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문호 푸쉬킨은 “우울한 계절! 내 눈을 끈다/이별의 아름다움이 나를 매혹하고/오 자연의 시들음이여/붉고 노란색에 덮인 숲 …”이라고 그의 시를 통해 가을을 예찬했다. 수확의 계절, 청명한 하늘과 아름다운 단풍 등 가을의 긍정적인 면이 아니라 낙엽과 이별, 우울함으로도 가을을 예찬한 것이다. 푸시킨은 ‘백발의 겨울’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그래도 가을이 좋다고 말했다. 이러한 가을의 상반된 매력에 흠뻑 취할 수 있는 음악이 재즈다. 그래서 이번 주는 클래식 음악이라는 주제를 잠시 접고, 재즈로 외도(?)를 한다.
필자가 클래식 다음으로 관심을 가진 음악은 재즈(Jazz)였다. 한때는 이에 푹 빠져 하루 종일 마일즈 데이비스의 트럼펫, 빌 에반스의 피아노, 찰리 파커의 색소폰, 빌리 홀리데이의 보컬 등을 들으며 망중한을 보낸 적이 하루이틀이 아니었다. 클래식이 작곡가와 연주자가 혼연일치가 되어 합작한 영혼의 울림이라면, 재즈는 연주자의 정열을 담은 열정의 음악이다. 또한 클래식 연주자들이 최고의 연주를 위해 고도의 집중력과 긴장감으로 연주한다면, 재즈 연주자들은 정형화된 형식과 틀을 깨고 오직 느낌으로 최선의 연주를 한다. 그래서 재즈는 개성 넘치는 즉흥연주에 리듬을 타고, 몸으로 느끼고, 마음으로 즐기는 음악이다.

1900년대 초 미국의 뉴올리언즈에서 시작된 재즈는 초기에는 가스펠(Gospel), 소울(Soul), 래그타임(Ragtime)이 주류를 이루는 흑인 음악이었다. 경제 대공항의 시대를 지나며 시카고와 뉴욕 등지에서 발전된 스윙(Swing)과 비밥(Bebop)은 오케스트레이션의 대규모 밴드 형식의 음악으로 발전하여 인기를 얻었지만, 여전히 술과 여자와 담배가 함께하는 퇴폐음악이었고, 글렌 밀러와 배니 굿맨 같은 백인 연주자도 있었지만, 흑인음악으로 분류되는 천한 음악이었다. 마치 모차르트 음악이 형식을 파괴하고 서민과 함께한 음악이란 이유로 당시에는 천대 받았으나, 지금 최고의 음악으로 평가 받고 있는 것처럼, 대중과 함께 했던 재즈음악은 지금 클래식 음악보다 더 큰 사랑을 대중에게서 받으며, 많은 사람들이 이를 즐기고 있다.
한때, 한국에서는 배우 차인표가 드라마에서 멋지게 색소폰을 연주해 재즈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적이 있었다. 게다가 이시기에 개봉한 영화 ‘접속’에 삽입된 사라 본이 부른 고전 레파토리 ‘Lover’s Concerto’와 영화 ‘쉬리’에서는 영국의 무명가수 캐롤 키드가 부른 ‘When I Dream’까지 히트하면서, 재즈가 유행을 이끄는 트렌드로 발전됐다. 루이 암스트롱이 부른 ‘What a Wonderful World’를 비롯하여 맨하탄 트랜스퍼와 로라 피기 등이 부른 감미로운 재즈가 광고 음악으로 빈번히 사용되고, 재즈 바(bar)마다 관객으로 성황을 이루었고, 가는 곳마다 재즈를 듣고 볼 수 있는 재즈열풍의 시기였으며, 재즈와 전혀 상관없는 많은 것들도 재즈로 상품화되어 팔리는 해프닝까지 있었다.
당시 이러한 재즈의 폭발적 인기로 전라북도 무주에서는 처음으로 대규모 국제 재즈 페스티벌이 열렸다. 필자는 행사 기획자로 참여하여 3일 동안 많은 재즈 뮤지션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재즈의 매력에 더 깊이 빠지게 되었다. 케니 가렛, 다이안 리브스, 히노 테루마사, T-스퀘어(Square) 등 세계적인 재즈 연주자들이 참여하여, 국내 재즈 연주자들과 음악을 통해 교감했으며, 서로의 음악에 관심을 보이고, 존중해 주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특히 색소소폰폰 연주자 케니 가렛은 국악의 선율에 매료되어, 자신의 연주도중 아리랑과 도라지 타령 등의 선율을 즉흥적으로 연주해 많은 박수를 받았다. 내가 재즈를 좋아하는 이유는 이렇게 재즈음악이 자유롭고 실험적이기 때문이다. 즉 클래식의 대명사 칼 바흐와 모차르트 음악도 재즈만 만나면 흥겹고 친숙한 음악이 되어 버리고, 비틀즈의 팝에서부터 밥 말리의 레게, 아프리카의 민속음악, 인도의 전통음악, 래디오헤드의 록음악, 심지어 어린이들의 동요까지 세상의 모든 음악이 재즈를 만나면 새로운 매력을 담은 독창적인 음악으로 변모하기 때문이다.
클래식을 이해하려면 용어를 먼저 알아야 하고, 경우에 따라선 인내심도 필요하다. 그러나 재즈는 쉬운 것부터 권할 수 있는 음악이 많다. 다이애나 크롤, 크리스 보티, 케니 G, 루이 암스트롱, 프랭크 시나트라 등 팝인지 재즈인지 구분이 안가는 음악은 누가 들어도 호감이 갈 수 밖에 없는 친숙함이 있다. 혹자는 이들을 재즈답지 않은 재즈, 가벼운 재즈음악으로 폄훼하기도 한다. 찰리 파커나 듀크 엘링턴, 마일즈 데이비스, 버드 파웰 등 재즈의 거장들을 거론하는 분들에게 크롤, 보티, 암스트롱, 시나트라는 재즈계의 마이너 아티스트들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역사를 거슬러 클래식계로부터 천대 받고, 뒷골목 허름한 술집에서 시작한 재즈정신을 생각하거나 결코 주류음악을 지향하지 않은 재즈의 속성을 생각한다면, 그들 중의 누구도 재즈가 아니라고 비난할 수 없을 것이다. 이들이 모든 사람에게 공통되게 환영받을 수밖에 없는 데에는 그들의 음악에 보편적인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보편적이라는 전제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라는 의미와 맥을 같이 한다.
깊어가는 가을 밤, 세상사를 잠시 접어두고 싶은 분들께는 ‘Autumn Leaves(고엽)’와 같은 재즈음악도 권하고 싶다. 재즈음악의 특성상 가을 노래는 무수히 많다. 그리고 지금도 작은 콘서트홀이나, 재즈바, 허름한 술집 혹은 거리에서 많은 사람들이 재즈로 가을을 연주하고 있을 것이다. 아직도 여전히 재즈를 낯선 음악으로 보고, 그 문턱에서 주춤거리는 이들에게 “지금 재즈가 있는 곳으로 가라”고 권하고 싶다.
그곳에는 귀로 마시는 황홀한 재즈의 선율에 취해 가을의 아름다운 정취를 몸과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송정호 음악칼럼니스트