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서는 그리스가 일단 부도를 면했다고 대서특필한다. 민간채권단이 절반 이상(53.5%)의 부채를 탕감해주는 것을 전제로 소위 트로이카(유럽연합, 유럽중앙은행, IMF)로부터 1,300억 유로(1,730억 달러) 상당의 구제금융을 약속 받았다고 해서 부도를 면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다. 못 받게 될 이자까지 계산하면 민간채권단의 손실은 원리금의 70%에 해당한다. 이는 실질적으로 부도나 다름없다. 아무튼 민간채권단의 부채 탕감과 트로이카의 2차 구제금융으로 그리스는 3월 중에 만기되는 부채를 가까스로 상환 또는 만기연장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로 인해 그리스는 현재 국민소득 대비 160%인 부채비율을 2020년까지 121% 아래로 끌어내려야 하는 의무를 안게 되었다. 부채비율을 줄이기 위해 그리스정부는 독일과 불란서의 사나운 눈초리 밑에서 초긴축 재정정책을 밀고 가야한다. 연금제도를 뜯어고치고, 공무원 수를 줄이는 등 뼈를 도려내는 정부지출 삭감과 각종 세금 인상을 통한 초유의 긴축재정에 돌입해야 한다. 4월 총선 후에 새로 들어설 정부가 이런 정책을 밀고 갈 의지와 능력이 있을지도 의문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실질적으로 돈줄을 쥐고 있는 독일이 초긴축정책을 강요함으로써 그리스 경제의 목을 숨도 쉬지 못하게 졸라매는데 있다. 이로 인해 그리스 경제는 심각한 불황에 허덕인다. 지난해 4분기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 7%. 앞으로 긴축의 고삐를 더욱 조이게 되면 성장률은 더욱 떨어질 것이다. 재정적자가 줄어들기는커녕 세수 부진으로 오히려 늘어날 수가 있다. 설령 재정적자가 준다고 해도 불황으로 인한 국민소득의 감소가 재정적자 감소를 능가해 국민소득 대비 부채비율이 오히려 상승할 수 있다. 긴축재정이 불러올 것이 확실시되는 불황의 심화는 부채비율을 8년 안에 121%까지 떨어뜨리는 것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할 수도 있다. 그리스 처방약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이유다. 초긴축정책으로 그리스 경제를 살릴 수 없다. 이는 그리스 경제를 파탄으로 몰고 가는 잘못된 처방이다.

그리스가 경제를 살리려면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을 탈퇴해 독자적인 재정통화정책을 쓸 수 있어야 한다. 유로존의 쇠사슬에 묶여 있어서는 안 된다. 유로존 안에서 해법을 찾기에 이미 경제가 너무 쇠약해졌다. 긴축이 아닌 성장위주의 정책을 써야한다. 성장정책은 유로존 안에서는 불가능하다. 유로존을 탈퇴해 자국 통화(드라크마)를 회복시켜야 한다. 드라크마의 환율이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형성(평가절하)돼 그리스의 수출경쟁력을 회복시켜야 한다. 포르투갈이나 아일랜드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유로존안에 남아있어도 이로울 게 없다.

영국은 현명하게 애초부터 아예 유로존에 가입하지 않은 사실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은 사정이 좀 다르다. 이들까지 유로존을 떠나면 유로존 자체가 와해될 것이므로 독일과 불란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도와줄 것이다. 유로존 와해가 세계경제에 미치는 충격을 고려해서라도 트로이카는 물론이고 필요하다면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모두 힘을 합해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구제금융을 관철할 것이다. 그러나 이들에게도 긴축만이 해법은 아니다.

유럽의 재정취약 국가들이 재정 건전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앞에서 말했듯이 긴축보다는 성장정책이 필요하다. 현 상태에서 지나친 긴축은 재정 건전성을 오히려 악화시킬 따름이다. 적극적인 성장정책으로 재정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성장위주의 정책은 재정상태의 일시적인 악화를 감수하면서 장기적인 균형예산 추구를 의미한다.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상황에 따라 10, 아니면 20년이 걸릴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방법이 없다. 이것이 바로 미국의 오바마 정부가 추구하는 정책이다.

미국 공화당은 독일식 긴축정책의 필요성을 끈질기게 주장하며 오바마 정부의 발목을 잡으려하지만 성장정책이 효력을 발휘하기 시작하자 이제는 여론마저 공화당 정책에 등을 돌리고 있다. 유럽도 미국정책을 비판만 할 게 아니라 오히려 본받아 재정위기를 해결하도록 해야 한다.

다행히도 긴축을 고집하는 독일식 처방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한 영국,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의 유럽 몇 나라들이 드디어 성장정책으로 유럽 재정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하기 시작했다. 이런 견해가 유로존 안에서 독일의 독주를 어느 정도 견제할 수 있을지 아직은 알기 힘들다. 그러나 긴축 일변도의 정책이 유로존 위기를 더욱 악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오면 이 정책을 끝까지 밀고갈 수 없을 것이다. 정책의 시행착오로 인한 불필요한 경제적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유종수 경제칼럼
(경제학 박사, 재정상담가 / 공인 은퇴상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