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양면성을 지닌 계절이다. 어떤 행동도 어울리는 계절이며 풍요로운 수확의 계절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는 낙엽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는 사색의 계절이라는 점이 가슴에 더 와 닿는다.
나는 가을을 사랑한다. 낙엽 진 오솔길의 산책은 낙엽 밟는 소리 때문에 더 좋다. 따뜻한 커피가 제 맛을 내는 계절이다. 그러나 쇼팽의 음악이 없다면 과연 행복할까 의문스럽다. 쇼팽은 가을의 작곡가이다. 깊어가는 가을밤, 그의 선율을 들으면 아련한 애수에 잠긴다. 지난날의 추억이 춤추듯 다가온다. 그를 ‘피아노의 시인’이라고 말한 러시아 피아노의 거장 안톤 루빈스타인의 찬사는 결코 지나치지 않는다. 가사는 없어도 피아노를 통해 시적 감동을 전한 사람이 바로 쇼팽이다. 이것이 ‘쇼팽 음악’의 본질이다. 그는 피아노 그 자체에 자신의 인생과 철학을 담아 음악으로 승화시켰다. 여기에 그의 큰 가치가 있다. 프리데릭 프란치섹 쇼팽은 1810년 2월22일 폴란드의 바르샤바(영어로 ‘Warsaw’)에서 태어나 1849년 10월17일 프랑스 파리에서 39세로 요절한 위대한 피아니스트이며 작곡가다. 쇼팽은 프랑스계 아버지와 폴란드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혈통이 말해주듯 음악에 있어서도 폴란드의 민속적인 요소와 프랑스의 세련된 감각이 그의 음악의 바탕이다. 그는 20세 때 바르샤바를 떠나 주로 파리에서 나머지 반생을 보냈다. 따라서 그의 생애도 폴란드와 프랑스로 20년씩 반분할 수가 있다. 쇼팽의 가정환경을 보면 아버지를 제외하고 모두 여성들이었다. 1남3녀 중 둘째인 그는 여성들에 둘러싸여 여성적인 섬세한 성격을 갖는 성장기를 보냈으며, 그런 이유로 남성같이 강하고 적극적인 모성본능을 지닌 그의 마지막 연인 조르주 상드와는 특이한 애정생활을 가졌다. 어머니로부터 첫사랑 콘스탄티아, 그리고 포토츠카, 마리아, 조르주 상드에 이르기까지 그와 관계를 맺었던 연인들은 그의 음악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열정적으로 사랑하고, 또 이별의 아픔을 겪고, 또 새로운 사랑을 하고, 이렇게 반복과정을 통해 그는 수많은 명곡을 남겼다. 또한 30대의 젊은 나이에 병마와 싸우면서 주체하기 힘든 감정을 폭발적인 창작으로 불태웠다. 이러한 사랑의 아픔과 투병의 고통으로 그는 늘 고독했고 그리움과 연민을 품고 살았다. 생전에는 사랑한다는 말조차 자신 있게 하지 못했으며, 죽어서도 완성치 못한 자신의 작품들을 모두 불태워 달라는 유언을 남길 정도로 쇼팽은 소극적이고 수줍음 많은 내성적인 삶을 살았다. 그러나 음악에서는 자신의 감춰진 감정을 작품으로 솔직하게 말했다. 그래서 그의 수많은 작품에는 흥미 있는 에피소드와 함께 당시의 솔직한 심경이 짙게 배어있다. 깊어가는 가을밤에 듣는 쇼팽의 야상곡(夜想曲)은 가을밤 정취와 너무 잘 어울리는 아름다운 음악이다. ‘밤의 세레나데’라 불리는 야상곡은 원래 아일랜드 작곡가 J. 필드에 의해 처음 작곡되었으나, 이후 쇼팽에 의해 정교하고 세련된 20여 곡의 피아노 소품으로 완성되었다, 이중 몇몇 소품들은 바이올린, 첼로, 클라리넷, 플루트 등 다양한 악기와 재즈연주로도 편곡연주될 만큼 많은 연주자들이 사랑한다. 깊은 서정과 풍부한 감성, 여기에 고상한 품위가 매력인 쇼팽의 작품들은 현대인들에게 잊혀져가는 가을밤의 정취와 낭만을 다시 안겨주는 음악이다. 10년 전 아니 20년 전 아날로그 시대의 여유와 정취가 그리울 때가 있다. 클래식 음악은 아날로그 시대로의 타임여행을 도와준다. 20년 전 가을밤 어렵게 구한 쇼팽의 야상곡 LP를 가슴에 품고 흥분했던 아련한 추억이 떠오른다. 호로비츠가 연주한 곡을 오늘 CD로 들으니 감개가 교차한다. 수많은 추억들이 사진첩의 스냅처럼 스친다. 같은 이민자로서 이국땅에서 듣는 쇼팽의 음악은 내 조국에 대한 향수와 연민을 느끼게 하는 특별함이 있다. 이래저래 정말로 아름다운 가을밤이다. 송정호 (음악칼럼니스트) mikesong0713@yahoo.com 캐나다 한국일보
발행일 : 2011.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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