Warner, 통신회사 모토롤라, 인터넷기업 야후 등 수없이 많으며 이들이 아이칸의 손에 넘어가 ‘고초’를 겪게 된다. 아이칸은 대부분
목표회사의 이사진 의사와는 관계없이 유효지분을 인수한 다음 경영진에게 주주 이익을 제고하는 방안 등을 제안하고, 이를 거부하면 이사퇴진 운동을
벌이며 위임장대결(Proxy Fight)과 공개매수(Tender Offer) 등을 통해 적대적 인수를 감행한다. 많은 경우 실제로 인수하지 않고
위협만 한 다음 회사가 높은 가격에 되사는 그린메일링(Green Mailing) 작전을 쓴다. 그는 장기적인 회사가치 상승보다는 단기적으로
주식가치를 올리는 대량해고, 기업분할 매각, 청산 등의 방법을 동원하고 단기에 치고 빠지는 부정적인 행위를 주로 보였다. 이에 아이칸은
경영진에게는 공포의 대상이고 목표기업을 장기적으로 몰락시키는 냉혈인간으로 알려져 있다. 모토롤라의 경우 창사 82년 만에 처음으로 모토롤라
모빌리티와 모토롤라 솔루션즈라는 두 회사로 분할되었으며 자체 보유한 특허권 � 키♧峨맙�시달렸다. 이는 역시 아이칸의 작품이다. 유명한
인터넷기업인 야후의 설립자 제리 양도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는데 배후에는 역시 아이칸이 있었다. 이들 회사는 공히 왕년에는 우량기업이었으나 험로를
걷고 있는 회사들이다. 아이칸이 가는 곳에는 ‘시체’가 즐비하다는 소문이 있다.
하지만 천하의 아이칸도 자신의 의도대로 되지 않아 손해를 보는 경우도 많다. 유명한 영화제작사인 ‘라이온스케이트 엔터테인먼트’와 화학회사인
‘클로락스’는 아이칸이 인수 후 되팔지 못해 차익실현을 못하자 경영진에게 싼 가격에 되돌려주어야 할지도 모르는 ‘수모’를 겪고 있다는 후문이다.
한국에도 기업지배구조 개선 및 소액주주 이익을 주장하는 유명한 경제학자가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부정적 측면도 있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적대적 인수합병을 미화하여 부르면 ‘행동주주(Activist Shareholder)’라고도 한다. 지배주주가 없고 회사주식가치가
자산가치보다 낮은 저평가 종목이나 과거 잘 나가다가 경영난에 처한 기업들이 사냥꾼들의 표적이 된다. 오늘밤에도 아이칸은 지도를 펴놓고 다음
희생물을 고르고 있을 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