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3년 3월 한국 재계순위 3위이었던 SK그룹의 지주회사 SK㈜에 대한 적대적 인수시도가 일어나 많은 논란을 일으킨 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듣도 못한 ‘크레스트 시큐리티’라는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소재 증권사가 SK㈜의 지분을 14.99% 확보해 2대 주주로 떠올랐다고 공시한
것이다. 당시 SK그룹은 부당내부거래, 불법정치자금 제공, SK글로벌 분식회계 등으로 최태원회장과 손길승회장이 구속된 상태였다. 당시 국민들은
부도덕한 재벌의 행태에 대해 분노를 금치 못했고 참여연대 같은 시민단체가 앞장서서 재벌들의 지배구조와 부도덕성에 대해 성토하던 시기였다. 이에
SK㈜의 주가는 연일 하락했고 개미들은 주식을 투매했다. 이 가운데 당시 전혀 알려지지 않은 소버린(Sovereign)자산운용이라는 국제자본이
자회사인 크레스트증권을 통해 개미들의 투매물량을 노래를 부르면서 매집하고 있었다. 한편 반재벌집단인 참여연대는 소버린과 손잡고 자신들도 주식을
매집하는 등 적극 협력하고 있었다.

최고위층 경영진이 구속되고 주가가 곤두박질치던 때에 그룹의 시가총액이 60조원이 넘는 한국의 대표그룹을 불과 1,800억원(평균매입단가
9,300원)으로 먹겠다고 나선 것이다. 당시 한국재벌들은 불과 몇 %도 되지 않는 지주회사의 지분으로 엄청난 규모의 그룹을 지배하고 있던
때였다. 그중에서도 지배구조가 취약한 SK그룹을 기업사냥꾼인 소버린이 낚아챈 것이다.
소버린은 자신들이 기업사냥꾼이 아니고 한국의 전근대적인 기업지배구조 및 빈부차를 줄이는 좋은 일을 하는 펀드라고 선전했고 실제 많은 개미,
국민 및 참여연대 같은 조직은 이를 신봉하였다. 소버린과 참여연대는 자신들이 내세운 사외이사 5명을 추천하였고 SK측은 4명의 이사를 추천해
주총에서 표대결로 이어졌다. 하지만 외국투기세력으로 밝혀진 소버린에 대한 여론이 나빠지면서 참여연대는 보유지분을 소버린에게 넘기고 빠졌고,
SK는 동정표로 위임을 받아 겨우 소버린의 이사선임을 막을 수 있었다.
결국 경영권 방어 때문에 SK는 지분확보를 위해 소버린으로부터 주식을 되사들이고 개미들의 투기세력까지 합쳐서 주가는 무려 6만원까지
폭등하였고 소버린은 시도 2년 후인 2005년에 불과 1,800억원에 매입한 주식이 1조원으로 폭등해 8,200억원의 이익을 남기고 한국을
떠났다.
소버린은 지분을 장내에서 판 것이 아니라 SK를 위협해 그린메일(Green Mail) 즉 적대적 인수위협으로 목표회사가 비싼 값에 자신들의
지분을 되사게 하는 수법으로 이익을 실현하였다. 이 가운데 SK그룹은 무려 1조2천억원이라는 자금을 추가 투입하였고 이중 1조원은 소버린이
외국으로 가져갔다. 한국재벌들의 파행적 경영관행과 취약한 경영지배구조가 얼마나 쉬운 적대적 인수합병의 먹잇감이 되는지, 또 이로 인해 얼마나
많은 국부가 유출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고 생각된다. 반재벌 정서로 무장하고 지배구조개선과 일반국민 및 개미들의 권익을 보호하자는
‘지배구조개선펀드’는 손바닥을 뒤집어 보면 기업사냥꾼들의 수법과 동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계적 기업사냥꾼인 칼 아이칸은 자신의 투자성향이
지배구조개선펀드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에서 이름을 날리는 장하성교수의 주장과 동일한 것이다.
소버린자산운용은 1972년 뉴질랜드에서 리차드와 크리스토퍼 챈드러(Chandler)라는 두 형제에 의해 설립된 제조유통회사이었다.
1986년부터 투자금융업에 뛰어들었고 주로 신흥개발국인 아시아, 중남미, 동유럽, 아프리카 등에서 활동했다. 즉 공산주의에서 자본주의로 막
변신하는 국가, 전근대적 혹은 정경유착이 심한 후진국 등 어수룩한 시장을 주목표로 삼았다. 필자는 한국이 이러한 어수룩한 시장에 포함되었다는
자체가 한국인으로서 모욕감을 느낀다.
그럼 SK그룹이라는 재벌은 어떻게 재벌이 되었나를 보면 SK그룹 자체가 기업사냥꾼 이었음을 금세 알게 된다. 해방 후 적산기업을 불하받아
최종건 창업자가 선경직물을 시작한다. 최 회장은 엄청난 에너지로 사업을 확장했고 정유업에도 뛰어들게 된다. 당시 최 회장은 박정희 전대통령의
3선 개헌 후 비서실장 겸 중앙정보국장을 맡고 있던 실력자 이후락씨와 사돈을 맺고 이 인연으로 사업확장을 한다.
1975년에 워커힐호텔을 삼성과 경합해 이겨 인수한다. 1980년에는 유공으로 알려진 대한석유공사를 전격 인수한다. 최종건 회장은 40대의
젊은 나이에 죽고 동생인 최종현 회장이 취임하였으며 알다시피 최종현과 당시 노태우 전대통령은 사돈 간이다. 엄청난 이권사업인 유공을 인수하여
개미가 공룡을 낚은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SK㈜의 모체이다. 또 1992년에는 자회사 대한텔레콤이 제2이동통신사업자로 선정되고 이후
1994년에는 거의 독점에 가까웠던 한국이동통신을 추가 인수하고 이어 2000년에는 신세기이동통신을 인수해 오늘날 SK텔레콤이라는 황금알을 낳는
사업을 만들었다.
2001년에는 대한송유관공사 인수, 2005년 현대정유, 2004-2007년 풀빵닷컴, 필자가 인수중개한 팍스넷, 두루넷, 라이코스 등
인터넷기업 인수, 2008년 하나로텔레콤 인수, 2012년에는 하이닉스를 인수했다. SK그룹 자체가 인수합병을 통해 성장해온 것이다. 창업주,
창업주의 동생 그리고 창업주의 동생의 아들인 현재 최태원 회장으로 경영권은 이어져 왔다. 수많은 인수합병 만큼 SK그룹은 부정적 비리문제에
지속적으로 시달려왔다. 비자금, 선물거래 손실, 횡령, 분식회계 등 정말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그룹이다.
사실 소버린의 당초 계획은 SK㈜의 이사회를 장악한 다음 SK텔레콤을 계열분리하여 그룹의 자금줄인 SK텔레콤이 그룹에 지원하는 자금부담을
없애면 SK텔레콤의 주가가 상승할 것이고 그 다음 SK텔레콤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던 SK㈜가 텔레콤 주식을 처분하게 함으로써 추가이익을 얻고
배당을 챙겨 뜨는 전략이었을 것이다. 적대적 인수가 성공하면 이 시나리오로 돈을 벌고 실패하면 그린메일로 협박하여 이익을 챙기는 ‘제갈공명식’
전략이다. 소버린은 LG그룹에도 비슷한 전략을 동시에 시도하였으나 손해를 보고 손절매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