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 소개한 안드레 리가 아시아에서 정크본드로 외환위기 이전까지 돌풍을 일으킨 사람이라면
‘고수익채권’인 정크본드를 제도권 금융상품으로 세계 최초로
상업화한 사람은 단연 마이클 밀켄(Michael R. Milken)이다. 일반적으로 기업들은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유상증자를 통한 자본조달(Equity
Financing) 혹은 부채조달(Debt Financing)의 방법을 쓴다. 부채조달에도 여러 방법이 사용되는데 흔히 회사채라고 불리는 Corporate
Bond/Note 등 채권은 규모가 큰 회사일 경우 투자은행의 자금조달부서를 통해 미리 예상투자가들과 협상해 회사채의 조건(쿠폰, 만기수익률 등)을
정한 다음 발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채권을 발행할 때는 반드시 신용조사기관에게 채권의 신용도(credit rating)를 의뢰하는데 신용도를 여러 단계로 나눈다.
투자등급 채권은 Investment Grade, 투자부적격 채권은 Non-Investment Grade라고 부른다. 투자부적격 채권은
수익률이 높아야 하고 수익률이 높으면 높은 할인율이 적용돼 투자가들이 액면보다 싼 값에 매입할 수 있다.
하지만 채권의 부도가능성이 높다.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투자부적격 채권은 제도권
내에서는 유통되지 않았다. 적어도 마이클 밀켄이라는 사람이 이를 활성화할 때까지는 말이다.
밀켄은 1946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엔시노에서 유대인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교를 졸업하고 펜실베니아 명문 와튼스쿨에서 MBA를 하게 된다. MBA 과정 중 밀켄은 전
미국연방준비은행장이었던 히크만이 쓴 크레딧에 관한 논문을 읽고 감명을 받는다. 논문 내용은 역사적으로
투자부적격 채권이 투자등급 채권보다 오히려 높은 수익률을 냈고 생각과는 달리 안전하다는 것이었다.
MBA를 졸업한 후 드렉셀 파이어스톤(Drexel Firestone)이라는 투자은행에
입사해 채권조사부에서 금융산업 경력을 시작한다.

그는 일벌레로 이른 새벽 출근 시 버스 안에서 일하기 위해 광부들이 쓰는 헤드라이트를 머리에
쓰고 자료들을 읽었다는 것으로 유명하다. 1973년 드렉셀은 버냄(Burnham)과 합병, Drexel Burnham으로 회사명이
바뀐다. 이 과정에서 많은 임원들이 탈락했지만 밀켄은 합병회사에서 자리를 유지한다. 상사인 토비 버냄에게 고수익채권, 즉 High-Yield Bond 거래부서를 만들자고 설득해 부서장을 맡게 되었다.
창설 첫 해에 무려 100%의 투자수익률을 기록,
회사와 상사를 놀라게 하며 이후 이 부서는 17년간 4개 연도를 제외하고는 전부 플러스 수익률을 기록했다.
밀켄은 일벌레답게 X모양으로 생긴 책상배치를 하여
항상 채권 트레이더와 대면하고 즉시 결정 내릴 수 있는 책상 배치를 하였으며 이후 투자은행에서 X모양의 책상 배치가 유행하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1976년에
당시로는 천문학적인 500만불 연봉을 받았으며 1980년대
후반 몰락하기 전까지 4년 동안 무려 1조2천억원이라는 연봉과 보너스를 챙겼다. 채권트레이딩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것이다.
1970~80년대 기업 인수합병 시장에서 소위
부채인수방식인 Leveraged Buyout(LBO)이 성행하였는데 이러한 위험도가 높고 부채율이
높은 거래에 자금을 대줄만한 배짱 있는 투자가나 투자은행이 당시에는 없었다. 밀켄은 이런 거래의
스폰서로서 고수익채권을 발행하여 유통에 성공하였고 LBO가 성공하면서 승승장구한다. 멀리서 이러한 도박을 구경만 하던 명망 높은 투자은행들도 밀켄의 성공과 채권수익률에 서서히 매료되며 참가하기
시작한다. 이에 밀켄은 고수익 고위험 채권 발행에 더욱 박차를 가하였고 LBO를 하는 기업사냥꾼들에게는 훌륭한 스폰서역할을 함과 동시에 투자가들과 투자은행, 보험사, 자산운용사들에게 훌륭한 투자상품을 제공하게 된다. 당시 소위 잘나가는 투자은행인 살로만브라더스, 제이피모간, 메릴린치 등도 밀켄을 따라하기 시작했다. 당시 유명한 기업사냥꾼인
KKR도 밀켄으로부터 상당한 도움을 받아 부채인수를 하였다.
밀켄은 파격적인 성공과 위험스러워 보이는 딜들을 진행하면서 미국금융감독 당국으로부터 상시적인
감시를 받았다. 하지만 주변 인물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밀켄은 다른 사람들이 상상도 못하는 위험하고
복잡한 딜을 세련되고 법적으로 유효한 구조로 만들어 거래했다고 한다.
하지만 1990년 밀켄은 결국 증권거래법
위반, 사기, 내부자거래,
세금포탈 등으로 고발당한다. 치열한 법적 공방 끝에 밀켄은 검찰과 타협하여 내부자거래
혐의 등 몇 개 주요 혐의는 풀어주는 대가로 유죄를 인정한다. 밀켄은 10년형과 총 11억불의 벌금 및 배상금을 지불한다. 이후 감형으로 총 22개월 옥살이를 하고 석방되었으며 2010년 기준으로 그의 순자산은 무려 20억불로 세계 488번째 부자로서 아직 건재하다고 한다. 하지만 그 사건으로 밀켄은
금융산업에서는 다시는 일할 수 없게 됐다. 그는 고수익채권의 창시자이자 제왕이었다. 그리고 정크본드라는 용어를 만들어 ‘제왕’이라는 별명을 가진 사람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