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8년
9월15일 새벽 1시에 158년 전통을 자랑하던 세계적인 투자은행인 리먼 브라더스 (Lehman Brothers)가 파산을 선언하고 세계경제는
1920년대 ‘세계 대공황’ 때보다 더 사악한 불황의 늪으로 빠져들기 시작한다. 리먼 브라더스는 헨리 리먼(Henry Lehman)에 의해
1840년대에 그로서리, 잡화 등을 당시 면화노동자들에게 판매하는 잡화상으로 시작했다. 1850년에 동생들인 임마누엘과 메이어가 사업에 참여하고
형인 헨리가 사망한 후 리먼 브라더스로 사명을 바꾸고 1920년까지 가족들만이 파트너로 참여하는 패밀리비즈니스로 지속되었다.
잡화상으로
시작한 리먼 브라더스는 당시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상품이었던 면화를 사고파는 소위 상품거래업(commodity trading)에 주력하여 큰돈을
번다. 이후 미국 남북전쟁에서 손해를 보고 사업을 접었다가 1870년에 뉴욕에 다시 사무실을 열고 면화뿐만 아니라 커피 및 석유를 거래하는
상품거래업으로 승승장구한다.
상품거래로
이름이 나자 알라바마 주정부로부터 정부채권 발행업무를 1867년 맡게 되며 이로써 리먼 브라더스는 상품거래 뿐만 아니라 오늘날 자본시장이라고
불리는 투자은행의 자금조달업무를 시작한다. 이후 미국은 철도건설에 대한 인프라 투자가 활발하던 시점이었고 정부는 자금을 민간에서 조달하는 업무가
시급하던 시절이었다. 리먼 브라더스는 이러한 자금조달 및 채권발행업무에 깊숙이 개입, 부를 축적한다. 철도채권으로 재미를 본 리먼 브라더스는
1887년 뉴욕증권시장의 멤버로 가입한다.
1906년
임마누엘의 아들인 필립 리먼이 골드만삭스의 대주주인 헨리 골드만과 함께 당시 미국에서 창업열풍이 일던 소매업에 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자금시장
조성에 합의한다. 당시 유명한 소매업체인 시어즈(Sears Roebuck), May 백화점, Macy 백화점 등이 이들의 도움으로 자금을
마련하였다.
이후
리먼 브라더스는 소매업뿐만 아니라 새로운 비즈니스로 떠오르던 영화, 방송업 등에도 자금조달을 주선하였고 파라마운트픽쳐스, 20세기 센츄리 폭스
등 오늘날도 유명한 영화사를 위해 자금조달업무를 하였다. 즉 오늘날 미국의 산업화와 맥락을 같이 하였으며, 현대 투자은행의 업무를 전부 백지에서
개발한 투자은행의 산 역사이었다.
2003년과
2004년에 미국의 부동산은 최고치를 경신하며 버블이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리먼 브라더스는 부동산이 과거에 면화, 석유, 소매업, 방송업
등이 그랬던 것처럼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보고 저돌적으로 뛰어든다. 당시 미국은 부동산가격의 지속적인 상승으로 빚으로 주택을 사면 무조건 돈을
버는 시장이라고 여겨졌고 이에 은행 등 자금제공자들도 저돌적으로 모기지를 제공하였으며 심지어는 본인의 자산 없이 감정가의 120%까지 모기지를
승인하던 시절이었다.
이에
리먼 브라더스는 모기지시장에서 소위 ‘Alt-A 모기지’ 즉 증빙자료 없이 모기지를 제공하는(캐나다에서 B-Lender 혹은 프라이빗모기지라고
보면 된다) 모기지투자회사인 BNC 모기지와 오로라 론 서비스를 인수합병한다. 이 회사들을 통해 한해 160조원 어치의 위험등급 주택모기지
자산을 모아 유동증권화한다(여러 모기지를 기초자산으로 유동화채권을 발행하여 증권회사들을 통해 개인 및 기관투자가들에게 판매하는 MBS;
Mortgage-Backed Securitization). 이러한 공격적인 투자로 리먼은 기록적인 이익을 내고 뉴욕증시에서 주가가 한때
86달러를 넘기기도 했다. 리먼은 영리한 투자은행이며 막강한 네트워크 및 금융공학 능력으로 위험을 헷지(hedge)하는 조치를 물론 하였다.
하지만 장기자본관리(Long term Capital Management: LTCM) 사태에서도 증명된 것 같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석학들이
짜놓은 금융공학상품도 시장이 붕괴하면 무용지물이 되는 것 같이 미국부동산 버블의 붕괴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2007년
8월 미국부동산은 버블이 붕괴되고 또 다른 유명투자은행인 베어스턴스가 운영하는 2개의 헷지펀드가 파산하면서 위험에 노출되기 시작한다. 리먼은
2개의 모기지회사 문을 닫는 등 조치를 취하지만 너무 늦었고 시장은 계속해 붕괴하기 시작하였으며 두 번째로 큰 부동산 투자은행인 베어스턴스가
파산해 제이피모간에 팔린다. 급기야 리먼은 회사를 살리기 위해 매각이라는 특단의 조치를 강구하며 여러 다른 투자은행들과 협상하며 미국정부로부터
지원을 요청하게 된다. 그중 하나가 한국산업은행이었다.
리먼이
보유한 자산 중 건전자산을 한국산업은행에 매각하여 손실을 충당하게 하는 전략이었는데 성사되지 않았다. 당시 자금시장의 붕괴로 베어스턴스가
제이피모간에, 메릴린치가 뱅크오브아메리카에 매각되었으나 유독 리먼 브라더스만이 매각되거나 정부의 구제금융을 받지 못하고 파산한 이유는 나중에
역사가 말해줄 것이다. 금융시장에서는 경쟁사인 골드만 삭스 등의 음모론이 존재하고 있다. 미국의 남북전쟁, 세계대공황, 석유파동 등 역사적인
불황을 모두 견뎌낸 리먼이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2세기에 걸친 명성에도 불구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